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법정 구속 "‘대기업 총수 배려’ 판결 관행 깨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계열사에 수천억 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현직 대기업 총수가 법정 구속된 건 이례적으로, 재계는 경제 민주화 논의 등 대기업에 비판적인 사회 분위기가 반영됐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등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오너’들이 재판을 앞두고 있어 달라진 분위기에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YONHAP PHOTO-0538> 고개숙인 김승연 회장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는 김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했다. 2012.8.16 kane@yna.co.kr/2012-08-16 13:07:32/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혐의 절반 무죄 불구 실형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서경환)는 “김 회장은 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위장 계열사 한유통·웰롭을 부당 지원하고 계열사 보유 주식을 누나 측에 저가로 양도해 각각 2883억 원, 141억 원의 손해를 끼쳤으며 차명 주식거래로 15억 원의 양도소득세를 포탈했다”며 김 회장의 유죄를 인정했다. 이어 “김 회장은 한화그룹의 지배 주주로서 본인 및 경영기획실의 영향력을 이용해 위장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는 등 손해를 끼쳤다”며 “모든 범행의 최대 수혜자로서 반성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기업 총수로서는 역대 가장 무거운 처벌이자 김 회장 개인으로서는 세 번째 구속 수감이다.

재판부는 또 당시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재무팀장으로 김 회장의 지시를 이행한 혐의로 기소된 홍동옥 여천NCC 대표이사에게 징역 4년과 벌금 10억 원을, 당시 한화국토개발 대표이사로 비자금 조성에 가담한 김관수 씨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각각 선고하고 역시 둘 다 법정 구속했다.

무엇보다 집행유예 관행이 깨졌다는 점에서 재계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그동안 오너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재판부의 판결은 대부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풀려나는 형국이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1990년 이후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7명이 22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국가 경제에 기여한 점이나 총수의 공백을 초래해 기업 경영에 차질을 빚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하지만 대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그룹 총수에 대한 사법부의 태도가 강경해졌다. 재계는 이와 관련해 대선을 불과 4개월여 앞두고 경제 민주화 논쟁이 한창인 현재 분위기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이 계열사 펀드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SK그룹은 물론 횡령·배임 등과 관련해 박찬구 회장의 심리를 앞둔 금호석유화학도 노심초사하고 있는 모습이다. 법원이 지난 2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모친 이선애 전 상무에 이어 김 회장에게 잇따라 실형을 선고하는 등 대기업 총수에게 엄격한 양형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것을 보고 최근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했다”면서 “경제 민주화 논의 등 대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사회 분위기가 재판에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한편 한화 측은 “법정 구속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당혹해 하면서도 “김 회장의 공동 정범 등에 대한 유죄 인정은 법률적으로 다툼의 소지가 상당하다”며 항소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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