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바디샵재단] 3000여 개 프로젝트 지원… 재단 활동 ‘보폭’ 넓혀

자본주의의 진화, 세계 공익재단 현장 보고서 ② 더바디샵 재단

영국 해안가 마을에서 태어난 한 여인은 부엌에서 만든 천연 비누 한 장으로 세상을 바꿨다. 그리고 그는 ‘기업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책임을 다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아니타 로딕’. 바로 ‘더바디샵 재단’의 설립자다.


런던에서 남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바닷가 마을 ‘리틀햄프턴’은 생각보다 꽤 먼 곳이었다. 하루에도 수시로 변하는 영국의 날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좁고 구불구불한 영국의 시골길을 따라 차로 달려가는 일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리틀햄프턴을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단 아홉 개의 기사가 나온다. 물론 그중 여섯 개는 리틀햄프턴과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결과물들이다. 하루에도 수천 꼭지씩 쏟아지는 수많은 기사 중 단 세 꼭지만이 리틀햄프턴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면 이곳은 우리에게 전혀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관심을 줄만한 대상이 있는 곳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리틀햄프턴은 영국, 아니 세계의 사회운동가들에게는 꽤 유명한 도시다. 바로 영국의 자연주의 화장품 ‘더바디샵’의 창업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아니타 로딕이 태어난 곳이자 그가 설립한 ‘더바디샵 재단’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재단 설립자인 아니타 로딕은 유럽의 사회운동가들에게 하나의 모델을 제시한 인물이다. 즉 ‘착한 철학’을 가진 기업도 성공할 수 있으며 그 기업을 통해 더 큰 사회적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더바디샵, 그리고 더바디샵 재단을 알기 위해선 회사 창업자이자 재단 설립자인 아니타 로딕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게 필수다. 1942년생인 아니타 로딕은 젊은 시절 히피였다.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잠깐의 교사 생활을 하다가 세상이 궁금하다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지를 떠돌아다녔다. 여행을 하며 인종차별의 현장을 경험한 그녀는 긴 여행의 마지막을 스위스 비정부기구(NGO)에서의 활동으로 마무리 지었다.

고향에 돌아온 아니타 로딕은 또 다른 히피인 남편 고든 로딕을 만나 결혼 후 아이를 낳아 가정주부로 살아간다. 히피처럼 살아왔기에 당연히 집안 사정이 넉넉할 리 없었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 배낭여행에서 만난 원주민들의 화장법을 활용해 화장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1976년 브라이턴의 골목길에서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에 15가지 화장품을 담아 판매하는 더바디샵 1호점의 탄생이었다. 그녀의 화장품 제조 방식은 원주민들의 방식 그대로 호호바 오일, 알로에 베라 등 자연주의 원료를 사용하는 것이었고 판매 방식은 필요한 만큼만 덜어서 제공하는 리필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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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한 더바디샵은 현재 63개국에 2700여 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로 성장했다.

더바디샵은 특히 창업자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남다른 기업 철학으로도 유명하다. 아니타 로딕이 사업을 키우면서도 항상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다”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2010년대의 한국에서는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더바디샵의 시작이 지금부터 40년 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특별한 일이다.

지금도 더바디샵은 ‘아름다움’, ‘영원한 젊음’ 등 보통의 화장품 회사들이 추구하는 기업 가치와 다른 가치들을 내세운다. 이들이 추가하는 기업 가치 즉 ‘밸류’는 동물실험 반대, 커뮤니티 페어 트레이드(공정무역) 지원, 자아 존중 고취, 인권 보호, 지구 환경보호 등의 다섯 가지다.

실제로 더바디샵은 24년 전 화장품 업계 최초로 공정무역을 시작한 회사다. 공정무역은 저개발국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일터를 제공하는 활동이다. 더바디샵은2009년 기준으로 126억 원의 원료를 공정무역을 통해 구입하고 있으며 전체 제품의 60%가 공정무역을 통해 얻어진 원료로 만들어지고 있다. 2011년 말 기준으로 이 비율은 75%까지 늘어났으며 전 세계 2500명의 생산자와 그 가족들이 공정무역의 대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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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의 전문성 위해 설립

“더바디샵은 아니타 로딕의 철학에 따라 성장해 왔습니다. 그 때문에 기업 차원에서 많은 사회활동 그리고 이와 관련된 캠페인을 진행했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부(donation)’에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같은 금액을 기부하더라도 보다 체계적으로 분배돼야 하고 효율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죠.”(리사 잭슨 더바디샵 재단 대표이사)

더바디샵 재단은 2500여 개의 프로젝트에 1900만 파운드(약 340억 원) 규모의 지원을 했다. 리사 잭슨 대표는 “70% 이상의 프로젝트가 각 대륙에 있는 위원회로부터 추천을 받아 진행된다”며 “매출 100만 파운드 대형 자선단체에는 지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규모가 작은 자선단체들이 더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며 이들을 돕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더바디샵 재단의 특징은 2500여 개에 달하는 지원 프로젝트의 수에서 보듯이 다양한 활동에 지원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재단이 주로 ‘아동’, ‘여성’, ‘환경’ 등 특정 분야에 집중한다면 더바디샵 재단은 ‘동물 보호(animal protection)’, ‘인권(human rights)’, ‘환경보호(environmental protection)’ 등 세 가지 주제를 중심에 놓고 지원 사업을 펼친다.

잭슨 대표는 타 기업 재단과의 차별점으로 ‘독립성’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영국은 아직 상당수의 기업 재단이 모 회사의 영향력에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하지만 더바디샵 재단은 750명(리틀햄프턴 600명, 런던 150명)에 달하는 각각의 활동가들이 독립적인 판단 하에 움직인다. 잭슨 대표를 비롯한 9명의 이사진이 회계 시스템이나 급여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결정한다. 감사 역시 모회사가 아닌 내·외부의 감사팀에 의해 이뤄진다.

물론 이 같은 독립성은 ‘철저한 사업 평가’에 의해 얻는다. 4년 전 영국법이 재단의 회계적 투명성을 강조하며 개정된 것에 발맞춰 6개월, 12개월마다 엄격한 기준에 맞춘 보고서를 발간 중이다.

“더바디샵 재단은 사업 선정에 가장 심혈을 기울입니다. 매년 매분기마다 이사진이 모여 어떤 이슈가 현재 가장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 토론합니다. 또 다른 기관들이 대규모 지원한 곳에는 지원을 피하는 편입니다. 보다 큰 도움이 필요한 곳에 우리의 기금이 가기를 원하는 거죠.”(리사 잭슨 더바디샵 재단 대표이사)

더바디샵 재단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앞서 말한 기부다. 또 따른 두 가지는 펀드 모금과 자원 봉사 활동이다. 잭슨 대표는 “물론 재단의 주목적은 ‘기부’이지만 펀드 모금과 자원 봉사 활동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더바디샵 재단의 활동가들은 1년에 1주일씩은 자원 봉사를 해야 한다. 그 역시 사하라사막의 사람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사업에 자원 봉사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듯 다양하고 독특할 활동을 하고 있는 더바디샵 재단은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2008년과 2010년에 두 개의 단체에 각각 5000파운드와 2500파운드 규모의 지원을 한 것. 잭슨 대표는 “재원에 한계가 있어 어떤 부문에 먼저 도움을 줘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면서도 “단순히 많은 수익을 내야 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재단은 어떤 일이 더 옳은 일인지를 고민하는 일이기 때문에 ‘환상적이고 흥미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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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햄프턴(영국)=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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