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포의 퇴직 갈등 "사표도 못 쓰는 직장인…소송 줄 이어"

해고 갈등이 심각하다. 보통은 자르려는 쪽과 버티려는 쪽의 대결 구도다. 하지만 한편에선 꽤 특이한 양상이 목격된다. 그만두려는 자와 잡아두려는 자의 대치 국면이다. 퇴직 갈등이다. 사표를 내도 수리되지 않고 극단적인 트러블로 전이되는 경우다. 실제 사표 수리가 거부·연기된 채 마음 떠난 직장에서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샐러리맨이 많다. 대부분 20~30대의 직장 초년병 정규직 사원이다. 일부는 소송으로 비화되며 왜곡된 노사 관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NHK는 최근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각종 퇴직 갈등을 보도해 시선을 끌었다. 이때 소개된 정보기술(IT) 기업 정규직 사원이었던 S 씨의 사례는 퇴직 갈등의 심각성을 단번에 부각시켰다. S 씨는 3년 전 업무 실수로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 회사는 월급에서 이를 공제했다. 30만 엔이던 월급은 11만 엔까지 줄었다. 3년 동안 모두 600만 엔이 변제됐다. 결국 올해 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수리되지 않은 채 되돌아온 건 핍박뿐이었다. S 씨는 사표를 남긴 채 회사를 떠났다. 퇴직 통보 기간인 2주를 지켰기에 자연스레 퇴직됐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회사는 퇴직 수속을 밟지 않았다.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퇴직 후 10일 안에 신고해야 하는 이직 서류도 제출되지 않았다. S 씨는 실업자도, 샐러리맨도 아닌 모호한 신분으로 존재 자체가 사라진 셈이 돼버렸다.


‘돈 들여 교육시켰더니 나가?’ 기업 울상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퇴직 갈등은 교묘하고 광범위하다. 상담센터엔 상식을 뛰어넘는 이상한 증언이 쏟아진다. IT·부동산·건설업 등 광범위한 직장 공간에서 비상식적인 행위가 일상적으로 펼쳐진다. 퇴직 자유를 빼앗긴 채 일할 수밖에 없는 슬픈 근로자가 늘어나고 있다. 비영리 민간단체(NPO)인 ‘노동상담센터’는 퇴직 거부 상담이 최근 2년간 3배나 늘었다고 밝혔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급증세다. 2009년엔 약 200건에 불과했는데 2011년엔 688건으로 급증했다. 상담 내용의 요지는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둘 수 없다”는 호소가 대부분이다.

퇴직 권리는 법률(민법)로 보호된다. 다만 각종 편법으로 이를 방해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실업보험 신청에 필요한 이직 서류를 발급해 주지 않는 게 가장 많다. 근로자가 여기에 얽매여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다. 자기 퇴직은 거부하고 징계 해고로 서류를 꾸며 업계에서 매장하기도 한다. 징계 해고라면 중대 과실을 의미해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퇴직하면 그때까지 미지급된 월급을 주지 않겠다는 회사도 있다. 결국 줘야 될 때에 대비해 월급 인하를 인정하는 계약서도 요구한다. 추후 돈을 덜 주려는 속셈이다. 사직하면 교육·연수 등으로 이미 투자한 비용과 업무 공백에 따른 손실을 내놓고 나가라며 손해배상 청구를 내뱉는 기업도 있다.

퇴직 갈등은 감춰진 게 많다. 대부분은 말 못한 채 퇴직을 고민 중이다. 정규직으로 뽑아준 회사에 대한 은혜나 재취업 불안감이 발목을 잡는다. 함께 고생한 직장 동료와의 관계 단절도 퇴직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우울증 등 정신 질환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퇴직 갈등이 늘어난 건 장기 불황의 후폭풍이다. 경기 악화로 고전 중인 기업에 여유가 사라졌다는 평가다. 즉 저임금에 성실한 근로자라면 잡아두는 게 상책이다. 기업도 할 말이 많다. 손실이 막대하다. 당장 후속 인재를 뽑는 데 상당한 자금·노력이 투여된다. 근무 환경을 저해하는 건 물론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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