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영세 사업체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

국내 사업체 4곳 중 3곳은 소위 ‘영세업체’다. 종사자 4명 이하인 분식집이나 부동산중개업소·미용실·편의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불황의 그림자 때문에 고용 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6월 자영업자는 583만7000명으로 작년 동월보다 16만9000명 증가했다. 하지만 사업체 3분의 1은 개업 후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매년 4분의 1은 새로 진입하거나 동시에 퇴출된다. 영세업자들을 지배하는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다. 최근엔 소비 심리와 고용 시장 모두 얼어붙으면서 자영업자들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



3분의 1은 개업 후 1년 못 버텨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간한 ‘영세 사업자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329만 개 사업체(2009년 현재) 가운데 272만 개(82.7%)는 영세 사업체다. 1998년 87.5%에 비하면 비중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다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밥줄을 쥐고 있다는 의미다.

영세 사업체의 세계는 역동적이다. KDI에 따르면 2000~2009년에 걸쳐 매년 평균 76만6000개의 영세 사업체가 새로 진입하고 75만2000개가 퇴출됐다. 4개 중 1개 업체는 매년 물갈이 된 셈이다. 영세 사업체가 몰리는 업종은 한식·음식업(27만9000개)을 비롯해 택시운송업과 용달·개별자동차 운송업 등이었다. 주로 전문성이 낮거나 초기 자본이 적게 드는 분야에 창업이 몰리기 때문이다.

이들 영세 사업체의 1년 생존율은 65~75%에 불과했다. 개업 후 3분의 1은 1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의미다. 3년 넘게 버틸 확률은 30~40%에 그쳤다.

재미있는 것은 영세 사업체 퇴출이 경기가 좋을 때 더 활발하다는 점이다. 불황일 때는 신규 진입과 퇴출 모두 더뎌졌다. ‘경기가 나쁘면 망하기 쉽다’는 통념이 들어맞지 않는 셈이다. 업종별로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성장하는 유망 업종일수록 구조조정이 심하고 대표적 영세 산업인 도·소매와 음식점 등은 상대적으로 이동이 적었다.

업종별 생존 기간은 차이가 컸다. 가장 긴 업종은 여관업으로 개업 후 평균 5.2년을 버티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간 생존할 확률은 74.3%였다. 기타 관광숙박시설, 가정용 세탁업(4.5년), 노래연습장 운영업, 떡류 제조업(4.4년) 등도 장수하는 편에 속했다.

이재형 KDI 전문위원은 “대체로 전문성이 필요하거나 초기 투자비용이 높은 업종의 생존 기간이 길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치과의원(4.9년)과 한의원(4.5년), 불교 단체(4.4년)와 기독교 단체(4.2년) 등도 업종 특성상 안정성이 높았다. 반면 스포츠 교육기관은 평균 2년을 버티는 데 그쳤다. 각종 의류 도·소매업의 평균 생존 기간은 간신히 2년을 넘겼고 통신기기 소매업, 실내 장식 및 내장 목공업(2.3년), 분식 및 김밥 전문점(2.5년) 등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사업 성과를 분석했을 땐 다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사업체가 영세할수록 성적이 양호했던 것이다. 2001~2009년 영세 업체(1~4인 종사)의 매출은 60% 늘었지만 10~99명 종사 업체는 24%, 100명 이상 업체는 8% 증가율에 머물렀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영세 업체는 5% 감소세에 그쳤지만 10~99명 종사 업체는 24% 줄어들어 희비가 엇갈렸다.

이 전문위원은 “영세 자영업자가 사회적 양극화의 원인이란 생각은 절반만 사실”이라며 “진짜 문제는 영세 사업자들의 절대 소득 자체가 낮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1인 사업체는 9년간 영업이익이 14% 늘었고 영업이익률은 36.9%에 달해 겉으론 양호해 보인다. 하지만 연간 이익의 절대 수준이 1300만 원에 그쳐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생활수준은 악화됐을 가능성이 높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8월 13일 발행 87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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