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계획경제·주민배급제 포기? 새 경제관리 체계 도입…김정은식 개혁

북한이 달라지고 있다. 북한이 주민들에 대한 식량 배급제를 폐기하고 계획경제를 일보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새 경제 관리 체계’를 도입하면서 사실상 계획 경제와 배급제의 포기를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에 따르면 양강도 소식통은 “지난 8월 6일부터 각 근로단체 조직과 인민반, 공장·기업소 등을 상대로 새 경제관리 체계 도입과 관련한 강연회가 진행됐다”며 “강연회에서 새 경제관리 체계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중앙에서 파견한 강사들을 각 근로단체 조직들에 내려 보내 강연을 진행하는 한편 새 경제관리 체계와 관련한 해설 자료를 지방 당국에 내려 보내 공장·기업소, 인민반별로 설명회를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공포한 새 경제관리 체계는 ‘6·28 새 경제관리 체계’로 불린다. 이번 조치는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박봉주 노동당 제1부부장이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YONHAP PHOTO-1834>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front R) and Wang Jiarui (L), the head of the International Liaison Department of China's Communist Party, toast in Pyongyang August 2, 2012 in this picture released by the North's official KCNA news agency on August 3, 2012. The new leader of the North met Wang on Thursday, KCNA said, which was his first reception of a foreign official since taking power after his father Kim Jong-il perished. REUTERS/KCNA (NORTH KOREA - Tags: POLITICS) THIS IMAGE HAS BEEN SUPPLIED BY A THIRD PARTY. IT IS DISTRIBUTED, EXACTLY AS RECEIVED BY REUTERS, AS A SERVICE TO CLIENTS. NO THIRD PARTY SALES. NOT FOR USE BY REUTERS THIRD PARTY DISTRIBUTORS/2012-08-03 21:20:25/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경제관리 체계의 골자는 국가가 각 생산 단위에 계획을 정해주지 않는다는 것과 국가가 주민의 식량 배급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각 단위에서 자체로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양강도 소식통은 “국가가 따로 생산 품목이나 계획을 정해주지 않고 공장·기업소들이 독자적으로 생산하고 생산물의 가격과 판매 방법도 자체적으로 정하게 돼 있다”며 “사실상 계획경제를 포기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개인이 마음대로 공장·기업소들을 설립할 수 없고 공장·기업소 간부도 예전처럼 노동당이 임명하거나 해임한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소식통도 “새 경제관리 체계에 따라 생산과 판매, 수익과 분배를 공장·기업소가 자체적으로 결정하게 됐다”며 “국가기관 사무원(공무원)과 교육, 의료 부문 종사자 등에 한해서만 국가가 배급하고 기타 근로자들의 배급제는 폐지됐다”고 주장했다.



수확물 30% 농민 몫으로

농업 분야에서는 올가을부터 새 경제관리 체계를 도입해 기존의 국가 생산 계획에 따라 농업 생산물을 국가가 가져가던 방식을 폐지하고 생산 계획과 관계없이 전체 수확량에서 70%는 북한 당국이, 나머지 30%는 농민들이 가져가도록 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새 경제 관리체계 시행 시기와 관련해 북한 당국은 “이제부터”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에 대해 RFA는 새 경제관리 체계 시행 날짜를 정하면 시장 물가 상승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내부적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식량난으로 북한의 배급제는 사실상 붕괴된 상태”라며 “유명무실해진 배급제를 폐기한다는 것이어서 큰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내놓았을 때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지만 이번에 또 꺼낸 것은 그동안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근간인 배급제를 공식 폐기한다면 북한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계획경제를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다만 김정은 위원장이 젊은 지도자로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해 조급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김정은식 경제 개선의 폭은 과거보다 넓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8월 13일 발행 87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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