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대기업 계열 ‘저비용 항공사’와 독립 항공사 왜 싸우나

하늘에서 ‘ 골목 상권’ 놓고‘ 갑론을박’

하늘에도 ‘골목 상권’이 존재하는 것일까.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 Low Cost Carrier) 시장을 놓고 기존 대형 항공사들과 독립 LCC들 간에 ‘골목 상권’ 논쟁이 한창이다. 특히나 최근 대선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하늘길에도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움직임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흔히 ‘저가 항공사’로 불리는 LCC의 도입 시점은 2005년 1월 제주항공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3번째 정기 항공사로 설립되면서 제3 민항이 시작된 것을 기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보다 앞선 2004년께 한성항공이 출범했지만 이는 정기 항공사가 아닌 부정기 항공사로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던 LCC 모델 도입이 추진되자 국내 항공 업계는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내식이나 기내 엔터테인먼트 등 부가 서비스를 없애거나 유료화하는 등의 방식이 당시만 해도 항공 여행을 ‘호사’로 여기던 우리나라 소비자에게는 쉽게 수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제주항공의 새 비행기 B737 항공기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제주항공이 새로 도입하는 미국 보잉사의 B737-800 기종 항공기 도안. 제주항공은 2013년까지 이 항공기 15대를 도입키로 하고 22일 보잉사와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khc@yna.co.kr (끝)

대형 항공사의 ‘LCC 죽이기’ 논란 제기돼

그러나 신생 업체들의 안전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다양한 마케팅으로 국내 LCC는 성공적으로 국내에 안착했다. 그 결과 2012년 상반기 LCC의 국내선 점유율은 44%에 이른다. 소비자로서도 운임과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선택권을 가지게 돼 ‘항공 여행 대중화’의 기틀이 마련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하늘길 ‘골목 상권’ 논란은 대기업 계열사 LCC가 참여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통한 시장 확대와 가격 인하 등의 기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기존 대형 항공사의 기득권 지키기 양상으로 굳어져 가는 것에 대한 독립 LCC들의 반발에서 촉발된다.

대형 항공사들이 참여하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기존 대기업들이 계열사 LCC를 투입한 이후 기존 노선의 공급을 크게 줄이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 대한항공은 수요가 가장 많은 김포~제주 노선에 2008년 한 해 동안 모두 480만 석을 공급했지만 진에어가 본격 운항을 시작한 이후 공급석을 줄여 지난해에는 2008년보다 115만 석이 축소된 365만 석을 공급했다.
에어부산, 1호기 공개 (부산=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8일 오전 김해공항에서 열린 에어부산의 1호기 및 유니폼 공개행사에서 승무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아시아나 항공과 부산시 및 부산지역 상공인들이 공동으로 출범시킨 지역항공사인 에어부산(대표 김수천)은 오는 27일 부산-김포 노선(1일 왕복 9회)을 시작으로 12월1일에는 부산-제주 노선(1일 왕복 5회)에 취항할 예정이며 부산-김포 노선운임은 주중 편도 52,400원 ㆍ 주말 편도 64,000원 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공개한 에어부산 1호기는 B737-500기종(127석)으로 동체에 갈매기와 바다를 형상화한 CI가 그려져 있다. mtkht@yna.co.kr (끝)

아시아나항공도 지난해 공급석을 다소 늘리기는 했지만 2008년 이후 매년 공급석을 축소하고 있다. 특히 김포~김해, 김해~제주 노선을 운항하고 있는 에어부산은 해당 노선의 신규 취항과 함께 모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이 해당 노선에서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공급석을 슬그머니 줄이거나 기존 노선을 자회사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식의 노선 운용으로 줄어든 공급석은 제주항공 등 LCC의 공급석 확대로 일정 부분 상쇄되고 있으나 LCC 출범 이후 기대됐던 공급 확대를 통한 여행자의 편익이 향상되거나 소비자 선택권 확대, 국내선 성장 기반 마련 등의 측면에서는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제 항공 운수권 배분 시 대형 항공사와 계열사 LCC가 동시에 참여함으로써 운수권 취득 가능성을 2배 이상 높이는 효과를 얻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2010년 하반기 항공 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일본 나리타 노선 배분 당시 대한항공과 진에어,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은 각각 별도 법인 자격으로 배분 심사에 참가한 바 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운수권을 배분받지 못했지만 자회사인 에어부산이 받은 운수권을 공동 운항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결국 경쟁사에 배분될 가능성을 낮춰버리는 역할을 하는 등 ‘두 지붕’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진에어가 기존 항공사의 단독 노선에 뛰어들어 운임 인하 등의 효과를 노린다기보다 모회사의 단독 프리미엄을 지켜내기 위해 다른 LCC가 뛰어들지 못하도록 하는 방패막이 역할에 그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즉, 별도 법인으로 운수권 배분에는 참여하지만 운수권 획득 시 공동으로 활용함으로써 한 가족 두 지붕 체제의 장점을 극대화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다른 LCC에 배분될 가능성을 50%로 낮추는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제주항공 측은 “독립 LCC에 운수권이 배분됐다면 독립 항공사끼리 제휴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경쟁과 협력의 선순환이 이뤄지며 시장 확대에 도움이 되겠지만 대형 항공사의 계열사가 운수권을 가져가면 결국 특정 대기업에만 이득이 되는 결과가 된다”고 꼬집었다.


대한항공이 설립한 프리미엄 실용 항공사 진에어는 15일 서울 명동에서 출범식을 갖고 나비 모양의 기업 이미지(CI) 새로운 색깔의 B737 항공기 승무원들이 입을 진바지와 티셔츠 유니폼을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강은구기자 egkang@ 2008.06.15

LCC끼리 경쟁해야 도입 효과 커질 것

독립 LCC 간의 경쟁 체제가 안착되지 않으면서 경쟁을 통한 가격 인하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이를테면 완전경쟁 체제에 있는 국내선 그리고 LCC가 시장에 참여한 동남아와 일본 노선 등 근거리 국제선은 항공사마다 운용 방식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저 1만 원부터 판매하는 등 가격 인하를 통한 물가 안정 효과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LCC가 단독으로 취항하거나 모회사와 동시에 취항하는 일부 노선은 실질적인 운임 인하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예로 인천~괌 노선은 대한항공과 자회사인 진에어만 운항하는 노선으로, 사실상 단독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한항공이라는 기존 항공사가 단독 취항하고 있는 노선에 진에어라는 LCC가 추가 취항하면서 경쟁을 통한 운임 인하 효과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실제 가격을 비교해 보면 오는 9월 3일 출국해 7일 귀국하는 이 노선의 최저 운임은 홈페이지 판매 가격을 기준으로 대한항공 54만 원, 진에어 44만 원 수준이다. 그러나 운항 거리 기준으로 괌보다 먼 2281마일 거리의 방콕 노선은 국내외 8개 항공사가 경쟁하고 있으며 같은 기간 제주항공의 최저 운임은 25만 원으로 더 짧은 구간을 운행하는 진에어 괌 운임의 절반 수준이다.

삿포로 노선도 대한항공과 자회사인 진에어만 운항하는 사실상 단독 노선으로, 운임 인하 효과가 없는 대표적 노선이다. 삿포로 노선은 이스타항공이 지난 3월 이후 운항을 중단했는데 표면적으로는 내부적인 기단 운용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여행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의 가격 공세와 진에어의 공격적인 증편 등의 경쟁에서 ‘백기 투항’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한항공이 단독 취항하고 있던 삿포로 노선에 진에어가 가세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경쟁 체제를 이뤘지만 대한항공과 진에어가 단일 브랜드 마케팅 등 공동으로 대응하면서 실질적인 경쟁이 이뤄지기 어렵게 된다.

사실 진에어와 에어부산 등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인 두 LCC의 시장에서의 역할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한항공의 진에어는 기존 항공사가 취항하지 않았던 틈새 노선을 개설하며 여행 범위를 확대했으며 에어부산은 국제선 성장의 음지와 다름없던 지방발 국제선을 확대함으로써 시장 발전의 토대가 됐다. 새로운 노선을 개척함으로써 선택권을 확대한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모회사와 ‘파이 나누기’에 그치는 등 소비자의 실질적 혜택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모회사가 존재하는 자회사형 LCC인 탓에 스스로의 의사결정의 한계, 그리고 모회사의 정책 방향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등 LCC 취항으로 촉발할 수 있는 시장 발전의 가능성이 최소화되는 것이다.
제주항공은 오는 10월27일부터 취항하는 인천-홍콩 노선 홍보를 위해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거리홍보를 열었다./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101021....

LCC (Low Cost Carrier)
기존 대형 항공사보다 작은 비행기를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고 서비스를 축소해 비용을 낮춤으로써 저가격을 실현한 ‘저비용 항공사’를 말한다. 국내에는 2005년 한성항공이 부정기 면허로 운항을 시작했고 2006년 제주항공이 정기 항공사로 운항을 시작하면서 활성화됐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 사진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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