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화기 마크’ 저작권 논란 어디로? ‘30년 저작권 침해돼’…7조 원 소송

국내외를 막론하고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21세기는 저작권의 세기’라는 말도 공공연히 회자된다. 다양한 저작물과 그것을 둘러싼 정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수익을 확보해 나가는 노력들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전화기 마크’를 둘러싼 저작권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그 향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소송액만 5000억 엔(약 7조 원)에 이를 정도로 매머드급 재판이라 결과에 따라서는 큰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월 5일 후쿠오카 지방재판소 제5민사부에서 향후 일본의 저작권 논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원고는 ‘전화기 마크’ 저작권자인 도쿠가와 다카히토 패러다임시프트 대표이고 피고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을 포함한 134개사였다. 원고는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134개사가 ‘전화기 마크’를 자신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전화기 마크는 우리 주변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심벌이다. 당장 휴대 전화기를 보면 화면에 통화할 때 누르는 ‘전화기 마크’가 나타난다. 전화기를 이용할 때마다 보게 되니 하루에도 수십 번은 족히 볼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상의 기차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도 역 안이나 주변을 중심으로 전화기 마크는 여기저기서 보인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갈 때도 비슷하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중간 중간에 전화기 모양을 담은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공중전화 부스의 가장 상징적인 그림 역시 전화기 마크다. 이는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전화기 마크가 일본에서는 저작권으로 등록돼 있었던 것이다. 일본 문화청에 최초로 등록된 시점은 30년 전인 1982년이다. 저작물의 제호는 ‘수화기의 상징’, 저작물의 종류는 ‘미술 저작권’으로, 문화청에 저작물로 인가돼 문화청 장관 인증을 받았다. 여기에서 ‘수화기의 상징’은 전화 또는 통신기기를 대상으로 하는 수화기의 심벌을 표현한 것이고 수화기를 가장 인식하기 쉽게, 누구든지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한 것을 의미한다.

이후 저작권자가 두 차례 바뀌고 지금의 도쿠가와 대표가 권리를 갖게 된 것은 2010년부터다. 도쿠가와 대표는 “분명히 저작권이 있는 것인데 여기저기서 이를 제대로 모른 채 마구잡이식으로 쓰고 있어 소송을 제기했다”며 “현재 이 마크를 사용하고 있는 회사나 단체 등은 모두 저작권 침해에 해당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굴지의 기업 등 134개사 제소당해

도쿠가와 대표가 후쿠오카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피고로 지목한 회사나 단체가 134개사나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화기 마크를 사용하고 있는 모든 곳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통신회사인 NTT 관계 27개사, 철도법인인 JR 관련 5개사, 엘리베이터 제조 30개사, 휴대전화 제조 메이커 12개사(교세라·샤프 등), 고속도로 운영 9개사, 휴대전화 서비스 기업 19개사(도코모그룹·소프프뱅크그룹·KDDI그룹 등), 각 지방도로공사 관련 32개사 등이다.

재판은 좀 복잡하게 진행됐다. 피고가 너무 많다 보니 이들을 5개 그룹으로 나눠 5개의 소법정에서 재판이 따로 열렸다. 후쿠오카 지방재판소 민사재판부가 총동원돼 ‘전화기 마크’ 저작권 재판에 5개의 재판부가 매달린 셈이다.

그렇다면 제1심 판결의 결과는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후쿠오카 지방재판소 5개의 소법정에서 열린 손해배상 청구의 모든 판결에서 도쿠가와 대표가 패소했다. 그런데 이 일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1심의 판결이 향후 원고가 승소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소송을 당한 기업들의 관계자 사이에선 충격파가 감지됐고 소송을 제기한 도쿠가와 대표 자신도 놀란 것은 그 판결 내용이었다.

물론 원고는 판결 내용에 납득을 할 수 없다며 곧바로 항소했다. 그러나 그 후 더욱 신속한 판단을 얻어내기 위해 항소를 취하하고 최고법원에 비약상고(1심 판결 이후 고등법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법원에 상고하는 일)했다.

1심 판결 이후 도쿠가와 대표는 나름 가능성을 확인했다. 비록 재판에서는 졌지만 다음 재판에서의 승소 가능성을 어느 정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재판소에서 같은 테마에 대해 일부 정반대의 판결이 나왔다”며 “비약상고를 한 것도 이것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원고가 자신감을 갖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는 철도법인인 JR 관련 5개사, 휴대전화 제조 메이커 12개사 관련 재판을 담당했던 재판부의 판결에 주목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송화 부분 및 수화 부분의 선의 유무, 손잡이 부분의 부풀림 정도, 수화기 전체의 기울기 정도 등으로 구성된 수화기 전체의 창작성을 인정한다’고 했고 ‘그 권리 침해는 표현 전체를 그대로 모방한 소위 데드카피(완전 카피)에만 성립된다’고 결론을 짓고 있다.

여기서 데드카피는 말 그대로 통째로 베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향후 데드카피가 발견되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도쿠가와 대표는 “완전한 데드카피에 해당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만큼 향후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도쿠가와 대표는 이번 소송을 계기로 재판소의 판결과 문화청의 저작권 등록이 모순된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이번 재판은 원고는 도쿠가와 대표 1인인데 비해 피고인 수는 134개사나 돼 5개의 소법정으로 나뉘어 재판이 진행됐다. 그 결과 묘하게도 판결 내용은 조금씩 달랐고 정반대라고 생각되는 판결도 나왔다.

그중에서도 논란이 되는 것은 엘리베이터 관련 30개사, 휴대전화 서비스 19개사를 대상으로 재판을 한 소법정에서 ‘저작권’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이에 관해 도쿠가와 대표는 곧바로 도쿄지방재판소 민사부에 제소했다. 문화청 장관이 한 번 인정한 것을 국가 재판소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모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고는 2010년 양도에 따라 자신이 저작권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문화청 저작권과에서 등록 신청했다. 표시 번호 제19532호의 서류에는 분명하게 ‘저작권’이란 문자가 명기돼 있고 왼쪽 끝에는 문화청 장관의 인증을 나타내는 인감이 날인돼 있다.



원고가 승소하면 국제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

그런데 작년 7월 15일 후쿠오카 지방재판소의 일부 판결에 따르면 ‘저작권 등록 명부에 등록돼 있다고 하더라도 저작물이 아니다. 따라서 저작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그렇다면 저작권 등록 원부에 저작물·저작권 이라고 기재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쿠가와 대표는 “일본의 현행법에서 저작권은 등록 시 인세를 내고 상속의 대상이 되며 질권을 설정할 수 있으며 매매도 인정되고 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도 명확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원고는 비약상고를 하며 ‘전화기 마크’ 저작권 소송의 2라운드를 시작했다. 지금으로서는 결과를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약 원고가 승소한다면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는 점이다.

‘문화 및 저작물 보호에 관한 국제 협정’인 베른조약을 보면 가맹국은 서로 다른 가맹국 내에서 공표된 저작물은 물론이고 아직 공표되지 않은 저작물이라도 서로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칫 7조 원대의 엄청난 소송이 일본을 넘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도쿄(일본)=김상헌 기자 ksh123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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