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신어’로 본 유럽 위기 전망, ‘붕괴’보다 ‘해결’…성장 날개 필요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경제 현안을 진단하고 예측해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경제 신어를 파악해 보는 일이다. 요즘 들어 유럽 위기 관련 신조어들이 유난히 많이 나오고 있다.

유럽 위기의 원인으로 러시아 최고의 경제학자인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는 ‘레알에코노믹(Realeconomik)’을 꼽는다. 종전에는 금융 위기의 원인을 제도 미비와 감독 소홀, 인간의 ‘탐욕’에서 찾았다. 하지만 유럽 위기는 도덕성의 상실로 부정과 부패, 탈법 등이 만연된 유럽 사회의 뿌리에서 찾았다는 점이 다르다. 이 용어는 바로 그런 의미다.

위기의 전개 과정과 그때그때마다 나오는 대책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위기 진행과 극복 경로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정국의 위기는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순을 거치는 것이 전형적인 경로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이 순서대로 부족한 유동성을 극복하고 위기를 낳게 한 체질을 개선하면 실물에 자금이 들어와 경기가 회복하게 된다.
<YONHAP PHOTO-0170> German Chancellor Angela Merkel and French President Francois Hollande gesture after a news conference after their talks in the Chancellery in Berlin, May 15, 2012. Hollande was greeted by a thunderstorm in Paris and storm clouds gathering over the euro zone as France's first Socialist president in 17 years was sworn in on Tuesday before flying to Berlin to plead his case for less austerity in Europe. REUTERS/Tobias Schwarz (GERMANY - Tags: POLITICS) /2012-05-16 05:04:21/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유럽 위기와 같은 초대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브라운식 모델’과 같은 비상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브라운식 모델은 영국의 전 총리인 고든 브라운의 이름을 따 붙여진 용어다. 국가의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해 모든 정책은 적기에 결정하고 국민들이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대규모로 신속하게 추진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과감한 금리 인하 정책이다. 비상시에는 시장과 시스템 작동을 전제로 해 금리를 한 단계씩 내리는 ‘베이비 스텝(baby step) 방식의 금리 정책으로는 곤란하다. 4년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에서 추진한 것처럼 한 번에 최소 두 단계 이상 내리는 ‘빅 스텝(big step)’ 금리 인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기준금리가 ‘제로’ 시대에 접어들면 국민들은 양면성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금리 인하 효과와 함께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다면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다. 이 때문에 Fed가 추진한 것처럼 ‘양적 완화 정책(quantitative easing policy)’이 이어져야 한다. 기준금리를 ‘제로’로 내리되 민간이 보유한 채권을 사들여 돈을 공급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디플레 기대 심리를 차단, 지갑을 열게 하는 소비 자극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단기 금리보다 장기 금리를 끌어내려 기업들의 설비 투자와 달러 약세로 수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성장의 세 가지 중심축인 소비·투자·수출이 살아난다면 경기가 회복되고 위기도 극복된다.

양적 완화 정책을 추진할 때 그리스와 같은 부채가 많은 국가일수록 ‘문고리 정책(door knob policy)’을 추진하는 것이 위기 극복을 앞당길 수 있다. 이 정책은 최소한의 담보로 침실의 문고리만 있으면 돈을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다는 중앙은행의 특권을 비유해 만들어진 용어다.

하지만 유로랜드 회원국들은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심리를 앞세워 제각각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대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스파게티 혹은 누들 볼 효과(spaghetti or noodle bowl effect)’ 때문에 위기 대책을 제때 추진하지 못했고 부적절한 대책으로 위기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위기 극복을 주도해 온 독일과 프랑스에 대해 이런 비판이 많다.

본래 스파게티 볼 효과라는 용어는 3년 전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가 “아시아 지역에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나치게 확산되고 있다”며 “과도한 FTA 확산은 무역의 복잡성을 증대시켜 오히려 기업에 해를 줄 수 있는 이른바 스파게티 혹은 누들 볼 효과가 우려된다”고 지적한데서 비롯됐다. 한마디로 얽히고설키는 효과를 말한다.



‘뱅크 런 도미노’ 현상은 글로벌 위기로 이어져

유럽 위기가 제때 해결되지 못함에 따라 그 성격도 크게 변했다. 초기에는 그리스 재정 문제에서 비롯됐으나 이제는 금융 위기로 악화됐다. 이 국면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다. 단일 국가와 달리 유럽은 ‘통합’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이 사태가 발생하면 곧바로 인접국으로 점염되는 ‘뱅크 런 도미노(Bank Run Domino)’ 현상이 발생된다.

‘뱅크 런 도미노’ 현상을 막지 못하면 위기 범위는 유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위기로 치닫는다. 대규모 예금 인출로 유럽 금융사들이 마진 콜(margin call: 자본 부족)을 당하면 이에 응하기 위해 디레버리지(deleverage: 자산 회수) 대상으로 한국과 같은 경제 여건이 좋은 다른 국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오히려 우리 경제가 좋기 때문에 증거금 부족 현상이 발생한 일부 유럽 금융사들이 우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한국 경제의 위기설’은 가능성이 없다. 오히려 유럽 금융사들의 자금 사정이 풀린다면 가장 빨리 돌아올 수 있다.

이 때문에 ‘뱅크 런 도미노’를 막고 글로벌 위기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방어벽을 쌓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완충 자본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 다양한 방안이 논의돼 왔으나 과거 동유럽 위기를 맞아 서유럽 금융사들이 포괄적인 대출 보증 제도를 도입해 해결했던 ‘비엔나 이니셔비티(Vienna Initiative)’를 재도입하면 된다.

금융 위기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부채를 상환해야 할 능력은 키워야 한다. 우리와 달리 유럽 위기는 유동성뿐만 아니라 지급 능력에도 문제가 있는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긴축만 강요해서는 안 되고 성장을 통해 지급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스 처리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유로존에서 완전히 탈퇴시키는 ‘그렉시트(Grexit:Greece+Exit)’와 ‘G 유로(Greece+Euro)’ 방안이다. ‘G 유로’는 외형상으로 그리스를 유로존에 잔존시키면서 독자적인 경제 운용권을 주는 방식이다. 이때 그리스는 위기를 풀어갈 수 있고 독일 등은 구제금융 부담을 덜 수 있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다.

유럽 통합의 기본 골격도 보완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 통합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통화 통합과 재정 통합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주무 부서로 유럽중앙은행(ECB)과 가칭 ‘유럽재정안정기구(EFSM·European Fiscal Stabilization Mechanism)’, 상징물로 유로화와 유로본드 간의 ‘2원적 매트릭스(Two by Two Matrix)’ 체제를 갖춰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위기 관련 신조어들을 꼼꼼히 따져보면 유럽 통합은 ‘붕괴’보다 ‘해결’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때가 되면 요즘 대거 이탈하는 유럽계 자금이 한국에 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유럽 국가처럼 위기 해법 도출에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실리만 중시하는 점을 감안하면 상황이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는 ‘절벽 효과(Cliff Effect)’에도 대비해 놓아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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