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산책] 금융의 빛과 그림자

정부가 할 일은 게임의 법칙을 정해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되 금융을 제공하는 공급자들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유로운 경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금융 혹은 재무는 영어로 모두 파이낸스(finance)라고 한다. 과거 재무부의 재무나 현재 금융위원회의 금융은 영어로 번역하면 모두 파이낸스가 된다.

그런데 영어 파이낸스의 어원은 라틴어인 파이니스(finis)다. 라틴어 파이니스는 끝 혹은 종결이란 뜻인데, 이것이 어떻게 금융을 뜻하게 됐느냐면 금융의 한 속성이 부채의 종결, 곧 상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파이니스의 또 다른 뜻인 목적(end)이야말로 파이낸스가 갖는 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활동에 자본을 조달하는 것, 즉 금융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그 목적을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산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한 장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재무 혹은 금융이 사람들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해 주는 것이므로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반대급부는 당연한 것이다. 2012년 3월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의 억만장자(10억 달러 이상 재산 소유자)는 모두 1226명이었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이들 중에 금융업이나 투자업으로 이 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모두 220명으로 전체의 17.9%에 달하고 있다.

금융에서 큰돈을 번다는 것은 몸으로 어려운 기술을 익히거나 힘든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머리만 써서 재물을 모으는 것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무척 선망한다. 나도 금융을 전공하는 교수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투자에 전념해 큰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이 내재하고 있다. 워런 버핏은 올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부자로 평가된 전 세계 투자자들의 로망이요 전설이다.

그런데 대중은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같이 천재적인 정보기술(IT) 산업의 개척자라면 모를까 남이 하는 사업에 투자하든가 혹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번 사람들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중의 반금융 정서는 1929년 대공황 직후에도 나타났다가 사라졌는데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다시 나타났다. 미국에서 작년부터 월가를 뒤덮은 시위대들의 항의 시위는 대중이 금융 산업 경영자들에 대해 얼마나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작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부실 저축은행 사태로 말미암아 수많은 투자자들이 큰 불편과 손해를 봤다. 다행히 외국에서와 같이 대대적인 항의 시위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손실을 예금보험공사가 보상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금보험공사의 손실보전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결국 국민의 혈세로 갚아 나가야 한다. 금융은 사람들의 목적을 달성하게 해주는 수단을 제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큰 효용과 행복을 제공하지만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바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간섭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금융시장에 지나치게 간섭, 시장의 본래 기능까지 위축해서는 안 된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 말처럼 정부가 할 일은 시장에서 게임의 법칙을 정해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고 대중의 이익을 함양하되 금융을 제공하는 공급자들이 보다 나은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자유로운 경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박상수 경희대 경영대학원장·한국재무학회장

1954년생. 77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90년 미국 시카고대 경영학 박사. 90년 미국 뉴욕주립대(버펄로) 조교수. 95년 경희대 경영대 교수(현). 2006년 기획예산처 기금운용평가단장. 2009년 경희대 경영대학원장(현). 2011년 한국재무학회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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