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부의 왕 外

‘입담 코미디’ 시도는 좋았다

아부의 정중동을 일찍이 깨우친 전설적인 존재 혀고수(성동일 분)는 ‘감성 영업의 정석’이라는 비장의 책을 저술했다. 원래 보험회사 기획팀이었지만 눈치 없고 센스 없는 처세술로 결국 영업팀으로 좌천된 동식(송새벽 분)은 ‘감성 영업의 정석’을 읽고 혀고수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혀고수의 지도에 따라 동식은 숨겨졌던 아부의 재능을 터득하고 청출어람 격으로 성장한다. 여기에 혀고수의 과거 파트너였던 로비스트 예지(김성령 분), 조폭 출신이지만 이제는 홈쇼핑계의 큰손으로 거듭난 이회장(이병준 분)과 동식의 첫사랑 선희(한채아 분)까지 끼어들면서 동식은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한국 영화에서 유독 취약한 장르는 ‘말’로 이뤄지는 코미디다. 예를 들어 우디 앨런 스타일 코미디라든가 1940~195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스크루볼 코미디, 말하자면 입담 좋은 주인공들이 쉴 새 없이 위트 넘치는 대사를 주고받으며 유발하는 웃음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부의 왕’은 제목과 콘셉트부터 보기 드문 ‘말의 블록버스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자아냈다.

어떤 단어가 외국어와 일대일로 대응하지 못할 때에는 그 단어가 갖는 깊은 함의 때문일 것이다. 아부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고객이라든가 윗사람에게 대응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평판과 수입에 직결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야말로 인간관계에 좌우되는 사회생활에서 지위와 나이와 성별과 재산에 어울리는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아부의 기술은 그야말로 초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아부의 왕’은 그런 점에서 굉장히 한국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한 인간관계를 코미디의 소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쩌면 장기 시리즈물로도 가능한 콘셉트일 것 같다.

그러나 ‘아부의 왕’은 주제를 흐리는 온갖 ‘흥행 요소’들을 끌어옴으로써 오히려 영화의 흐름을 흐려 버렸다. 혀고수가 설파하는 단순한 아부의 법칙을 동식이 어떻게 응용하고 확장시키며 사람들을 사로잡는지를 화려한 언변의 테크닉으로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신 ‘아부의 왕’에는 첫사랑과의 애틋한 사연, 깡패 출신 기업인과 사채업자 졸개들의 천박함을 강조하는 슬랩스틱 코미디, 과다한 정치 패러디, 심지어는 액션까지 뒤섞이면서 점점 초점을 잃는다.

“나에게 자존심 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 뇌를 그냥 툭 놔버려, 암요, 그럼요, 당연하죠, 별말씀을”이라는 혀고수의 대사가 살아나기엔 타인의 약해빠진 심리를 파고드는 아부의 순간의 훅이 약하다.





미쓰GO
감독 박철관
출연 고현정, 유해진, 성동일, 이문식, 고창석, 박신양

대인 기피증에 시달리는 소심한 여인 천수로(고현정 분)는 수상한 수녀의 심부름을 하다가 500억 원짜리 범죄에 휘말린다. 이때부터 까칠한 경찰, 말더듬이 소형사, 스파이, 무식한 마약 조직 보스, 무게 잡는 범죄계의 갑부와 얽히며 천수로는 범죄의 여왕으로 재탄생한다.




페이스 블라인드
감독 줄리앙 마그넷
출연 밀라 요보비치, 줄리안 맥마혼

교사 애나는 귀갓길에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범인을 피해 도망치다 바다로 떨어진다. 다행히 의식은 회복됐지만, 사건 당시 충격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면 인식 장애를 앓게 된다.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연쇄 살인범은 그녀 주위 어딘가에 있다.



두 개의 문
감독 김일란, 홍지유
출연 권영국, 김형태, 류주형, 박진, 박성훈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 재개발 4구역에서 대치 중이던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과잉 진압이냐, 불법 폭력 시위냐’라는 논란은 결국 법정으로 이어진다. 사라진 3000쪽의 수사 기록, 삭제된 채증 영상을 두고 진실 찾기가 시작된다.


김용언 영화 칼럼니스트 plat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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