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잃어버린 20년’ 오나…2008년보다 더 큰 충격에 빠질 수 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 표지에 침몰하는 배를 등장시켰다. 배 이름은 ‘세계경제(the world economy)’다. 세계경제를 가라앉고 있는 배에 빗댄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는 JP모건체이스와 핌코 등 대형 은행들이 직원들에게 휴가 계획을 취소하라고 권고했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루머가 확산되자 세계 최대 채권 펀드 운용 회사 핌코는 “휴가를 취소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결국 해프닝에 그쳤지만 월스트리트에 팽배한 위기감을 보여주는 일화다.

세계경제가 심상치 않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 경제 대국들의 동시다발 위기를 빗댄 말)이 오고 있다.” “2008년보다 더 강력한 금융 위기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코노미스트들이 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공공연하게 얘기한다.

미국 잡지 애틀랜틱은 최근 “세계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애틀랜틱은 먼저 최근 리세션의 성격이 일반적인 수요 감소에 따른 리세션과 구조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인 리세션은 경기순환 과정에서 발생한다. 인구 증가와 임금 상승에 따른 수요 증가 속도가 생산 증가 속도보다 빨라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는 금리를 올리거나 지출을 줄인다. 이 때문에 수요가 줄면 재고와 실업이 증가하고 기업 이윤이 감소한다.

그러나 최근 리세션은 다르다. 2008년 금융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터진 2007년 전까지 미국인들은 주택을 안전한 자산으로 여겼다. 주택 가격이 영원히 오를 것으로 믿었다. 대출을 받아 두세 채를 산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과잉 공급된 집값은 어느 순간부터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주택 경기는 침체에 빠졌고 집값은 대출받은 금액보다 낮아졌다.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은 소비를 줄였다. 수요 감소로 리세션이 발생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리세션과 달리 사람들은 빚을 갚아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수요 감소와 함께 과다한 빚에 의존한 자산 버블이 꺼지면서 비롯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 디레버리징이 진행되면 그만큼 경제 회복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위기 직후 발생한 리세션은 통상 7~10년 지속된다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느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YONHAP PHOTO-0399> A Wall St. sign is seen outside the New York Stock Exchange, February 6, 2012. REUTERS/Brendan McDermid (UNITED STATES - Tags: BUSINESS)/2012-02-07 05:52:12/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잡지는 이 같은 구조적인 요인 이외에 세 가지 악재가 세계경제를 추가로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구 고령화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 ▷유럽 재정 위기가 그것이다.

인구 고령화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다. 노동인구가 감소하고 연금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인구 고령화 문제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경제도 문제다. 선진국이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 위기를 겪었던 2008년까지만 해도 중국은 고성장세를 이어가며 세계경제 성장세를 떠받쳤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중국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은 수출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수출만으로 성장 속도를 떠받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수출 중심의 성장에서 내수 중심의 성장으로 경제정책을 바꾸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내수가 활성화되기 전에 수출 시장이 위축돼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애틀랜틱은 중국이 내수 중심의 성장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수요 공백기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틀랜틱은 “세계경제가 2008년보다 더 큰 충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며 “여러 가지 위협 요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면 극심한 불황이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전설리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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