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지원금 신청 돕고 캐시백 주식 투자도…앞서가는 독일 핀테크 은행

코로나19 위기 속 급성장, 투자금도 몰려…1인 기업가·중소기업 겨냥 특화 서비스 경쟁

[글로벌 현장]



장기화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도 독일의 핀테크업계는 호황이다. 컨설팅 회사 EY가 발간한 ‘EY 스타트업 바로미터 2020’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 시기에도 투자 받은 독일의 스타트업 톱10 가운데 무려 4개의 스타트업이 핀테크 분야다.

2013년 설립돼 2016년 은행업 인가를 받은 스타트업 N26가 지난해 1억 달러(약 1110억원)를 추가 유치하면서 시리즈 D 라운드에 진입했고 주식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한 트레이드 리퍼블릭은 6700만 달러를 유치해 시리즈 B 투자를 달성했다. 이 밖에 비금융회사들에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에 맞는 금융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할 수 있도록 API를 개방하는 수요 기반(on-demand) 서비스를 제공하는 솔라리스은행은 6750만 달러를 유치했고 연말 정산과 세금 신고 등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한 택스픽스는 6500만 달러를 유치해 투자 금액 순위 8위에 올랐다.

핀테크는 사업의 특성상 불확실성이 매우 큰 분야로, 투자금을 확보하기 까다로운 분야 중 하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경제 상황에서도 독일의 핀테크업계는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바젤위원회가 쓴 미래 은행 시나리오

2018년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핀테크 발전의 시나리오와 은행 및 정책 당국에 대한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핀테크 발전 방향에 대한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첫째 시나리오는 기존 은행이 핀테크와 만나 고도의 금융 서비스와 저렴한 비용으로 더 나은 은행(better bank)이 되는 방향이다. 둘째 시나리오는 핀테크 기업이 오프라인 영업점 없이 온라인 은행 형태로 운영돼 기존의 은행을 대체하는 새로운 은행(new bank)이 되는 방향이다.

셋째는 분산 은행(distributed bank) 시나리오다. 이는 금융 서비스가 점점 모듈화돼 기존 은행들이 살아남기 위해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금융 서비스 제공 업체가 다양한 디지털 인터페이스에서 바로 적용돼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 등을 개발해 많은 새로운 비즈니스가 등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자주 볼 수 있는 구글페이·애플페이·삼성페이 등의 기술 회사들이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산 은행 시나리오의 좋은 예다.

넷째는 은행이 뒤로 밀린다는(relegated bank) 시나리오다. 이는 기존 은행이 운영 프로세스나 위험 관리와 같은 서비스를 상품화해 제공하는 역할만 하고 직접 고객을 대면하는 것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되는 것이다. 다섯째는 P2P 대출 등과 같이 고객이 분산화·개방화된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금융 서비스 제공자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형태인 비중개 은행(disintermediated bank) 시나리오다.

3년 전 발표된 시나리오가 독일 내에서는 다양한 혁신 은행들을 통해 상당히 많이 구현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은 바야흐로 혁신 은행들의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새로운 은행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독일 혁신 은행들, 코로나19 장기화로 오히려 성장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비접촉·비대면 거래 활동이 확산됨에 따라 기존에 현금 거래를 선호했던 독일인들의 결제 습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독일중앙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독일인들은 평균 약 100유로의 현금을 지갑에 휴대했고 총거래 건수의 약 74%, 총거래 금액의 약 52%가 현금 사용이었다. 이는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 비하면 현저히 높은 비율이다.

그런데 독일 협동조합은행연합회는 코로나19 발발 직후인 2020년 5월 독일 내 비현금 결제 방식 거래 건수가 전년 동월 대비 48% 증가했고 총금액은 34% 늘어났다고 밝혔다. 독일 저축은행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된 이후 저축은행 고객 중 110만 명이 결제 앱을 다운 받았고 협동조합은행이 발행한 약 32만 건의 카드는 모바일 앱에 저장됐다. 이는 2019년 가을 대비 약 3배 정도 증가한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19 위기는 많은 사람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핀테크에 대한 장벽을 허무는 역할을 했다. 이 위기 속에서 몇몇 혁신 은행들이 눈에 띈다.

먼저 최근 삼성과의 협력으로 삼성페이를 유럽에 선보인 솔라리스은행이다. 솔라리스은행은 2016년 설립된 독일의 디지털 은행으로, 처음에는 테크 기업으로 시작해 최초로 독일 금융감독원(BaFin)으로부터 풀 뱅킹 라이선스를 획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2019년 1550만 유로(약 21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고 최근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에도 진출했다. 비금융회사들이 은행 라이선스 없이도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에 맞는 금융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할 수 있도록 API를 개방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로 눈에 띄는 곳은 자영업자와 프리랜서들을 위한 은행 콘티스트다. 독일에서 프리랜서나 1인 사업자들이 회계·재무 관리에만 들이는 시간은 평균 25일, 비용은 약 3000유로 정도가 소요된다고 알려져 있다. 콘티스트는 이러한 비용을 대폭 줄이고 은행과 세무가 결합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독일 정부는 프리랜서와 자영업자를 위한 코로나19 지원금을 발표하면서 추후에 전년도 매출 대비 올해 매출이 하락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세무 서류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콘티스트가 이를 자사의 세무 플랫폼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앱 내에서 코로나19 지원금 신청을 돕는 기능을 추가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를 통해 혁신 은행 중 가장 성공한 은행으로 꼽혔고 ‘2020년 올해의 핀테크 기업’에도 선정됐다.

1인 기업가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 콘티스트라면 펜타은행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본적인 비즈니스 계좌의 기능을 최대한 단순하고 편리하게 만들었고 회사 직원들이 쓸 수 있는 법인카드 발급, 카드 사용 내역 및 회계 관리 동기화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독일 개발은행(KfW)과 협력해 중소기업 전용 대출 상품도 내놓았다. 기업용 보험, 회사용 차량 렌트 등 작은 규모의 회사가 필요한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서 이를 법인 계좌와 연동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독일에서 일반 회사들이 가장 많이 쓰는 월급·세금·회계 관리 소프트웨어 회사인 다테브(DATEV)와 파트너십을 맺고 직원 급여 관리를 펜타은행 계좌에서 쉽게 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도 눈에 띈다. 인공지능(AI) 솔루션을 적용한 카드 결제 리더기 업체 섬업(SumUp)과 협력해 펜타POS라는 상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자영업자 고객들이 매출을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펜타은행은 비즈니스 고객 맞춤형 상품으로 좋은 시장 반응을 얻었고 ‘2019년 올해의 핀테크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밖에 카드 결제 금액을 캐시백으로 되돌려 주고 이 캐시백 머니를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을 제공하는 비비드머니(Vivid money), ‘뱅킹 서비스의 수익을 환경 보호 등의 지속 가능한 가치에 투자한다’는 모토를 걸고 나온 투모로(Tomorrow)은행이 떠오르는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이제 동시다발적으로 글로벌 트렌드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금융 분야에서도 혁신은 독일과 한국이 다르지 않다. 특히 독일에서 시작돼 미국에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한 N26의 사례를 살펴보면 한국 은행들의 목표가 무엇이 돼야 할지 생각해 볼 만하다.

베를린(독일)=이은서 유럽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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