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동대문 패션왕] 업체 8만 개 밀집…생산 인력 ‘부족’

동대문 패션 산업의 어제와 오늘

현재 동대문은 8만 개가 넘는 패션 업체가 밀집해 있고 하루 평균 6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드는 한국 패션 산업의 메카다. 최신 유행 의류들이 하루가 멀다고 속속 빠르게 등장하고 중저가의 가격 경쟁력을 갖춰 국내 소비자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까지 몰려들며 지난 수십년간 전성기를 누려왔다.

동대문은 기획 생산 판매가 한 지역에서 이뤄지는 산업 집적화가 경쟁력이다. “아침에 디자인한 옷이 오후면 매장에 진열된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곳이 바로 동대문이다. 이러한 동대문의 원스톱 시스템은 최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패스트 패션에 가장 적합한 인프라를 갖췄다. 하지만 이러한 동대문의 시스템도 최근 여러 도전을 맞고 있다. 글로벌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시장 장악, 생산 인력의 부족, 제조 공장의 해외 이전 등으로 동대문의 명성이 최근 다소 희미해져 가고 있다. “더 이상 ‘동대문 패션왕’은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까지도 나온다.



1990년대 최대 전성기 누려

역사적으로 동대문시장은 1905년 탄생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시장으로 1960~1970년대 노동집약적 섬유산업이 한국의 주요 수출품일 때 많은 생산 인력과 업체가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1990년대 초 남대문시장도 패션 산업에서 디자인이나 기획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동대문의 생산력을 따라오지 못했다.

동대문에는 청계천부터 구평화·신평화·동평화시장에는 디자인은 잘 모르지만 자체 공장을 갖고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 당시 남대문에서 새로운 디자인이 등장하면 며칠 후면 동대문에서 곧바로 등장해 대량생산됐다. 가격도 남대문 시장에서 팔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판매됐다. 이 때문에 패션 산업은 남대문에서 동대문으로 중심이 이동했고 남대문 상인들이 1990년대 중반 동대문으로 모두 옮겨 왔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APM·두타·밀레오레 등 현대식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도소매를 모두 아우르는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이후 남대문은 아동복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게 됐고 영 캐주얼 패션은 동대문으로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갔다. 상인들에 따르면 당시 통로를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동대문 점포는 붐볐고 하루 수천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곳도 여럿이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에 마루·TBJ 등 중저가 브랜드 체인점이 국내시장에 등장하면서 동대문의 상점들의 매출이 점차 줄어들었다. 2005~2006년까지 하락세를 겪던 동대문 상권은 2008년 세계금융 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때 원화 평가 절하로 인해 중국 상인들이 동대문으로 몰려들어 대규모로 구매해 가는 덕분에 중국 특수를 맞았다. 중국으로부터 돈이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동대문의 매장뿐만 아니라 공장들도 다시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이도 잠시, 자라·H&M·유니클로 등 해외 패스트 패션이 국내시장을 장악하면서 동대문은 다시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글로벌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유통력과 가격 경쟁력을 동대문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특수도 최근 해를 거듭할수록 사라지면서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의류 공장들이 현재 하나 둘씩 문을 닫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명유석 헴펠 대표는 “동대문 상인 및 공장들은 2009년에 비해 올해 수입이 50%로 줄었다고 말한다”며 “공장들이 너무 많이 문을 닫으면서 옷을 만들 데가 없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앞으로 4~5년은 버티겠지만 지금의 생산 기지의 몰락이 지속된다면 동대문의 전망은 밝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근 동대문이 생산 기지로서의 명맥을 잇지 못하는 위기를 맞은 가장 큰 이유는 생산 인력 부족 때문이다. 동대문을 중심으로 장위동을 포함한 성북구·강북구·중랑구 일부에 봉제 공장이 퍼져 있다. MK패션산업발전협회에 따르면 이곳에 있는 봉제 공장 종사자들을 모두 합치면 25만~27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곳 ‘미싱사’들은 모두 40대 이상의 중년 여성이다. 한국의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봉제 공장 종사자의 85%가 40~50대다. 30대는 8%이고 20대는 겨우 2%뿐이다. ‘미싱’이 고되고 박봉인 직업인 까닭에 더 이상 새로 일을 배우러 오는 젊은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패션 산업 인력 구성을 보면 디자인을 전공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지만 봉제·재단을 하는 인력은 1960~1970년대 여공이었던 인력이 그대로 남아있을 뿐 신규 공급은 거의 없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서울 서대문구 대흥동의 한 봉제업체 사장이 일감이 줄자 울상을 짓고 있다./강은구기자 egkang@ 2006.09.12


40대 이상 중년 여성이 떠받쳐

외국인 노동 인력을 의류 공장에 유입하기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외국인 노동자는 정부 관리 하에 월급제로 근무해야 하는데 동대문 봉제 시스템은 맡은 물량대로 임금이 지급된다. 주문 물량이 기복적이라 월급제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비숙련이며 숙식을 제공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 대신 차라리 60~70대지만 동대문 일대의 할머니 숙련공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물량을 맞출 수 있다.

주요 패션 브랜드의 공장은 이미 2000년대 해외로 대부분 이전했다. 그나마 동대문에서 도매로 판매돼 전국 편집숍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물량만 동대문에서 생산돼 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임비가 낮은 중국과 베트남 등의 공장으로 물량을 돌리면서 동대문 일대의 공장들이 존폐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동대문의 점포들은 이제 한국에서 만들기보다 중국에서 대량으로 제조해 가져와 파는 구조가 일반화됐다. 원단은 아직 한국제가 좋지만 중국 인력의 봉제 기술은 이제 한국보다 더 좋다고 평가된다.

이런 의류 제조 인프라의 붕괴는 이미 일본과 대만 등이 겪었던 일이다. 1990년대 동대문의 제조 공장들이 호황을 누렸던 배경이 자체 생산력을 잃은 대만으로부터 주문이 동대문으로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한국도 몇 번이나 제조 기반이 붕괴될 위기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대만·홍콩에서 주문이 밀려들면서 이제까지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제조 공장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은 끝이 없어 보인다.

명 대표는 “미국의 자바 시장이 전 미국과 중남미의 모든 수요를 흡수하고 이탈리아의 밀라노 시장이 유럽과 전 세계의 수요를 감당한다”며 “한국도 의류 생산 기지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도록 하고 해외 도매 유통이 쉽게끔 동대문을 자유무역 지대로 설정하는 등의 시스템을 갖춘다면 아시아의 패션 산업 수요를 담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생산 기지로서 장점을 현재 잃어 가고 있어 국내 패션 산업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패션 산업 시장 규모는 연간 28조 원에 달한다. 이 중 동대문 패션타운이 들어선 지역 매출이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최대의 패션 중심지인 동대문이 아시아의 패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쌓아 온 제조·유통·판로 등을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