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워즈니악] “한국은 영감과 아이디어 풍부한 나라”

파워 블로거 ‘광파리’가 만난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62)을 5월 3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만났다.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대단한 분을 만난다는 설렘도 있었고 ‘한물간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해 주겠어’하는 회의감도 있었다. 만나 보니 달랐다. 대단한 분이었다. 펄펄 끓는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오는 듯했다. 소문대로 자유분방한 해커였고 장난꾸러기 근성도 엿볼 수 있었다.

워즈니악은 플라자호텔 5층 인터뷰장에 부인과 함께 나타났다. 검은 바지, 검은 셔츠에 파란 운동화 차림이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입느냐”, “검은 색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빨간 셔츠는 입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 있던 부인이 “스탠퍼드 상징색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워즈니악은 버클리 출신으로 자존심이 강하다는 얘기였다.

PC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터뷰는 재미있게 진행됐다. 무엇보다 포스트 PC, 클라우드 컴퓨팅, HP의 경영난 등에 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워즈니악은 인터뷰 내내 빠르고 힘찬 목소리로 쉼 없이 얘기했다. 그는 ‘포스트 PC’ 개념에는 동의하지만 PC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컴퓨터가 갈수록 쓰기 편해질 것이란 뜻으로 ‘인간화(humanness)’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먼저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포스트 PC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는데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워즈니악은 “예”, “아니오” 대신 길게 설명했다. “중요성이 줄어들 뿐 PC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용량 작업을 빼곤 사용하기 편한 기기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래 PC에 대해서는 “적은 돈으로 일상생활의 일을 처리하는 단순한 기기”라고 정의했다.

워즈니악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PC를 팽개치고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신은 PC를 더 선호하지만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고 이에 따라 자신의 삶도 바뀌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커뮤니케이션·e메일·웹서핑 등은 역시 큰 화면을 보면서 키보드를 사용하는 게 편하다고 했다.

“포스트 PC가 어떤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사용하기 편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오래전 애플에서 컴퓨터를 개발할 때부터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컴퓨터는 실제로 사용하기 편한 쪽으로 발전해 왔다”, “복잡해진 측면도 있지만 모바일 기기는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즈니악은 “예전 컴퓨터는 편하다기보다 우리가 익숙해졌다고 보는 게 맞다”며 아이폰 4S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된 음성 명령에도 큰 기대를 표시했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말해도 알아들을 수 있지만 컴퓨터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사람이 실수해도 컴퓨터가 이해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게 내가 말한 ‘인간화’다”라고 말했다.

클라우드 컴퓨팅에 관한 의견도 얘기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아주 좋은 개념이다. 미래 컴퓨터는 클라우드를 쓰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클라우드는 사람들이 돈을 집에 보관하지 않고 은행에 보관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하지만 모든 자료가 클라우드에 있다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면 클라우드의 단점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태블릿 시장에서 아이패드가 독주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느냐고도 물었다. 워즈니악의 답변은 이랬다. “아이패드는 그야말로 ‘도약하는 개구리(leap frog)’였다. 성능과 가격은 따라갈지 몰라도 점유율을 빼앗아 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시장을 선점한 제품을 능가하려면 훨씬 더 우수한 제품이라야 한다. 아이패드는 성능·품질·가격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걸 다 갖췄다.”

첫 직장 HP의 경영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장기 연구·개발(R&D)에 중점을 두자는 측과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단기 이익에 초점을 맞추자는 측으로 의견이 갈렸는데 불행하게도 후자로 기울었다. 내가 HP에 다닐 때만 해도 10년을 이끌어갈 신기술 연구를 활발히 했는데 요즘엔 너무 상업적이다. 연구소 직원을 줄인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걱정스럽다.”

스티브 잡스 후계자인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워즈니악의 답변은 이랬다. “팀이 잘하길 바란다. 그 어느 CEO나 실패할 수 있다. 스티브도 훌륭한 CEO였지만 실패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소비자를 철저히 배려한 것에 열광하고 그를 영웅으로 기억하는데 팀도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다. 스티브한테 많은 영감을 받은 사람이다.”

지난해 구글 캠퍼스에 가서 선물 받은 안드로이드폰을 잘 사용하느냐고도 물어봤다. 워즈니악은 베스트바이에서 삼성 갤럭시 넥서스폰을 사려고 ‘제품이 있느냐’는 메모를 남겼더니 구글 직원이 ‘한 대 선물하겠다’고 해 구글 캠퍼스에 갔다고 해명했다. 또 안드로이드폰의 근접통신(NFC) 기능을 이용해 슈퍼마켓에서 폰으로 결제하는 게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환갑 넘었지만 해커 기질 여전

구글 캠퍼스에서 “안드로이드폰 최고”라고 말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던 걸 상기시키며 “세계 최고의 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워즈니악은 “최고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필요한 기능이 다르고 선호하는 기능이 다르지 않느냐. 자기가 가지고 있는 폰이 그 사람에겐 최고의 폰이다. 나한테는 아이폰이 최고다”라고 답변했다.

현재 사용하는 폰을 보여 달라고 하자 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 4S를 꺼내 보여주면서 “아이폰 언록(잠금 해제)”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해커 기질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워즈니악은 아이폰 잠금을 해제해 해외에서는 ‘로컬 유심(사용자 식별 카드)’을 꽂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갤럭시폰도 좋아한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국에 머무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도 물어봤다. 워즈니악은 “한국은 미래 기술을 개발할 영감과 아이디어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라면서 “이런 측면에서 미국은 많이 쇠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에서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창업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들을 높이 평가하고 독려해 주고 싶다”고도 했다.

애플 공동 창업자로서 애플 경쟁사인 삼성 제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워즈니악은 “삼성 제품을 매우 좋아한다. 애플을 제외하곤 삼성 제품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대답했다. 또 “갤럭시탭은 크기도 마음에 들지 않고 기능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갤럭시폰은 아주 좋아한다”면서 “집에 삼성 TV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워즈니악은 “삼성한테 한마디 조언한다면 뭐라고 하겠느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도 성의껏 답했다. “조용한 곳에 연구소를 짓고 창의적인 인재들을 고용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압력도 받지 않고 차분히 생각하며 연구할 수 있게 배려해 주면 좋을 것이다. 그곳에서 유사 제품이 아니라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최고가 될 수 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서울광장으로 내려가 사진 촬영을 했다. 워즈니악은 아내를 껴안는 포즈를 취하는 등 장난기를 발휘하기도 했다. 워즈니악은 현재 SSD 업체 퓨전아이오의 최고 과학자(Chief Scientist)로 일하고 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블로그 ‘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 운영자 kh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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