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회장 “세계1등 문화기업이 목표”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필연이지 않을까. 시장이 워낙 좁아 내수에 의존하면 성장 한계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장의 국경도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기업들과 정면 승부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글로벌화는 험난할 수밖에 없다. 낯선 땅에서 낯선 소비자와 만나야 한다.그들이 믿고 살 수 있는 제품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하는 것은 필수다. 자동차와 가전 등 제조업은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면서 글로벌화에 성공했다. 반면 음식과 영화 등의 문화 산업은 부딪치고 깨지면서 쌓은 노하우가 없다. 그래서 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실패를 감수하겠다는 오너 경영인의 의지가 없다면 글로벌화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CJ그룹이 식품·영화·미디어 등 비제조업으로 줄기차게 세계시장을 노크하는 것도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10년 7월 서울 상암동 CJ E&M센터 개관식 기념사에서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식품 사업에서 출발해 국내 최대의 종합 식품 회사가 된 CJ그룹이 기존 기득권에 기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쉬운 길 대신 지난 10여 년간 거듭되는 적자를 보아가며 왜 E&M사업에 투자해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글로벌 CJ’에 대한 이 회장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회장은 “전 세계인이 우리의 음식·영화·방송·음악을 즐기며 생활하게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이를 위해 “2013년 해외 매출 비중 50%를 달성해 ‘글로벌 CJ’의 기반을 마련하고 2020년 글로벌 매출 70%를 이뤄내 ‘그레이트 CJ’를 완성한다”는 당찬 목표를 세웠다. 이 회장은 “2020년에는 CJ의 4대 사업군 가운데 최소한 2개는 세계 1위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한식 세계화는 CJ의 의무”
이 회장의 글로벌 의지는 CJ그룹을 ‘내수 기업’에서 ‘한류 전도사’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다. 미국에서는 즉석밥 햇반, 양념장, 만두 등 한국 고유의 음식을 선보였고 ‘비비고’라는 비빔밥 외식 브랜드도 론칭했다. 중국 및 동남아에서는 홈쇼핑 사업에서의 눈에 띄는 성과와 함께 베이커리·방송·극장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이 회장은 “CJ그룹을 식문화·콘텐츠 등 우리의 생활 문화를 세계로 전파하는 ‘문화 창조 기업’으로 자리매김시킨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식문화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우리나라 음식도 일본이나 태국 음식처럼 세계화될 수 있으며 사업적 차원을 떠나서라도 한식을 세계화하는 것이 국내 최대 식품 기업으로 출발한 CJ그룹의 의무”라는 신념을 이 회장은 갖고 있다.
문화 콘텐츠 사업은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가 향후 최소 20년은 중국보다 앞설 수 있으며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큰 수익을 창출,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할 산업”이라고 주장해 왔다.
현재 CJ E&M의 방송·영화·음악·게임 등의 콘텐츠들은 미국·일본·중국·동남아 등 여러 나라에 진출해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5년간 우리나라 문화 산업 글로벌화에 확신을 갖고 1조5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는 것이 CJ 관계자의 설명이다.
물론 초기엔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돈이 안 되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문화 산업을 글로벌화해야 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 회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이병철 선대 회장이 해왔던 ‘문화 없이는 나라도 없다’라는 말을 자주 인용하며 “역사적으로 경제 강국의 전제 조건은 문화 강국”이라면서 “우리나라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문화 상품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회장은 ‘문화 보국론’을 중시한다. “그룹의 창업 이념인 ‘사업보국(기업 활동을 통해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을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 이뤄야 한다”며 경영진 회의는 물론 사석에서도 이를 거듭 강조한다. ‘사업보국’은 선대 회장이 금과옥조로 여긴 가치다. 이런 이유로 그룹 안팎에서는 이 회장과 그 경영 철학에 대해 “선대 회장을 그대로 닮았다”고 말한다.
물론 이 회장이 CJ그룹의 글로벌화를 강조하는 것은 국내 사업이 갖는 성장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식품&식품서비스·생명공학·엔터테인먼트&미디어·신유통 등 CJ그룹의 4대 사업군 모두가 내수 시장만을 목표로 한다면 CJ그룹의 제2의 도약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이 회장은 2006년을 CJ그룹의 ‘글로벌 경영 원년’으로 규정하고 CJ그룹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에 ‘제2의 CJ’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중국 중심의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최근 서울 필동 인재원에서 열린 ‘2012 CJ온리원(ONLY ONE) 컨퍼런스’에서 “단순 해외 진출이 아닌 세계 1등을 목표로 하는 마인드와 생각을 갖고 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CJ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이 단기간에 수익을 낼 수 있는 제조업에 집중하는 상황에서도 이 회장은 문화 산업에 대한 비전과 글로벌 진출을 오래전부터 강조해 왔다”면서 “이 회장의 뜻대로 CJ가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다면 ‘사업보국’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J 글로벌 도전사
1988년 첫 진출… 2005년 미국 뚜레쥬르 개설
CJ그룹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경영에 나선 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88년. 인도네시아 파수루안에 라이신 생산법인을 설립하면서부터다. 2000년 초까지 글로벌 사업은 사료와 바이오 위주였다. 1996년 파수루안에 사료 공장을 세웠고 이듬해 세랑 지역에도 공장을 건설했다.
CJ는 2000년 초 해외 진출의 관점을 달리한다. 미래 성장 기반으로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오쇼핑·푸드빌·CGV 등 전 계열사가 해외 진출에 나섰다. 중국 공략이 우선됐다. 2003년 8월 합작 회사인 ‘동방CJ홈쇼핑’을 설립했다. CJ는 중국에서 동방·천천·남방CJ 등 3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2002년에는 칭다오에 다시다 공장을 건설하고 조미료 사업에도 진출했다.
2005년 드디어 미국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소규모 식품회사 애니천을 인수했다. 애니천은 내추럴 푸드 마켓(일체의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는 식품 시장)에서 편의 식품 및 소스 제품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기업이었다. 같은 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뚜레쥬르 1호점을 오픈한다. 2006년엔 미국 냉동식품 업체 옴니를 인수하며 미주 지역 시장을 공략할 발판을 마련한다.
2006년은 CJ가 ‘글로벌 도약의 원년’으로 정한 해다. CJ중국본사를 설립했고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도 해외로 진출했다. 일본에서 엠넷 재팬을 개국했고 중국 상하이에 ‘상영CGV’를 개점했다. 그해 브라질 상파울루에 라이신 공장을 세운데 이어 물류 사업의 해외 진출도 이뤄졌다.
CJ의 해외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문화’라는 키워드가 강조되기 시작한다. 2009년 한식 세계화를 위한 첫 단계로 글로벌 시장에 맞는 스코빌 단위(SHU)를 사용해 고추장의 매운 맛을 등급화했다. 2010년 5월 ‘비비고’라는 한식 브랜드를 론칭했다. E&M 사업군에도 힘이 실린다. 2009년 론칭한 ‘tvN 아시아’는 2012년 현재 대만·홍콩·싱가폴 등 9개국에 약 300만 가구에 송출되고 있다. CGV는 베트남에서 최대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을 인수, 현재 9개관 69개 스크린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에 이어 베트남을 ‘제3의 CJ’로 키우고 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