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靑까지 나선 와인 인터넷 판매 논란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정이 날 것 같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관계자가 5월 23일 오후 2시 30분께 전화 통화를 통해 한 말이다. 이날 오후 5시엔 공정위와 국세청 관계자들이 청와대에 모여 인터넷 와인 판매 허용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공정위 관계자의 ‘긍정적’이란 말은 공정위가 애써 온 대로 국세청이 인터넷 와인 판매를 허용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30분간 진행되기로 예상됐던 회의는 1시간 30분이 걸렸고 관련 사안은 추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 초부터 와인 가격 인하 효과를 앞세워 인터넷 판매를 추진해 왔고 주무 당국인 국세청은 탈세 우려, 청소년 음주 노출, 국민 건강 저해, 형평성 논란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해 왔다. 실제 와인 인터넷 판매가 허용되려면 국세청 고시를 개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공정위와 국세청은 그동안 수차례 부처 간에 협의했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오히려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빚으며 팽팽한 기싸움을 벌여 왔다. 이날 청와대까지 의견 조율에 나선 배경이다.

회의 직후 인터넷 와인 판매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공정위와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은 “앞으로 부처 간 추가 협의가 이뤄지겠지만 허용을 전제로 국세청의 우려를 시스템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이 주로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국세청 관계자는 “주류의 인터넷 판매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을 감안해 신중하게 결론을 내야 한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내 주류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추진돼 왔다. 2008년 8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경쟁 촉진을 위한 규제 축소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재정부·농림수산식품부·공정위 등 관련 기관들은 주류의 생산 판매, 규제 완화 및 연구·개발(R&D) 지원을 핵심으로 한 주류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실제 2010년 4월부터 막걸리 등 전통주의 인터넷 판매가 허용됐다.

문제는 전통주 인증을 받지 못한 국산 와인 업체들이 형평성에 대한 논란을 제기하는 데서 생겼다. 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 등에서 수입된 외산 와인은 FTA 발효에도 불구하고 수입 및 유통 업체들의 고마진 때문에 소비자들이 FTA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지적마저 나왔다. 물가를 신경 쓰고 있는 재정부·공정위·청와대로선 와인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한 방법으로 인터넷 와인 판매를 허용하는 데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 실제 수입 와인은 수입 업체, 도·소매 유통 업체 등의 다단계 유통 구조와 일부 유통 업체들의 고가 마케팅 전략으로 인해 수입가보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은 여전히 단호하다. 인터넷으로 와인을 판매하면 주세·교육세·부가가치세 등의 탈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 와인에 붙은 세수가 줄어든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마저도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계속해 국세청을 설득 중이다. 와인을 인터넷에서 구매할 때 현재 은행들이 사용하는 공인인증서를 활용할 수 있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인터넷 판매 사업자의 범위도 국세청으로부터 정식 수입 허가를 받은 수입 업체로 제한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중간 도매상 등 유통 업체들까지 허용하면 사업자가 난립해 국세청의 감독·관리가 힘들어져 세금 탈루가 횡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업계에서는 수입 업체들의 인터넷 판매 가격이 대형 마트와 백화점 매장 판매가에 비해 10~30%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주류를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국가에서는 온라인 판매 가격이 매장 판매가에 비해 10~20% 저렴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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