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의 유쾌한 제주 실험]“즐거운 제주 정착, 가치관이 달라져요”

4인 4색 직원들의 솔직 토크

지난 4월 30일 오후 1시. 피어싱을 한 남성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어서 들어오는 두 명의 남녀는 모두 청바지 차림이다. 한눈에도 캐주얼한 느낌의 4명의 청춘 남녀(평균 나이 30세)는 좌담회를 위해 모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직원들이다. 제주로 옮긴 시점·소속·나이·성별은 달랐지만 제주를 ‘제2의 고향’이라고 이구동성 외쳤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다. ‘인(IN)서울’의 가치를 버리고 남쪽 끝자락에서 새터를 닦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사옥은 일하기에 좋을까. 제주에서 희망 찾는 4인 4색의 이야기를 전한다.

제주 이주를 앞두고 어떤 기대 혹은 우려가 있었나.

양희재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2004년 처음 다음이 제주로 내려올 때 16명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간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짐을 싸서 내려왔다. 그때는 1~2년 살다가 올라오지 않을까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제주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살고 있다.

홍종민 금융 IT 관련 일을 하다가 다음으로 이직했다. 취업 원서를 낼 때부터 제주도에 지원해 내려왔다. 다음에도 가고 싶었고 마침 지원하는 팀이 제주에 있었다. 좋아하는 두 개를 한 번에 할 수 있으니 최적의 조건이었다.

백수희 취업난이 심해 어디서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취업할 때 제주 근무 조건이 있었다. 너무 멀어서 별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겠지’라고 생각하며 일만 보고 왔다. 내려와서 회사 사람들과 주말마다 돌아다녔는데 이전에는 몰랐던 매력이 보이더라. 맛집도 많다. 원래는 1년 근무하고 서울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좋아서 계속 일하고 있다.

신연호 고등학교 때까지 20년 동안 강원도 춘천에서 살았고 대학 이후 서울 생활을 했는데 뭔가 답답함이 있었다. 마침 다음에서 제주로 이전하면서 서울을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아내와는 당시 연애했는데 교사직을 그만두고 같이 내려와 살자고 말했다. 많이 반대하지 않아 밀어붙였다. 처가에서는 ‘거기 몇 년 살기 괜찮지. 애 낳으면 올라와야지’라고 하셨다.


와서 보니 생각과 현실에 어떤 차이가 있던가.

양희재 서울에서와의 삶과 너무 달랐다. 서울에서는 출퇴근하는데 2~3시간씩 걸렸는데, 지금은 20분 걸린다. 차를 장만해 주변 경관을 보면서 하이킹 하는 기분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또 서울에 비하면 더 싼값에 더 넓은 평수에 살 수 있다. 서울에 사는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전세를 살고 있다. 주변에 집을 산 사람이 나 혼자이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신연호 여름에 6~7시쯤 퇴근하면 해변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낚시하고 주말마다 놀러 다니고 레저 활동을 했다. 윈드서핑을 좋아해 주말마다 바다에 살았다.

홍종민 제주에 오면 돌담집에 살 줄 알았는데 처음 본 신시가지 원룸촌은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랐다. 일부러 제주까지 왔는데 도시 같은 느낌이 싫어 회사에서 5분 거리로 다시 이사 왔다. 내 인생이 더 길어지는 느낌이다. 길에 쏟는 시간이 서울에서 1시간이 넘었다면 여기선 5분으로 줄었다. 하루에 2시간씩 더 생기는 셈이다. 1년으로 보면 긴 시간이다. 다만 서울 친구들 경조사에 많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쉽다.

양희재 좋을 때도 있다. 결혼식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을 때 핑계가 생긴다. 시월드(시댁을 지칭)에서도 멀수록 좋다.

생활 여건, 문화적인 측면에선 어떤가.

백수희 대중교통이 조금 불편하다. 30분, 1시간 걸려 오는 버스도 있어 자동차가 없으면 여기저기 다니기가 힘들다. 서울에선 차가 있는 게 더 힘들었는데 여기는 차가 있어야 좋다. 또 옷을 사고 싶을 때가 있는데 제주도에 백화점이 없다. 눈이 많이 낮아져 있다가 가끔 한 번씩 서울에 가면 모든 옷이 다 예뻐 보이더라.

양희재 여기선 인터넷 쇼핑을 많이 하게 되는데 작은 물건을 사도 항공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그래서 자체 공동구매를 많이 진행하는 편이다. 콘서트나 뮤지컬, 연극은 잘 볼 수 없다. 대신 영화는 예매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편하게 볼 수 있다.

홍종민 장점이자 단점이 팀원과 굉장히 친해진다는 것이다. 개인 생활도 없어질 정도다. 같이 많이 돌아다닌다. 오름도 많이 보러 가고 한라산도 타고 서울에선 하기 힘든 골프도 즐긴다. 강습료도, 라운딩 비용도 저렴하다. 연습도 벽이 아니라 노루가 돌아다니는 공간에서 한다. 골프·승마·스킨스쿠버·다이빙은 손만 내밀면 언제든 잡을 수 있는 취미다. 회사 내에 취미로 시작해 프로 레벨을 취득한 스킨스쿠버도 있다.

양희재 의료가 좀 걱정이다. 제주도에는 큰 병원이 많지 않다. 한 번은 임신한 지인이 아파서 한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임산부가 따로 먹는 약을 몰라 책으로 찾고 있더라. 그냥 참으라고 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 전문화된 인력이 부족한 게 아쉽다.

진행 결혼과 양육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신연호 20개월 된 아이가 한 명 있다. 아내가 처음엔 걱정을 조금 했는데 지금은 많이 만족해 한다. 집을 시골 외곽 쪽에 마련해 바로 한라산이 보인다. 아이와 함께 산책하기에 좋다. 주말에도 특별한 곳에 놀러가는 게 아니라 차 타고 돌아다니면서 바다가 보이면 돗자리를 펴고 놀곤 한다. 중고등학생 때까지는 이런 환경에서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홍종민 팀장님이 여성인데 주말 부부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올라가 주말에 오시더라.

양희재 육아 때문에 걱정은 된다. 다음에서 사내 커플로 결혼했고 남편은 퇴사해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둘 다 제주에 연고가 없다 보니 아이를 낳았을 때 믿고 맡길 곳이 없다. 막연하게 걱정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다 보니 벌써 5년이 됐다. 여건이 되는 한 여기에서 살고 싶기 때문에 1년 정도 휴직하고 직접 아이를 돌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 크면 회사 어린이집에 맡기면 될 것 같다.

신연호 신제주 쪽에는 학구열이 상당하다고 하더라. 하지만 어릴 때는 그냥 집에서 키우고 싶다. 유난스럽게 키우고 싶지 않다.

양희재 제주에서 자녀를 키우는 분들을 보면 서울에서처럼 유난스럽게 키우는 분이 많지 않다. 영어 유치원 보내는 사람은 보지 못했고 대학 부속 유치원 정도 보내는 게 전부더라. 서울에서처럼 학원을 몇 개씩 보내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게 싫어서 내려온 것이라서 아이들은 흙에 풀어놓고 키우자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서울에서 내려온 아이들을 보면 뽀얗고 예쁜데, 한 해만 지나면 너무 돌아다녀서 이밖에 안 보인다. 그게 아이 정서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 나도 그렇게 키우고 싶다.

홍종민 아직 미혼이다. 여자 친구 있을 때 제주에 왔다. 굳이 좋아하면 문제가 될까 했는데 계기는 될 수 있더라. 한 번 그런 일을 겪으니 서울에서 소개팅 할 기회가 있어도 거절하게 된다. 제주에서는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이상 회사 이외 사람들을 만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백수희 회사에서 만나 연애했다. 남자 친구는 지금 공부하겠다며 퇴사한 상태다. 주변에서도 회사 아니면 만날 기회가 없다고 말한다. 서울에서 소개팅을 해도 장거리 연애를 하기 부담스러워 시작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내 커플이 많다. 알려지지 않은 커플도 많다. 혼자 떨어져 있으니까 외로워서 서로 의지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양희재 다음에 사내 커플 많다는 게 외부에도 소문이 났다. 물론 깨지면 문제이긴 하지만 우린 쿨하니까.(일동 웃음)

새로 옮긴 사옥에서 일하기엔 어떤가.

양희재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안마방이다. 안마기기에 누워서 창문 너머 텃밭을 볼 때는 마님이 된 기분이다.

신연호 아직 문을 연 지 오래되지 않아 외부 사람들이 자주 온다. 사진을 많이 찍는데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너무 개방돼 있다 보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사무 공간 이외에는 야구장을 자주 이용한다.

홍종민 미혼 남성이기 때문에 세탁방을 잘 이용한다. 아침·점심·저녁을 회사에서 먹는 것도 좋다. 평일에 장 볼 일이 없다.

신연호 기혼이지만 세탁방은 아직도 자주 이용한다.

양희재 서울에선 사무실 안에 있으면 머리가 좀 아팠다. 천장이 낮고 공기가 탁하고 순환이 잘 안돼서 그런 것 같다. 여기에서는 자리에 앉아 있어도 거의 야외에서 일하는 수준이다.

백수희 가장 좋은 건 잠깐 산책하고 싶을 때 마음껏 녹지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가면 산책 코스로 좋은 곳이 많다. 얼마 전에는 걷다가 계곡도 하나 찾아 사진을 찍어 공유했다.

양희재 점심시간에는 마치 태릉선수촌 같다. 테니스·농구·축구·야구 등 운동을 많이 한다. 텃밭 동호회가 있어 비료 주고 호미질 하고 돌 캐고 한다. 업무 시간에 게임하는 사람은 없다. 업무 공간과 노는 공간이 섞여 있지만 구분돼 있다. 시간표에 맞춘 것처럼 시간 되면 밥 먹고 시간 되면 놀고, 다시 일하고 저녁에 퇴근한다.

홍종민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일찍 출퇴근할 수 있다. 가정 있는 사람은 9시에 출근해 한 시간 일찍 퇴근하는 식이다. 예전에 금융 쪽에서 일했는데 밤 11시 전에 퇴근하기가 힘들었다. 여기에 와서 8시 30분까지 일했는데 ‘왜 집에 안 가고 있느냐’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일찍 퇴근하는 편이다.

양희재 야근이 있어도 별 부담은 안 된다. 주말 근무할 때도 오히려 집중이 잘되는 것 같다.

신연호 주말에 가족들을 데리고 자주 회사에 놀러온다. 보통 회사는 놀러오는 공간이 아닌데 주말에 쉬러 오는 직원들이 많다. 텃밭 가꾸고 탁구 치고 커피 마시고 한다.

홍종민 서울에서는 퇴근 이후에 친구를 만났다면 여기서는 팀원을 만난다. 주말에도 팀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업무적으로 부딪칠 수도 있지만 함께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풀린다.

사내 기업 문화는 어떤지.

백수희 처음 직장 생활을 제주에서 시작해 비교할 만한 게 없다. 그런데 주변에서 ‘다음 안 좋아’라는 얘기를 들었다. 무슨 소린가 했는데 여기서 일하면 다른 회사에 갈 때 안 좋다는 말이었다. 업무 강도가 세고 직급도 세분화돼 있는 기업에 가면 적응하지 못한다는 소리다. 여기는 정말 자유스러운 분위기다.

양희재 우리는 팀장님이 고기를 구워 준다. 호칭도 팀장님이 아니라 이름 뒤에 님을 붙인다. 누가 ‘너네 CEO가 누구야’ 물으면 ‘세훈님’이라고 답한다.

홍종민 회사 동료와 가족과 같이 지낸다. 그래서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다. 아이디어도 일단 던져보고 아니면 마는 거다.

백수희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계급사회를 생각했었다. 위에서 지시하면 하고 그것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전혀 다르다. 일을 줄 때도 ‘이런 결과를 원하는데 뭘 해야 할지 수희 님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한다. 정답을 알아도 계속 생각해 보라고 한다. 속으로는 ‘그냥 시켜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일하니 더 생각하게 되고 아이디어도 많이 내게 된다. 성취감이 남다르다.

양희재 기획자들은 서비스 하나를 만들 때 자식 같은 느낌이 있다. 그래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편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알아서 잘해야 하고 성과도 내야 하는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홍종민 봉사 활동을 많이 한다. 다음은 사회 공헌에 적극적이다. 단지 돈을 걷어서 주는 식이 아니라 직접 초대하고 만나고 몸으로 부대끼는 활동이 많다. 우리 회사가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즐거운 실험’ 경험자로서 조언을 한마디 한다면.

홍종민 서울에 있을 때는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기분이 있었는데 여기 오니 살기 위해 일을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기계의 부속품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일은 내 삶의 많은 부분 중 하나다. 즐거운 게 정말 많고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으니까 그 부분이 가장 만족스럽다. 서울과 동일한 업무 강도로 일한다고 했을 때 스트레스가 줄었다.

신연호 개인적으로는 제주에 너무 많이 몰려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땅값도 오르고 백화점도 생길 것이다. 그런 건 싫고 적당히 내려왔으면 좋겠다.(웃음) 친구들이 가끔 놀러오면 부럽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잃는 것과 얻는 것을 다 말해준다. 무조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얻는 게 더 많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여유’로부터 다른 게 다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서 회사 오는 것도 재밌고 놀러 다니는 것도 즐겁다.

홍종민 꼭 제주가 아니어도 다른 지방으로 기업들이 골고루 퍼졌으면 좋겠다. 서울과 제주도는 극과 극이다. 제주에서도 했는데 다른 곳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양희재 정 붙이면 고향이라고 하는데 8년 정도 살면서 제주도가 제 2의 고향이 됐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제주가 좋고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는 이상 계속 제주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곳에서 알았다.



진행·정리=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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