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일탈로 법인세 '과소신고' 회사도 몰랐다法 "가산세 물어선 안 돼“

직원 횡령으로 회사도 피해 봐...대법 "회사 과세 처분 부당"

[법알못 판례읽기]



직원들이 위법한 행위를 저질렀다면 회사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직원이 고의로 저지른 일로 회사가 설령 이익을 봤더라도 이를 무조건 회사가 잘못한 것으로 보고 ‘페널티’를 매길 수 없다는 취지의 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020년 12월 8일 A사가 마포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법인세 등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회사 임직원의 적극적인 부정행위로 회사가 법인세를 원래 내야 할 금액보다 적게 납부했다면 이를 회사의 부정행위로 간주하고 40%의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

1·2심 “임직원 부정행위는 곧 ‘법인’의 부정행위”

A사는 가맹점의 결제 정보를 신용카드사나 국세청에 전달해 정산 등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축, 제공하는 밴(VAN) 서비스 제공 업체다.

이 회사에서 근무해 온 임직원 B 씨 등은 가맹점에 재계약 지원금 등을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A사로부터 약 20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B 씨 등은 이 돈을 가맹점에 전달한 뒤 다시 돌려받는 수법으로 가로채 사기 및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결국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들의 범행 때문에 A사도 영향을 받게 됐다. 사업연도 소득 가운데 20억원이 누락된 채 법인세를 신고·납부한 것이다. 세무 당국은 B 씨 등 임직원의 부정행위를 법인(회사)의 부정행위로 간주하고 10년의 장기 부과 제척 기간을 적용한 법인세 본세에 더해 40%의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 및 납부 불성실 가산세를 더해 법인세를 증액 경정했다.

‘경정’은 일단 확정된 조세 채무(과세 표준이나 세액)에 오류 또는 탈루가 있는 경우 세무 당국이 과세 표준과 세액을 변경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과세 표준이나 세액을 당초보다 증액시키는 것을 증액 경정이라고 한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국세를 부과할 수 있는 기간인 ‘부과 제척 기간’은 원칙적으로 5년이다. 하지만 납세자가 사기나 기타 부정한 행위로 국세를 포탈한 경우에는 10년으로 늘어난다.

세무 당국은 납세자가 과세 표준과 세액을 과소 신고했다면 과소 신고액의 10% 만큼을 일반 과소 신고 가산세로 부과한다.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벌금’ 개념인 셈이다. 하지만 ‘가중 처벌’하는 경우도 있다. 납세자가 사기 등 부정한 행위로 과소 신고했다면 과소 신고액의 40%에 달하는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당국은 A사가 부정한 행위를 통해 과세 표준 등을 과소 신고했다고 보고 과소 신고액의 40%에 해당하는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를 매겼다. 이에 A사는 “회사 역시 임직원이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에 불과한데 세무서가 장기 부과 제척 기간과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를 모두 적용해 법인세를 부과 처분한 것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이에 1심과 2심 모두 세무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임직원의 부정행위를 법인의 부정행위로 본 것은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같은 논리로 세무 당국이 장기 부과 제척 기간 및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를 적용하는 것 역시 합당하다고 보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다만 A사의 청구 중 일부 부가세 처분은 취소돼야 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회사 손들어준 대법…“책임 넘는 법적 제재는 안 돼”

A사는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다. 대법원은 법인의 임직원이 의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부정행위를 한 경우 범죄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법인에 장기 부과 제척 기간과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간주하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A사의 주장이 옳다고 봤다.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 적용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납세자가 인식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임직원의 부정행위를 이유로 범죄 피해자에 불과한 납세자에게 일반 과소 신고 가산세보다 훨씬 높은 세율의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를 부과하는 것은 비난 가능성 및 책임에 상응하지 않는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라며 “이에 따라 헌법상 자기 책임의 원리에 반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우선 세무 당국이 A사에 40%에 달하는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임직원의 부정한 행위 때문에 회사가 피해를 보고 회사가 이들의 부정한 행위를 쉽게 인식하거나 예상할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이들의 배임적 부정행위를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에서 말하는 부정한 행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덧붙여 “이런 경우까지 납세자에게 부정한 행위를 이유로 중과 세율(40%)을 적용하는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를 부과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0년의 장기 부과 제척 기간’ 적용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임직원의 부정한 행위로 포탈된 국세에 관해 과세 관청의 부과권 행사가 어렵게 된 것은 분명하다”며 “회사가 임직원 등의 부정한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 또는 관리·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직원의 배임적 부정행위는 장기 부과 제척 기간에서 말하는 부정한 행위에 포함된다”고 명백히 한 것.

한편 이기택·김재형·박정화·안철상·노정희 대법관은 별개 및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들 대법관은 “사용인의 배임적 부정행위를 이유로 납세자에게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를 부과할 수 없다면 장기 부과 제척 기간도 적용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어 “부당 과소 신고 가산세에서는 납세자의 부정한 행위로 보지 않으면서 장기 부과 제척 기간에서는 납세자의 부정한 행위로 보는 것은 국세기본법 전체의 체계와 통일성을 무시하는 해석”이라고 짚었다.
[박스] 가산세 이모저모…“본세 환급 땐 가산세도 돌려줘야”세금 납부 과정에서 기업들은 가산세와 관련해 종종 분쟁을 빚곤 한다. 이와 관련해 챙겨 봐야 할 판례들이 있다. 2018년 대법원이 관세와 부가가치세의 본세가 사후 면제돼 돌려받게 됐을 때는 함께 납부한 가산세도 환급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게 대표적이다.

2018년 12월 초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아시아나항공이 대구세관장을 상대로 낸 관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납세 의무자가 법정 기한까지 과세 표준과 세액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거나 납부하지 않은 것을 요건으로 하는 가산세 등은 본세의 납세 의무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따로 부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거 아시아나는 독일에서 항공기 부품을 수입하면서 관세법에 따라 관세 전액을 감면받고 부가가치세법에 따라 부가가치세를 면제받은 바 있다. 이후 2011년 7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자 아시아나는 FTA를 근거로 무관세를 신청해 관세와 부가가치세를 면제받았다.

하지만 아시아나가 부품을 수입한 업체는 협정 관세 적용 대상인 인증 수출자가 아닌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에 세관 당국이 관세 20억4934만원, 부가가치세 29억3552만원, 가산세 10억5765만원을 부과했다.

부과된 세금을 납부한 아시아나는 곧바로 FTA를 근거로 한 무관세가 아니라 기존처럼 관세법과 부가가치세법에 따른 세금 면제를 신청했다. 세관 당국이 관세와 부가가치세는 환급하면서 가산세를 돌려주지 않자 아시아나 측이 소송을 냈다.

1·2심은 “관세 및 부가가치세의 각 본세를 감면·환급해 줌으로써 납부 세액이 존재하지 않게 됐으므로 가산세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보면서 ‘본세를 돌려받게 됐을 땐 가산세도 돌려줘야 한다’는 판례가 쌓이게 됐다. 당시 대법 재판부는 “관세와 부가가치세의 납부 세액이 존재하지 않게 된 이상 가산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안효주 한국경제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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