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의 저력


일본 기업은 탈원전에 따른 극심한 전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태양전지와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지진 발생 1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는 상처가 안타까울 정도다. 사망자 1만5848명, 행방불명자 3305명 등 인명 피해를 비롯해 경제적 피해 규모는 16조~25조 엔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복구비용을 10년간 23조 엔으로 예상하고 있다. 심각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는 완전히 폐기될 때까지 수십 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방사능 오염 문제로 일본 제품과 브랜드의 이미지가 손상됐을 정도다.

동일본 지역 공장의 생산 차질과 이에 따른 충격은 세계 각국 기업이 부품 및 자재 조달처를 일본 이외 기업으로 바꾸는 움직임으로도 확산됐다. 동일본 이외 지역의 원자력발전소도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가 속출하면서 전력난이 장기화되고 엔고도 겹치면서 일본 제조업의 국내 탈출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2중·3중의 악조건 속에서도 일본은 작년에 1200억 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도 2% 전후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경제는 본래 1% 내외의 장기 저성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3조 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 순채권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고 4%대의 비교적 낮은 실업률과 마이너스 0.2% 정도의 저물가도 유지하고 있다.

고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리먼브러더스 쇼크, 대지진, 원자력발전소 전면 가동 중단 등 커다란 충격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가 일정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일본 기업의 저력에 힘입은 바 크다. 우선 동일본 대지진으로 위축된 자동차 생산과 수출이 급속히 회복되고 있다. 일본 자동차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2011년 30%까지 하락했지만 올 2월에는 32%를 넘어섰다. 저연비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차세대 자동차의 강점은 일본 자동차 브랜드의 이미지 회복에 기여하고 있다.

자동차 이외 업종도 일본 내의 열악한 사업 환경 속에서 세계 각국 기업과 차별화된 품질, 새로운 부가가치를 모색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탈원전에 따른 극심한 전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태양전지와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일본 전국 10개소 이상에 대형 태양광 발전소(메가 솔라)를 건설해 총출력 20만kw 이상의 재생 가능 에너지를 도입하겠다는 구상을 수립했다. 소프트뱅크 외에도 오사카가스·미쓰이물산 등 대형 태양광발전소를 설립하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기업의 사업 여건이 크게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 혁신을 이루려는 일본 기업의 저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우리 기업은 전기·전자·자동차·철강·화학 등 주요 제조업에서 일본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기존 기술, 기존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에 안주하면서 새로운 기술 기반, 새로운 에너지 기반으로의 혁신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한꺼번에 경쟁력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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