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생존 전략] ‘장수 쇼크’ 현실…“세컨드 잡 준비하라”

은퇴 전문가가 들려주는 ‘100세 시대’ 생존 전략

“1945년생이 100세까지 살 확률은 23%(남자)지만 1971년생은 거의 절반이에요. 자기가 100세까지 살 거라고 생각하고 노후를 대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은퇴·노후만큼 막연한 것도 없는 일반인에게 은퇴 전문가들의 일갈은 일종의 충격이다. 100세까지 어떻게 살 것이라는 물음에 지금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답해준 적도 없기 때문이다. ‘100세 쇼크’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미래,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은퇴 전문가들에게 그 질문을 던져 보았다.


강창희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장
강창희 소장은 1980년대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으로 8년간 일본 사회를 지켜보면서 고령화 사회에 눈을 떴다. 국내 은퇴 관련 연구 1세대로, 2004년 국내 최초의 투자 교육 연구 기관인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을 맡아 은퇴 및 노후 대비와 관련한 연구·교육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은퇴와 관련해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은퇴’라는 말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지난해 고려대 박유성 교수의 연구(연령대별 100세 쇼크 도달 가능성)에 따르면 1958년생의 절반이 98세 이상 산다고 합니다. 은퇴라는 것은 일을 그만둔다는 것인데, 55세에 퇴직하고 나면 97세까지 42년 동안 은퇴 상태로 지내야 할까요. 이제는 100세 이상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쇼크’입니다.

둘째, 노후 대비는 돈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직장인은 인생에 3번의 정년을 맞습니다. 고용 정년, 일의 정년, 인생의 정년입니다. 고용 정년은 만 55세를 말하고, 일의 정년은 만 55세 이후 일할 수 있는 정년을 말합니다. 여기서 일은 꼭 재취업뿐만 아니라 사회 공헌, 자기 실현 등 건강하게 보람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한 일입니다. 인생의 정년은 말 그대로 생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셋째, 노후 대비는 퇴직 직전에 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아니라 사회생활 출발과 동시에 시작해야 합니다. 일찍 시작하면 쉬워집니다. 예를 들어 커피 한 잔 값인 4000원을 매일 모으면 30년 뒤 2억 원이 됩니다.

‘100세 쇼크’를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박유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45년생이 100세 이상 살 확률은 남자 23%, 여자 32%이지만 1971년생은 남자가 94세 이상 살 확률은 47%, 여자가 96세 이상 살 확률은 48%입니다. 지금 40세 중 절반 가까이가 100세 이상 산다는 겁니다. 실감을 잘 못하는 이유는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갑자기 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40년 사이 평균 수명이 가장 크게 늘어난 나라는 터키로 27년입니다. 2위는 한국으로 26세가 늘었습니다. 장수(長壽)가 왜 리스크냐 하면 일단 100세까지 아무런 계획이 없고 계획을 세워도 70~80세 정도까지만 세우기 때문입니다.

자식에게 의지하겠다는 생각은 어떻습니까.

과거에는 평균 수명이 70대였습니다. 정년퇴직은 65세였지요. 자녀가 부모를 7~10년만 모시면 됐습니다. 그런데 100세 시대에서는 정년퇴직인 55세부터 모신다고 하면 무려 45년을 모셔야 합니다. 70세 자녀가 100세 부모를 모실 수 있을까요. 이제 자식에게 의지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2030세대라면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의 3층 연금을 바탕으로 노후 자금을 설계해야겠지요. 금융자산에는 저축 상품과 투자 상품 두 가지가 있는데, 70~80년 뒤를 감안하면 인플레이션을 이길 수 있는 투자 상품을 활용해야 합니다. 물가 상승률을 연 3%로 가정하면 현재의 100만 원은 25년 뒤 48만 원의 가치를 가집니다. 즉 이제는 투자를 공부해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얘기가 증권사가 펀드를 팔기 위한 마케팅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강남 부자들 중에도 아파트를 손절매하고 실버타운에 들어가고 금융자산을 연금으로 바꾸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4050세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2030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3층 연금과 투자 상품을 먼저 점검하고 그다음으로 부동산에 치우친 자산을 균형 있게 정리해야 합니다. 4050에는 돈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홍성국 대우증권 미래설계연구소장
홍성국 소장은 대우증권에서 20년 동안 애널리스트(리서치센터장 기간 포함)로서 활동했다. 다른 은퇴연구소가 개인 차원의 노후 대비에 초점을 맞췄다면, 그가 최근 설립한 미래설계연구소는 분석적 틀을 이용해 미래 사회의 경제적 변화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어떤 모습입니까.

지금 사람들은 미래가 선형(매끄러운 곡선)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겪어 온 것과 앞으로 전개될 미래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틀렸습니다. 굴절이 생겼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미래는 과거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아는 선형적 미래는 ▷7~8%의 성장률(개발 시대) ▷5~6%의 예금 금리 ▷매년 7~10% 주가 상승 ▷매년 2~3% 부동산 가격 상승이 계속 이뤄지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성장률은 2~3%대, 금리도 2~3%대, 부동산 가격 하락 등 가정 자체가 모두 바뀝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어떻게든 되겠지’가 안 통한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노후 준비의 가장 기본인 국민연금부터 보십시오. 이건 인구가 피라미드형 구조를 가정하고 만든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인구는 항아리형입니다. 내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타 가는 사람은 많아집니다. 지금 20세가 80세가 되면 연금이 고갈됩니다. 건강보험도 마찬가집니다. 더 많이 내고 혜택은 줄어들 겁니다. 지금 일본이 연금 지급 시작을 60세에서 70세로 늦추기로 논의 중이고 그리스는 이미 10% 깎은 연금을 다시 15% 깎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겁니까.

국민연금의 공백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보완해야 합니다. 퇴직연금은 시중금리 수익률 수준의 확정급여형(DB형) 대신 액티브하게 확정기여형(DC형)으로 해야 합니다. 개인연금은 지금부터 무조건 시작해 소득공제 혜택과 복리의 마법을 누려야 합니다. ‘더 일찍, 더 많이, 더 오래’ 넣어야 합니다. 소비하고 남는 것을 넣는 것은 안 됩니다. 60세 이후 삶을 위해서는 수입에서 일정 부분을 무조건 넣어야 합니다. 건강보험도 퇴직 시 비싸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민영 의료보험 등으로 의료비 관련 대비도 해 놓아야 합니다.

2030은 당장 결혼·주거·교육으로 빚을 내야 할 상황인데도 개인연금은 계속 넣어야 합니까.

사회 초년생일 때는 개인연금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득은 꾸준히 상승하기 때문에 갈수록 개인연금 부담이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늘어난 소득을 모아 결혼·주거·교육을 하라는 겁니다.

이런 얘기들이 결국 금융상품을 팔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는 비난도 있습니다.

이 얘기들은 제 소신입니다. 증권사 직원인데도 보험 얘기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보험 상품이 뭐가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큰 미래의 코드, 30~40년 뒤를 보고 각 사회의 모든 부분을 수정하고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일 뿐입니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우재룡 소장은 국민연금·퇴직연금 초창기 자문위원을 지낸 경력이 있을 정도로 연금 전문가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는 노후 대비와 관련해 재무적인 부문보다 비재무적인 부문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 그가 그리는 100세 시대의 모습은 일종의 쇼크로 다가온다.


은퇴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무엇입니까.

(한국은) 은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습니다. 뭘 알아야 오해할 것 아닙니까. 그간 은퇴라고 하면 재무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하겠습니까. 돈은 있는데 가족과 떨어져 있거나 사회와 격리돼 있거나 취미·여가가 없거나 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은퇴자의 취미·여가는 시간 때우기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선진국에서 취미·여가는 캐주얼(casual)하지 않습니다. 시리어스(serious)합니다. 취미는 봉사활동과 자아실현까지 결합돼야 합니다. 막연한 행복은 지속되기 힘듭니다. 지식을 갖춘 행복만이 지속 가능합니다.

2030은 결혼·주거 마련에 목돈이 들다 보니 노후 대비가 소홀한 면이 있는 듯합니다.

미국·유럽 젊은이도 빡빡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거긴 모기지 인생입니다. 평생 자동차·집·카드 할부 갚기 바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직하자마자 개인연금·퇴직연금을 스타트합니다. 대신 저축은 못 하죠. 할부 인생이라고 하듯이 목돈 들어갈 일은 없기 때문이죠. 한국은 개인연금 가입률이 20%밖에 안 됩니다. 한국 젊은이들은 노후와 관련해 기성세대를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준비는 안 합니다. 이는 자기 인생을 계획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정책은 저소득층에 맞춰져 있습니다. 정부는 세제 혜택 등 제도를 마련할 뿐 그 안에서 알아서 해야 합니다.

또한 젊은이들은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요즘 취직하자마자 2000만 원 넘는 차를 삽니다. 그걸 30년 동안 굴렸다면 노후 대비에 요긴하게 쓰였을 겁니다. 그리고 결혼할 때 꼭 85㎡ 이상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관념이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안 되니 부모에게 요구합니다. 그러면 부모의 노후 대비도 안 됩니다. 그러면서 노후 대비할 여력이 안 된다고 합니다.

2030세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뭡니까.

무조건 재무 설계를 해야 합니다. 자산·부채와 수입·지출을 명확히 머릿속에 그려야 합니다. 둘째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프로 정신입니다. 개인연금에 가입하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자 태도입니다. 개인연금은 정부가 만든 유일한 세제 혜택 상품입니다. 연 400만 원(월 33만 원)을 넣으면 소득공제를 통해 평균 잡아 약 60만 원을 연말에 돌려받습니다. 거기에 추가로 운용 수익이 있지 않습니까. 수익률로 따지면 이만한 고수익 상품이 없습니다. 무조건 들어야 합니다.

4050은 어떻습니까.

자녀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자녀에 올인(all in)하면 안 됩니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습니다. 선진국도 60% 수준입니다. 무리하게 대학을 나오면 결국 빚만 지고 청년 실업자가 됩니다. ‘남이 가니까 가야 한다’, ‘장가 못 간다’는 체면치레, 이런 사고를 바꿔야 합니다. 다행히 남아 선호 사상이 없어지듯 ‘묻지 마 대학 진학’도 곧 없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학 교육비도 비싸지만 선행 학습에 드는 과도한 비용, 또 해외 연수 등 스펙을 쌓기 위한 비용까지 합치면 결국 부모가 노후 대비를 못하게 됩니다. 아이의 적성과 부모의 능력에 맞는 부모·자녀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둘째로 세컨드 잡(second job)을 준비해야 합니다. 현직 이후 뭘 할 것인가가 너무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솔직히 당장 회사에서 잘리면 뭘 할 것인지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을 못합니다. 가장 좋은 세컨드 잡은 인적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현업에서 찾는 것이 좋지만, 그게 아니라면 젊은이와 치열한 경쟁을 하는 곳이 아니라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데 젊은이들이 하지 않는 일이죠. 품위와 사회적 지위를 버려야 합니다. 비서·사무실·차가 나오는 잡을 찾으려니 안 되죠. 아마 임원 출신 퇴직자는 거의 다 놀 겁니다.

60세 이상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60세 이상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습니다. 60세 이상은 투자에서 인출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연금화해 편하게 살아야지 자산을 굴리면 마음만 조마조마해지고 소비도 못하고 판단력이 떨어져 사기를 당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둘째로 의료비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다들 돌연사가 꿈입니다. ‘자리보전하면서 뭐 오래 살아. 짧고 굵게 살다 그냥 죽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돌연사는 불가능합니다. 요즘 의료 기술로는 웬만큼 죽을병도 치료합니다. 죽더라도 병원에서 죽습니다. 그러면 치료비와 간병비는 어떻게 합니까. 큰소리치면서 대비하지 않은 사람이 결국 큰 빚을 가족에게 남기고 죽습니다.

셋째는 죽음의 질입니다. 한국은 ‘당하는 죽음’에 익숙하고 ‘맞이하는 죽음’을 싫어합니다. 부모가 암에 걸려도 당사자에게 말을 안 합니다. 그러면 환자는 ‘별것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다가 죽음을 맞습니다. 제발 부모가 암에 걸리면 제대로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스스로 시나리오를 짤 수 있도록 하십시오. 고통 없이 수준 높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웰 다잉(well dying)’입니다.



약력
강창희: 1947년생. 서울대 농업경제학과 졸업. 일본 고베대·도시샤대 상학 석사. 75년 한국거래소. 78년 대우증권. 80년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 89년 대우증권 국제영업부장. 96년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98년 현대투자신탁운용 대표. 2000년 굿모닝투자신탁운용 대표. 2004년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현). 2005년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장(현).

홍성국: 1963년생.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86년 대우증권 입사. 90년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2006년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 2009년 대우증권 홀세일사업부장(전무). 2011년 12월 미래설계연구소장(현).

우재룡: 1961년생. 연세대 경영학과 학·석·박사. 89년 대한투자신탁 경제연구소. 97년 투자신탁협회 기획팀. 99년 한국펀드평가 창업. 2008년 동양증권 자산관리연구소장. 2010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현).


취재=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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