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의 화분증…봄바람 ‘공포’… 치료 시장 ‘쑥쑥’

봄이다. 잔설(殘雪)이 남아 있지만 신춘 전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봄이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다. 특히 일본에 많다. 꽃가루 때문이다. 화분증(花粉症) 우려다. 일본의 봄은 화분증이 연다. 불청객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눈 충혈과 코막힘은 일상적이고 심하면 코피에 불면증까지 동반한다. 열없는 감기로 비유되듯 4~5월까지 지속돼 일상생활을 방해한다.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꽃가루와의 한판 전쟁은 연례행사다. 주범은 삼나무다. 패전 이후 삼림 재생, 목재 수요 차원에서 삼나무를 전국적으로 심은 게 계기다. 잘라버리자는 여론이 많지만 경제성이 낮고 재원마저 없어 방치 상태다. 목재로 쓰기보다 수입 대체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4명 중 1명 ‘화분증 환자’

화분증 환자는 증가세다. 당장 꽃가루 양이 늘어나는 추세다. 수령 25년 이상 삼나무가 꾸준히 늘어난 결과다. 올해는 더 심해질 전망이다. 직전 여름이 더웠을수록 생육 촉진으로 이듬해 꽃가루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4명 중 1명이 화분증 환자다. 해외 입국자도 처음엔 괜찮아도 3~4년 후면 환자 대열에 합류하기 십상이다. 단기 방문자는 속 모를 고통이다.

능률 저하 등 개인 문제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광범위한 부작용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소비 억제를 가속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꽃가루와의 접촉을 방지하기 위해 외출 자체를 줄여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악순환 때문이다. 화분증 때문에 개인 소비가 매년 7550억 엔 감소한다는 분석이 있다(제일생명경제연구소). 언론도 민감하다. 환절기만 되면 꽃가루 정보 취합·분석에 공을 들인다. 이르면 1월부터 꽃가루 전선 예측도가 지면에 실린다. 벚꽃 개화 뉴스처럼 일기예보의 단골 주제다. 본격 시즌은 2월 말부터다.

수요는 공급을 낳는 법이다. 화분증 대책은 짭짤한 사업 모델로 연결된다. 꽃가루를 막거나 화분증을 치유하는 시장은 매년 성장세다. 시장 규모는 알레르기 대책 전반을 포함해 1600조 엔 정도다. 치료 차원의 의료 약품부터 대비 목적의 공기청정기·가습기·마스크·스프레이·티슈 등 셀 수 없이 많다. 성장성은 무궁무진하다. 화분증의 괴로움을 알면 돈을 아낄 수 없기 때문이다. 효과만 있다면 고액이라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

덩달아 2월부터는 꽃가루 대응 상품이 TV 광고의 주력으로 부상한다. 약국에선 화분증 코너가 따로 설치될 정도다. 웬만한 가정집의 상비약 반열에 포함되는 건 물론이다. 겨울철 감기약과 비슷한 상비 품목이다. 꽃가루를 잡아주는 스프레이는 외출 후 필수 품목이다. 심할 때는 고글처럼 생긴 안경까지 갖춘다. 택시 중 일부는 꽃가루를 차단하는 특수 서비스로 눈길을 끈다. 대응책과 관련한 기발한 아이디어의 진원지는 인터넷이다. 꽃가루와의 접촉을 막고 화분증을 약화시킬 재미있는 방법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핵심은 마스크다. 원천 차단을 위한 외출용 중무장의 필수품이다. 기존 환자를 포함해 대비 차원의 구매 수요가 꾸준하다. 사실상 가장 확실한 방법이 마스크라고 알려지면서 시중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일본 거리에서 마스크가 일상화된 건 꽃가루 공포와 정확히 일치한다. 실제 마스크는 꽃가루의 95%를 방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마스크만으로도 방어 능력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다만 꽃가루 알갱이가 잔존한다는 점에서 재활용은 성능을 떨어뜨린다. 싼 마스크를 사용한 후 버리는 식의 일회용 형태가 특히 유효하다. 올해는 마스크 품귀 현상까지 우려된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 피폭 우려가 일상적인 가운데 세슘 알갱이가 꽃가루처럼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방사성 세슘 화분’의 전파 염려다. 피폭된 나뭇잎에서 흡수된 세슘이 꽃가루에 전이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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