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금배지의 경제학] ‘의원 300명 시대’ 열려…1인당 혈세 매년 6억 원

금배지는 국회의원의 상징이다. 은에 금도금한 이 배지의 액면가는 2만 원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회의원 1명에게 매년 6억 원에 가까운 예산이 들어간다. KTX 공짜 탑승에서 공항 귀빈실 이용까지 200가지가 넘는 특권도 따라간다. 하지만 헌법이 규정한 책무를 다했느냐는 물음에 당당할 수 있는 의원은 그리 많지 않다. ‘국회의원 300명 시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다.
국회 본회의 폐회를 하루 앞둔 8일 국회 본회의장이 텅 비어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1.12.8

19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국회의원을 꿈꾸는 정치 지망생들에게는 4년 만에 찾아온 기회다. 기득권 지키기에 나선 현역 의원들도 신경이 곤두서 있긴 마찬가지다. 한 번 낙선하면 그대로 백수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으로 누리던 특권도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모두가 생존을 건 싸움이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탈당과 배신도 서슴지 않는다.

과연 국회의원의 권한은 어느 정도일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가장 먼저 국회사무처에서 검은색 007 가방을 한 개 씩 지급받는다. 보수 내역, 의원회관 입주 안내 등 문건이 담긴 서류 가방이다. 임기 4년 동안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지 알려주는 일종의 국회의원 ‘특권 가방’이다. 그 안에 국회의원의 상징인 금배지 2개가 들어있다.



금배지 액면가는 2만5000원

금배지 1개당 액면가는 비싼 게 2만5000원에 불과하다. 순금이 아니라 은에 금도금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금배지 디자인은 9차례 변경됐다. 지름 16.5mm, 높이 12.8mm에 무게는 6g에 불과하고 그 안에 ‘국(國)’자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등록 순서대로 고유 번호가 새겨져 있다.

가격은 몇 푼 안 되지만 이를 가슴에 단 국회의원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른다. 우선 헌법에 규정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 있다. 모든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으며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지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법 31조는 국회의원이 국유 철도와 선박·항공기를 무료로 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예전에는 의원들에게 실제로 정기 승차권을 발급해 줬지만 철도청이 공기업인 철도공사로 전환돼 더 이상 공짜 열차를 이용할 법적 근거가 사라진 이후에는 국회사무처가 공무 수행 출장비 형태로 경비를 지원해 준다. 공무 수행 출장비는 의원별로 차등 지급된다. 비례대표는 연간 135만300원, 수도권 의원은 162만 원이며 제주지역 의원이 1360만8000원으로 가장 많다.

비행기 이용은 더욱 편리하다. 공항에서 일반인과 함께 줄을 설 필요가 없다. 공항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는 데다 출입국검사장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인천공항공사의 귀빈실 운영규정 10조는 ‘국회의원 입국의 경우 탑승교 입구에서 여권을 인계받아 입국 수속을 대행하고 나서 귀빈실로 안내한다. 출국의 경우 항공사의 체크인 수속이 종료된 여권을 인계받아 출국 수속을 대행하고 귀빈실에서 탑승교로 안내한다’고 명시돼 있다. 비행기 좌석은 비즈니스석이 기본이다.

국회에는 의원 전용 주차장과 이발소·미장원·헬스장·목욕탕도 갖춰져 있다. 국회 본청과 의원회관 중앙 출입구는 의원 전용으로 국회의원만 출입할 수 있다. 17대 국회 개원 초인 2004년 없어진 국회의원 전용 승강기도 2010년 부활했다. 국정감사 기간 10분 이상 승강기를 기다려야 하는 의원들이 많다는 게 이유였다. 다만 회기 중에만 의원 전용으로 운행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국회도서관에도 국회의원만 이용할 수 있는 의원 전용 열람실이 있다. 330㎡(100평)가 훨씬 넘는 규모다. 국회 직원이 상주하면서 관리하는데 실제 이용하는 의원은 많지 않다.

국회의원의 월 세비는 624만5000원이다. 선수(選數)에 관계없이 똑같다. 이것만 보면 연봉이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 각종 수당이 추가된다. 입법 활동비로 매월 313만6000원을 받고 이 액수의 30%가량을 특별 활동비로 받는다. 연간 646만4000원인 정근수당과 명절 휴가비 775만6800원도 빼놓을 수 없다. 매달 관리 업무수당 58만1760원과 정액급식비 13만 원도 받는다. 이것만 합해도 매월 1221만3560원이 된다. 연간으로 따지면 1억4656만2720원이다. 결혼했거나 자녀가 있다면 가족수당과 자녀 학비 보조 수당도 추가로 챙길 수 있다.

각종 지원금도 만만치 않다. 모든 국회의원에게 매월 35만800원의 차량 유지비와 110만 원의 차량 유류비가 지급된다. 사무실 전화요금(30만 원)과 우편요금(61만 원)으로도 매월 91만 원이 책정돼 있다. 사무실 운영비(월 50만 원)와 야근 식비(연 600만 원), 정책 홍보물 및 정책 자료 제작비(연 2000만 원)와 발송료(지역구 의원에 한해 연간 370만~604만 원) 등도 세심하게 배려해 준다.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보좌진의 급여도 국가에서 대신 지급해 준다. 국회의원은 최대 9명까지 보좌진을 거느릴 수 있다. 연봉 6400만 원인 4급 보좌관 2명을 비롯해 5급 비서관(5800만 원) 2명, 6급 비서(3800만 원) 1명, 7급(3300만 원) 1명, 9급(2500만 원) 1명, 인턴(1440만 원) 2명 등이다. 정원을 모두 채우면 보좌진 급여로만 매월 3073만3333원, 연간으로 따져 3억6880만 원이 필요하다.



여야 초월한 ‘제 밥그릇 챙기기’

이를 모두 합하면 국회의원 1명에 매년 5억8109만8720원이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회의원이 누릴 수 있는 유·무형의 혜택은 이것만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후원회를 조직해 매년 1억5000만 원까지 정치자금을 모급할 수 있다. 연 2회 해외 시찰을 국고로 지원해 주고 외국 출장을 가면 해당 공관원이 영접 나온다. 광복절 등 정부의 각종 기념식 때 상석에 앉을 수 있고 준공식과 포상식·개관식·발대식 등에 참석하면 입장과 퇴장 때 관할 경찰관서에서 교통 통제를 해준다.

상당수 직장인의 월급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뒷걸음질한 것과 대조적으로 국회의원 세비는 매년 꾸준히 인상돼 왔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009년과 2010년에만 동결됐을 뿐이다. 1998년에서 2008년까지 인상률이 65%에 달한다. 2010년 9월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이 “13년 동안 동결됐던 국회의원 세비를 원상회복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하지만 국회는 그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정국이 혼란스럽던 와중에 세비 5.1% 인상안을 ‘조용히’ 합의 처리해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여야를 초월한 국회의원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2010년 2월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을 개정해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평생 월 120만 원을 연금 형태로 지원하도록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이 ‘종신연금’은 국회의원 재직 기간이 1년 미만이거나 금고 이상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도 지급 대상이다. 단 하루라도 국회의원을 하면 평생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작년 1월부터 지급되는 가족수당과 자녀 학비 보조 수당도 논란거리다.

특권이 없기로 유명한 북유럽 국회의원들은 사정이 딴판이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관용차도 운전사도 없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공무 출장 때는 가장 싼 표를 사야 의회에서 비용을 돌려받는다. 농부·간호사·교사 같은 다양한 경력을 지닌 349명의 의원 중 30%는 4년 임기가 끝나면 본업으로 돌아간다. 덴마크 국회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181명의 의원 전원이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여성 의원이 전체 40%에 달하고 여성 의원의 자전거에는 장바구니가 달려 있다.

물론 북유럽과 한국 국회의원을 직접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 나라는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정부 공무원들도 탈권위적이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공관에서 개최한 파티에 스웨덴 외무장관이 자전거를 타고 왔다며 혀를 내두른다. 한국에선 국회의원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여전히 높은 것이 사실이다. 국회의원이 지역 주민 결혼식에 축의금을 적게 내면 ‘쩨쩨하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국회의원 세비는 어느 정도가 적정 수준일까. 또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은 어디까지 보장돼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국회의원의 특권을 둘러싼 논란의 밑바닥에는 국회의원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불신이 자리해 있다. 국회의원의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면 세비나 특권을 문제 삼을 사람은 많지 않다.

<YONHAP PHOTO-0768> <2011 국감>산더미 자료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26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해양부 국정감사장 의원석 앞에 산더미같은 자료가 쌓여 있다. 2011.9.26 uwg806@yna.co.kr/2011-09-26 13:13:25/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무색해진 특권 포기 선언

최근 국회의원 특권 논란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디도스(DDoS) 사건 정면 돌파를 위해 이 사건에 연루된 자당 의원을 보호하는 ‘방탄국회’를 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새누리당은 한 발 더 나아가 세비를 삭감하거나 200가지가 넘는 특권을 포기하는 방안을 추진해 여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2월 27일 현재 299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늘리기로 여야가 합의하면서 애초 내건 명분이 무색해졌다. 1984년 제헌국회에서 200명으로 출발한 의원 정수는 그동안 꾸준히 증가해 왔다. 5·16 군사정변 이후인 1963년 6대 국회에서 175명으로 줄긴 했지만 1988년 13대 국회에선 299명까지 늘었다. 그 후 외화위기 직후인 16대(273명)를 제외하곤 줄곧 299명을 유지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상한선이 깨진 것이다.

국회의원 적정 규모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인구 규모로 볼 때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해 국회의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도 있지만 오히려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작년 11월 낸 보고서는 360~380명이 적정하다는 학계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당초 이 위원회는 18대 국회 대비 인구가 140만 명 증가하고 280만 명의 재외 국민 선거가 실시된다는 점 등을 근거로 지역구 의원을 현행 245명에서 248명으로 늘리는 안을 제시한 바있다. 하지만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정치권은 국회의원 300명 시대를 여는 것으로 일단 타협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사진 한국경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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