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를 일깨운 ‘등에’…소크라테스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가 성공을 부른다
입력 2012-03-14 09:48:45
수정 2012-03-14 09:48:45
김형철 교수의 고전에서 배우는 CEO 리더십
아버지는 석공 일을 하는 노동자, 어머니는 남의 집에서 아기를 받아주는 산파 일을 했습니다. 귀족·평민 따지는 시대에 이런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태도로 살아갔죠. 얼굴도 정말 못생긴 주제에 말입니다. 또 아테네 전쟁에 2번이나 지원해 참가한 참전 용사였습니다. 자식을 셋이나 낳았지만 젊은 부인만 고생합니다. 부인은 악처의 대명사로 소문난 크산티페입니다. 평생을 집안에 돈 한 푼 가져다주지 않는 경제적 무능력자 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속을 끓일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가죠. 그야말로 간 큰 남자가 바로 인류의 영원한 스승 소크라테스입니다.
리더는 질문을 하는 사람
그렇다면 그는 왜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은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 써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배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배우려고 하죠. 배우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 않거나 묻지 않는 것은 죄가 성립됩니다. 왜냐고요? ‘아는 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일일 목표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섭니다. 무슨 일일 목표를 가졌던 간에 내일부터 한 가지 추가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 일일 목표를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생활을 해보세요. 세상이 달라져 보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 존재감이 별로 없던 동창이 어느 날 동창회에 나타났는데, 완전히 변한 모습을 보고 놀란 경험이 있습니까? “야, 저 친구 고등학교 때 몇 반 했는지 아냐?” “난 모르겠는데, 누구 아는 사람 있냐?”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 중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친구는 얼굴에 넘치는 자신감, 매너 있는 행동, 입고 있는 옷과 모든 것을 갖춘 듯합니다. 졸업 후에도 사람은 계속 발전해 나갑니다. 오직 배우려는 일일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르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선뜻 질문을 던지나요. 도대체 사람들은 왜 모르면서도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일까요.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질문을 던지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른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싫은 겁니다.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리더는 명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리더는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안다고 자부하는 당대의 최고 소피스트, 즉 궤변가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당시 소피스트들은 정치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웅변술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현혹해 자신에게 설득당하도록 하는 수사학의 달인들이었죠.
요즘 말로 ‘아니면 말고’ 식으로 지식을 파는 사람들의 위선을 소크라테스는 정면으로 공격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소크라테스가 묻습니다. 그러자 소피스트는 “정의는 자신이 빌린 것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만약 칼의 주인이 미친 상태에서 돌려 달라고 한다면 정의를 위해 돌려줘야 하는가?” 상대방은 당연히 “아니다”고 답합니다. 자기가 주장한 말을 뱉자마자 반박하는 것입니다.
사실 궤변가들에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은 애당초 없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이 점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그는 곧 그들에게 “너희는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면 이런 식의 대화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 하나에 바로 자기모순에 빠지는 상황들 말입니다. 그들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불쌍한 잠자리처럼 파닥거리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죠.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아테네라는 거대한 쇠등에 침을 쏘는 ‘등에’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소가 잠들지 못하도록 깨우는 그런 등에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귀족들의 천박한 생각을 마구잡이로 몰아붙이고 도전적으로 논쟁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성가신 존재였을까요. 특히 집권자들에게는 사사건건 따지는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성가신 존재였을까요. 얼마나 건방지게 보였을까요. 결국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현혹하고 국가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소크라테스가 경영을 한다면
소크라테스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감옥을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내려진 부당한 처벌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죠. 사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록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믿습니다. 소크라테스니까요. 소크라테스는 이성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의심스러우면 그냥 받아들이는 법이 없었죠. 또 친구가 하는 말이더라도 적당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상대방의 입에서 “모른다”는 자백이 나올 때까지 철두철미하게 따지고 또 따졌습니다.
만약 이런 자세로 소크라테스가 경영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새로운 길을 갈 때, 예를 들어 신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는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일부분에 불과한 것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모순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 덤비는 사람은 적어도 위태로운 상황까지 가지는 않습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죠.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사람은 발붙일 곳이 없는 조직을 만들어야 승산이 있습니다. 물론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학습의 기회를 듬뿍 주는 리더가 필요하겠죠.
요즘 거의 모든 최고경영자(CEO)들이 인재를 중시한다고 말합니다. 인재를 정말로 중시하는지 알아보는 방법 중 하나는 교육 훈련비가 얼마나 책정돼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그나마 불황이 닥치면 직원 교육비부터 제일 먼저 삭감합니다. 이것은 말로만 인재 중심 경영을 하는 겁니다. 리더 중 최고의 리더는 리더를 키워주는 리더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편견과 독단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답하도록 만들었던 것처럼 리더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변증법적 과정 속에서 우리의 인식을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2500년 전 아테네에서 살았던 한 철학자는 평생 찾아 헤매던 확실한 진리를 결국은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나는 모른다’는 절대 진리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실천하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사실 제대로 알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배운 것들을 알고만 있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반드시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지행합일(知行合一) 정신입니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