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아버지와 ‘친구’가 되기까지

정윤호 유저스토리 랩 대표이사


나는 어릴 적부터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할아버지·할머니·부모님 그리고 아직 결혼 전이었던 고모들과 함께 살았다. 고모들과 조부모님들의 사랑으로 항상 예쁨을 받았던 것 같다. 어릴 적 기억의 많은 부분은 아버지보다 그 대가족 사이의 가부장이었던 할아버지와의 대화이고 군것질이고 할아버지의 방에서의 기억이다.

할아버지는 그 시절에도 서울에서 상업고등학교를 나오셔서 동네에서는 어른으로 행세깨나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독자인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기대만큼이 아니었을까.

어릴 적 아버지는 그리 살갑지도 아니, 말 한마디 먼저 건네지도 않는 무뚝뚝한 분이었다. 호기심 많고 궁금한 것투성이었던 어릴 적, 마루에 가로누워 TV를 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질문해도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침묵뿐이었다.

내 앞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커다란 등을 보며 높은 벽처럼 느껴질 만큼 많이 서운해 했던 것 같다. 살갑지 않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기회도 별로 없다보니 난 아버지가 항상 괜히 무섭고 두려웠다. 물론 차고 넘칠 만큼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지금도 가끔 얼굴을 비비고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달뜬 표정으로 표현하신다)가 있어 난 항상 긍정적이고 웃음이 많은 사람으로 자랐다.

내가 막 대학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지 며칠 되지 않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서럽게 울기를 반복하셨고 장례를 치르는 3일을 쪽잠 한 번 주무시지 않고 삼베로 된 상복을 가지런히 입으신 채 찾아온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누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기대와 할아버지라는 그늘에서 그의 마음과 말을 아껴왔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아버지와 나는 친구가 됐다. 대학에 다니면서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나와는 정치관이 조금은 다른 아버지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을 새우며 토론했다. 항상 나를 믿고 응원해 주는 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을 지금까지 아버지가 해주시고 있다. 내가 여전히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이 아버지와 소주 두어 병을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물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처럼 아버지와 나 사이에도, 아니 내 스스로 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긴장감 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 긴장감이 내가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고 싶었던 이유였고 창업하게 됐던 이유였던 것 같다.

내가 대학에 다니고부터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네 인생은 네가 만드는 것이다(사실은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해라’였지만)”가 하나의 이유였다면, 또 다른 이유는 아버지가 평생 짐으로 안고 있었던, 할아버지에게 느꼈던 미안한 감정을 갖지 않는 아들이 되고 싶어서였기도 하다.

오늘도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은 춥다던데. 옷은 따뜻하게 입고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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