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한미 FTA 15일 발효’ 발표되던 날

지난 2월 21일 오후 6시 30분. 통상교섭본부를 담당하는 각 언론사 기자들의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1시간 30분 뒤인 오후 8시에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이 직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브리핑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받은 기자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후 7시 30분께부터 기자들이 외교통상부 브리핑실에 모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오후 8시에 박태호 본부장이 브리핑실에 들어섰다. 그는 기자들의 예상대로 “한미 두 나라의 FTA 국내 비준 절차 완료 후 진행됐던 양국 간 협정 이행 준비 상황 점검 협의가 모두 끝났다”며 “한미 FTA가 3월 15일 0시를 기준으로 발효된다”고 발표했다. 한미 FTA 발효는 2006년 6월 협상 개시 5년 8개월, 2007년 4월 협상 타결 4년 10개월 만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작년 7월 유럽연합(EU)에 이어 거대 경제권 두 곳과 모두 FTA를 발효하는 유일한 국가가 됐다.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이 20일 밤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한미FTA 발효 날짜를 발표하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박 본부장은 “양국은 2월 21일 오후 6시 FTA 협정 제24.5조 1항에 따라 발효를 위한 국내 법적·절차적 요건을 완료했고 발효일은 3월 15일로 합의하는 외교 공한을 교환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작년 11월 22일 국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된 뒤 3개월간 화상회의, 대면회의, e메일 교환 등을 통해 양국 법률안 등의 발효 준비 작업을 벌여 왔다.

박 본부장은 당초 정부가 지난 1월 1일 발효를 목표로 작업을 벌였지만 지금까지 협상이 지연된 이유에 대해 “미국과 우리나라 양국 모두 점검해야 할 국내 법률의 범위가 워낙 방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발효가 2월 15일로 잡힌 것은 업계나 기업이 한미 FTA를 활용하기 위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박 본부장은 한미 FTA 이행 점검 협의의 구체적인 사안을 최석영 FTA 대표에게 공을 넘겼다. 실제 최 대표는 다음날 오전 8시께 공항에 도착했으며 오후 3시 박 본부장과 같은 자리에서 세부 사안에 대한 브리핑을 이어갔다. 박 본부장이 ‘한미 FTA 발효’라는 팩트(fact)에 집중해 브리핑을 했다면 최 대표는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협의에서 최대한 기존의 방침을 유지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 사이에선 그간 정치권에서 불평등한 협정이라며 한미 FTA를 공격한 것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실제 최 대표는 이번 이행 점검 협의에서 우리나라의 약값 결정 시스템이 한미 FTA 협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당초 협정문에선 양국이 합의한 대로 신약에 대해서는 경제성 평가 등을 거쳐 정부가 약값을 결정하는데, 이때 이견이 있다면 독립적인 검토 절차(IRP)를 거쳐 조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미국은 이에 대해 우리나라가 건강보험공단과 보험사 간 협상을 통해 약값을 결정할 때도 IRP를 거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왔다. 최 대표는 “IRP의 대상은 정부로 한정돼 있는데 건강보험공단은 정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말했다.

미국 측은 또 우리나라가 도입한 동의의결제도에 대한 해석이 양국 간에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동의의결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행정 제재 이전에 기업과 협의해 시정 방안을 결정하는 제도로 한미 FTA 협정 체결 때 미국 측에 도입을 약속했다.

외교통상부와 통상교섭본부는 이제 한중 FTA로 포커스를 돌리고 있다. 2월 24일에는 ‘FTA 체결 및 이행 협의에 관한 절차 규정’에 따라 한중 FTA 추진과 관련된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통상교섭본부는 한중 FTA가 체결됐을 때 중국 농산물이 밀려들어올 것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노력에 들어갔다. 실제 박 본부장은 2월 23일 한국선진화포럼에서 ‘중국과의 FTA, 위기인가 기회인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협상의 1단계로 농민들에 대한 보호 장치를 우선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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