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주거혁명, 굿바이~아파트] 주택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주택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신도시 개발을 시작으로 독주 체제를 굳히며 ‘신화’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던 아파트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대신 그 자리는 단독주택 등을 비롯한 다양한 주택 유형들이 채우면서 ‘탈아파트’ 현상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제 아파트의 시대는 끝났다’고까지 말한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아파트가 더 이상 투자 수단이 되지 못하는 데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주택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거 트렌드의 변화가 몰고 올 ‘주거 혁명’은 어떤 모습일까.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주택 중 58.4%가 아파트다. 다른 주택 유형에 비해 여전히 양적으로 월등히 많다. 그러나 이는 곧 아파트의 ‘포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 유형을 선호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도 ‘아파트 전성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부동산 경기의 오랜 침체가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다. 아파트가 곧 재산으로 인식되며 재테크의 중요한 수단이었던 과거에는 너도나도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는 데 열중했다. 그러나 한때 ‘버블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치솟던 아파트 가격은 하향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자산으로서의 상품성과 환금성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자 아파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주택 보급률이 높아진 것도 아파트 전성시대의 엔딩과 맞물린다. 단국대 도시계획과 조명래 교수는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에 대량 공급 방법이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과부족 시대가 지났다. 그러다 보니 주택의 수요 압박이 약화됐고, 이는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약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 뒤 “아파트의 시대가 끝났다고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끝나가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택 유형 선호도 달라져

아파트에 질린 수요자들이 다양한 형태의 주택으로 갈아타며 아파트 일색이던 주거 형태도 다양성을 띠고 있다. 사람들이 ‘아파트’에 대해 가졌던 로망은 이제 단독주택·땅콩집·한옥 등 각자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한 주거 형태에 대한 로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최근 국토해양부가 내놓은 주택 공급 인허가 현황만 봐도 주택 유형의 달라진 선호도를 알 수 있다. 2011년 아파트 외 인허가 실적은 19만2832호로, 전년 대비 76% 급증했다. 이는 아파트 외 주택이 급증했던 2002년 이후 가장 많은 물량으로, 수도권에서 81.6%, 지방에서는 70.9%가 증가해 전국적으로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조명래 교수는 이처럼 주거 형태가 다양해지는 데 대해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이렇게 아파트를 많이 짓는 나라는 없다”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아파트가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도시 경관을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에 획일적인 판박이 아파트 공급은 자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젊은층을 중심으로 주택 ‘소유’에 대한 달라진 가치관도 주거 트렌드 변화의 중요한 배경이다. 구세대만 해도 주택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었지만 젊은층은 집을 ‘사는(buy) 것’이 아닌 ‘사는(live) 곳’으로 생각하며 ‘이용’의 개념이 확산된 것이다. 최근 부동산114와 한국갤럽이 조사한 설문 조사만 봐도 주택에 대한 인식 변화가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국 응답자 중 “집을 소유하면 좋지만 소유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응답자는 48.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인식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더 뚜렷해졌다. 50대 응답자 중 53%가 “주택은 무리해서라도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20대는 49.7%가 “내 집이 있으면 좋지만 소유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답했다. 현실적으로 내 집 마련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30대 응답자의 55.6%도 “내 집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고 답해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고 답변한 38%를 크게 웃돌았다.

이에 대해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래 박사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주택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었다”면서 “당시에는 주택 가격이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주택 마련이 가능했지만 젊은 세대로 오며 소득 대비 높은 주택 가격으로 인해 주택을 구매하는 게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주택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구매보다 ‘서비스 제공’ 쪽에 맞춰져 주택 마련에 대한 욕구가 크게 감소했다는 것. 조 교수는 “젊은 세대는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산다는 가치관이 강하다”면서 “주택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주택을 마련할 만한 재정적 역량이 안 돼 지레 포기하는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점도 없지 않다”고 분석했다.

아파트 신화가 무너진 후 미래의 주택 시장은 어떻게 변화할까. 조 교수는 현재를 ‘과도기’라고 전제한 뒤 “20년 내 우리나라 주택 문화가 서구형으로 바뀔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1~2인 가구의 지속적인 증가, 소득 구조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주거 형태의 선호 등으로 ‘주거 혁명’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 박사는 “아파트 문화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대신 경제적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것보다 실속형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며 “수요자의 니즈에 맞춘 새로운 주거 공간으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취재=박진영·장진원·우종국·이홍표 기자

전문가 기고=김희정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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