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주거혁명, 굿바이~아파트] 사람이 ‘중심’, 암사동 서원마을에 가다 담장 낮춰 ‘소통’…휴먼타운 거듭나

지하철 암사역에서 마을버스로 다섯 정거장.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숲이 사라지고 나면 초록의 산과 어우러진 작고 아담한 주택단지와 만난다. 이곳이 바로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서원마을이다. 총가구수 64채, 주민이라고 해봐야 고작 340명이 전부인 이 한적한 마을에 요즘 외부인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다른 지자체의 공무원들이 시찰하기 위해 수십 명씩 마을을 방문하기도 하고 대학의 부동산 관련 학과 학생들이 버스를 대절해 단체 견학을 오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로선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낯선 이들의 방문이 불편할 법도 하지만 불평은커녕 오히려 마을 자랑에 여념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원마을은 재테크 수단이 아닌 ‘살기 좋은 공간’으로서의 집, 사람 중심의 공동체 마을로서의 좋은 사례로 각광받고 있다.

초록의 산과 어우러진 공동체

지난 2월 14일 기자가 찾아간 서원마을은 잘 정돈된 외국의 어느 마을을 연상케 했다. 마을회관이 있는 입구에서 바라보면 거의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마을인 데다 화려함과 거리가 먼 낮고 소박한 주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마을 전체가 일관성 있게 정리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곳곳에 들어선 신축 주택과 리모델링을 마친 주택들도 옛 주택들과 보기 좋게 어우러져 이질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서원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마당 안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낮아진 담장과 마당 안으로 들어간 주차 공간, 그리고 집 앞에 서 있는 동일한 모양의 빨강 우체통이다. 높은 담장을 허물고 대신 집집마다 유사한 모양의 울타리를 설치하면서 이웃 간 마음의 담장도 낮아졌다. 원래 주민들끼리 교류가 빈번한 마을이었지만 담장이 낮아진 뒤 대화하기가 훨씬 수월해진 것. 담장이 낮아진 후 안전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는 골목 곳곳에 설치된 CCTV로 해소했다. 주차 공간을 집 안으로 들이자 기존에 도로에 주차돼 있던 차들이 마당으로 들어가면서 도로는 한층 더 넓어지고 환경도 쾌적해졌다.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던 서원마을이 이러한 외형적 변화와 함께 활기를 되찾게 된 것은 서울 휴먼타운 시범 사업 지역으로 선정되면서부터다. 휴먼타운은 기존 뉴타운 사업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정책으로 오래된 주택을 개·보수하고 도로를 정비해 편의성을 갖춘 저층 주택 중심의 마을을 만드는 서울시의 사업으로, 서원마을이 휴먼타운으로 재탄생하는 데는 총사업비 36억3000만원과 9개월간의 공사 기간이 소요됐다. 한때 재건축을 추진하기도 했던 이곳은 그린벨트와 군사보호지역이라는 현실적 한계에 부딪쳐 서울시의 제안으로 휴먼타운 사업에 참여했다.

물론 사업 초기 일부 주민의 반대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막상 마을이 변화한 후에는 모두가 만족스러워한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서원마을 토박이라는 한 주민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마을을 바꿔준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라며 “원래 조용하고 살기 좋았는데 휴먼타운이 된 후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31년째 살고 있다는 김세황 씨는 “담장이 낮아지면서 주민들끼리 소통이 더 원활해졌다”며 “마당 안까지 들여다보이니 다들 자기 집 마당을 꾸미기 시작해 봄이 되면 마을이 더 예뻐질 것”이라고 자랑했다.

강동구청 도시계획과 조기석 씨는 “서원마을이 휴먼타운으로 다시 태어난 데는 주민들의 참여가 절대적이었다”며 “법적으로는 3층까지 지을 수 있는 데도 마을 주민들이 투표를 거쳐 자발적으로 2층 이하로 제한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 지은 마을회관 2층에 들어선 마을도서관에서는 시인·수필가·화가와 퇴임 교사 등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어린이 대상 강의도 할 예정”이라며 “서원마을은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정이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서원마을 주택 가격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지만 주민들은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김세황 씨는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20~30년 이상씩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64채 중 세입자가 사는 곳은 2채에 불과할 정도로 실거주자 중심 마을이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는지 어떤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고 설명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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