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다이아몬드] “뛰어난 협상가는 공감에서 출발합니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스타 교수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가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말 출간되자마자 스티브 잡스 전기를 밀어내고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섰다. 미국 명문 대학 인기 강좌를 책으로 옮겼다는 점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와 공통점이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단순한 협상 스킬에 그치지 않고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이해와 공존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협상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라며 “힘과 논리로만 밀어붙이는 어른보다 감성이 풍부한 어린이들이 더 뛰어난 협상가”라고 말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를 만나보면 그의 책이 딱딱한 이론 중심이 아니라 생생한 수백 개의 실제 사례로 촘촘하게 구성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건 취재로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이다. 기자가 들고 간 아이패드와 카메라에 연신 질문을 던지며 호기심을 나타냈다. 지난 2월 15일 책 홍보 차 방한한 다이아몬드 교수를 만났다.

왜 협상이 중요합니까.

인간관계의 기본이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모든 문제에 대해 항상 협상을 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죠. 쇼핑하거나 운전할 때도, 심지어 가족과 저녁식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이 자리도 예외가 아니죠. 나는 내 책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해요. 기자인 당신의 생각을 그려보면, 조금 회의적일 것이라고 짐작해요.(웃음).

교수님은 모든 협상에서 항상 이깁니까.

협상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협상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이죠. 내가 목적을 달성하려면, 상대방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어야 해요. 상대편이 원하는 것을 이뤄야만 내 목표도 채워지기 때문이죠.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이 이기게도 할 수 있어요. 내 목표가 채워지기만 한다면 당신이 얼마를 얻든 신경 쓰지 않아요. 협상에서 승리라는 개념을 없애는 게 맞아요. 그래야 스트레스도 덜 받아요. 아내와 협상할 때 절대 이기겠다는 생각을 안 하죠. 승자와 패자는 스포츠에서 온 개념이에요. 삶은 스포츠가 아니거든요. 협상은 필요에 대한 것이지 승리와 패배에 대한 것이 아니에요.

그럼 교수님은 원하는 것을 항상 얻습니까.

누구도 원하는 것을 항상 얻지는 못해요. 내가 만든 방법론을 활용해 조금 더 얻어낼 뿐이죠. ‘게팅 모어(Getting more)’라는 책의 원제도 모든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얻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비즈니스나 삶에서 탐욕을 부리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보면 오히려 더 적게 얻거든요. 비즈니스에서 오랫동안 서로 혜택을 보는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가진 기업이 가장 좋은 성과를 냅니다. 모든 사람 관계가 짧은 단기 거래에서부터 시작하죠. 그걸 넘어 더 깊은 관계로 가려면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해요.

그래도 협상에서 얻는 사람과 잃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 나를 경쟁에서 꼭 밀어내겠다고 덤비면 나는 이런 반응을 보이죠. ‘돈을 벌고 싶습니까? 둘이 함께 더 좋은 방안을 만들 수 있는데요.’ 어찌 보면 인류 역사는 가치를 더하는 과정이죠. 요즘은 옛날처럼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요. 모두 자동차를 운전하죠, 말에서 마차로, 다시 자동차로 계속 가치를 더하며 발전해 온 거죠. 이는 모든 인간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돼요. 더 나은 가치를 만드는 대안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거죠.

협상 능력은 타고나는 것 아닙니까.

인간은 협상 스킬을 갖고 태어나죠. 삶 자체가 협상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보다 아이들이 오히려 더 뛰어난 협상가예요. 어린이는 힘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 감정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거든요. 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힘을 갖게 되고 영리한 도구로 휘두를 수 있는 ‘야구 방망이’도 손에 넣게 됩니다. 어려서 쓰던 협상 도구는 잊어버리죠. 위협적인 야구 방망이가 영리한 협상 도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강의에서 아이들처럼 협상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해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고 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조금씩 단계적으로 원하는 것에 도달하는 거죠.

교수님의 방법이 기존 협상론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내 협상 모델의 핵심은 힘과 논리를 사용하는 것보다 감정과 지각을 활용하는 것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 낸다는 겁니다. 세계는 이성적이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상대방이 뭘 생각하는지 모른 채 협상을 시작해요. 자신의 말이 무조건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고 착각하는 거죠. 상대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 찾아내 그 그림에 맞고 내 목표도 충족할 수 있는 제안을 내놓을 때 비로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매우 섬세하고 상황에 좌우되는 일이죠.

너무 주관적인 접근법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상대의 느낌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인간은 감정적이 되면 귀를 닫아 버리죠. 일단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그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어요. 큰 국제적 협상이나 자녀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를 때나 마찬가지죠.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정확하게 알고 이를 무시하지 않고 인정해 줘야 해요. 작년에 있었던 노사 협상 사례를 보죠.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단 한마디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관리자들이 먼저 노동자들의 기분을 풀어주는 게 필요했죠. 누군가 노동자들이 미쳤다고 말했어요. 나는 ‘그 상황 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대꾸했죠. 관리자들은 ‘미치고 설득당하는 노동자’와 ‘미치고 설득당하지 않는 노동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주면 설득하기가 훨씬 쉬어집니다.

아이들과의 협상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도 아홉 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어요. 아이에게 절대로 ‘방을 치우지 않으면 레고 안 사준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요. 더 화만 내고 결국은 방도 치우지 않거든요. 대신 ‘레고를 너무 사주고 싶은데, 방을 깨끗이 하는 아이에게 레고를 사주고 싶다. 너는 그런 아이니?’라고 말하죠. 아이들은 어른과 뭔가 거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들이 네 살 때부터 TV 만화영화를 좋아했는데, 피아노를 치면 그 시간만큼 만화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동안 만화영화를 아주 많이 봤지만, 피아노도 카네기홀에서 연주할 정도가 됐죠.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우리 삶도 똑같이 주고받는 것 아닙니까.

오바마 대통령의 협상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뛰어난 협상가로 출발했어요. 많은 사람의 생각을 비전으로 포착해 냈거든요. 하지만 두 가지 큰 실수가 있었죠. 항상 위험이 있을 때는 작은 걸음부터 시작해야 해요. 오바마 대통령은 수천 쪽 분량의 의료보험 법률을 한꺼번에 제출했어요. 먼저 10쪽 정도로 시작해 성공한 다음 다시 10쪽을 내놓으며 단계적으로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정부 부채 협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감정적이 됐어요.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인 하원 의장을 비난하며 협상장을 먼저 박차고 나가지 말았어야 해요. 오히려 존 베이너 의장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어야죠. 그랬다면 공화당은 스스로 신용을 잃었을 겁니다.

약력:1970년 러트거스대 영문과 졸업. 뉴욕타임스 기자. 1987년 퓰리처상 수상. 1990년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1991년 글로벌스트래터지그룹 대표(현). 1992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1992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현).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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