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주거혁명, 굿바이~아파트] “좋은 집에 대한 기준부터 바꿔야죠”
입력 2012-02-23 13:34:20
수정 2012-02-23 13:34:20
인터뷰 ‘하우스 얼리어답터’ 건축가 이현욱
국내에 ‘땅콩집’ 열풍을 불러일으킨 건축가이자 제1호 땅콩집을 설계하고 지은 이가 있다. ‘하우스 얼리어답터’, ‘집 들고 이사 가는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현욱 (주)광장건축사사무소 소장이다. 집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과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대안 주거 공간 개발을 위해 열렬히 고민하고 진지하게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그가 꿈꾸는 살기 좋은 집, 행복한 집은 과연 어떤 형태일까.
‘하우스 얼리어답터’라는 별칭답게 지금까지 8종류의 집에서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오피스텔부터 다가구 원룸, 99㎡(30평)대와 132㎡(40평)대 아파트, 직접 건축한 철제 주택, 콘크리트 주택, 이동식 주택인 모바일 하우스, 단열을 강화한 목조 단독주택인 아이올라, 한 공간 안의 두 집인 땅콩집 등에서 살아봤죠. 결혼한 후에도 한 9번 정도 이사를 다니다 보니 아내나 아이들의 불만도 많았어요. 이사비용도 많이 깨졌죠(웃음).
왜 그리 자주 이사를 다닌 건가요.
건축가로서 다양한 집들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어요. 그저 한 번 ‘스윽’ 보는 것만으로는 그 집이 어떤 집인지, 결로현상(건축물 내·외부의 온도 차이로 건축물 벽체 표면에 물방울이 생기는 현상)이 생기는지 안 생기는지 모르잖아요. 아내는 “명색이 건축 설계를 하는 사람인데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냐”고 하는데(웃음), 실제 단열 효과는 어떤지, 난방비나 유지·관리비가 얼마나 나올지 등은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거든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적어도 6개월 정도는 살아보면서 집을 연구해야죠.
최종적으로는 땅콩집에 정착한 셈인데요.
그렇죠. 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지 2년여가 되어 가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집’에 가장 근접한 형태의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장님이 생각하는 좋은 집은 어떤 집인가요.
몸에 좋은 집, 건강한 집이죠. 가족이 함께 오랜 시간 생활하는 곳인 만큼 집은 건강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건강에 이로운 자재들로 만들어진 단열, 환기가 잘되는 공간인 동시에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나 다락방처럼요. 비록 손바닥만 한 공간이라도 마당이나 다락방이 있고 없고가 아이들에게는 큰 차이가 있거든요.
그래도 처음 땅콩집을 짓겠다고 했을 때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주변에서도 많이 반대했죠. 우리나라에서는 전례가 없는 건축 형태이다 보니 못미더워 하는 이들도 있었어요. 돈이 없어서 공동 공간에 집을 짓는 것이라면 돈을 더 벌어서 단독주택을 짓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들도 있었죠. 아내도 비슷한 반응이었고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당장 뛰어놀 수 있는 공간, 마당이나 다락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설득했습니다. “나는 능력이 없다. 10년 뒤에 내 집을 지을 돈을 번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마당이나 다락방이 필요 없어진다. 당장 내 아이들에게 추억을 줄 집과 공간이 필요하다”고요. 집 지을 돈이 모일 때까지 아이들은 언제까지고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아이는 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잔소리 듣지 않고 실컷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많으니 엄청 좋아하죠.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아이 친구들이 놀러 와 다락방과 마당에서 실컷 뛰어놀더니 엄청 부러워하면서 그러더래요. “야, 너희 집 진짜 부자구나”라고요. 그런데 부자긴 무슨 부자예요. 109㎡(33평) 아파트 전세와 같은 가격인데(웃음). 하지만 아이들 눈으로 보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고 다락방이 있으니 엄청 좋은 집인 셈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진짜 ‘좋은 집’은 아이들의 눈에 정답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다양한 대안 주택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수도권에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집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요. 흔히 많은 이들이 단독주택은 비싸고 유지·관리비도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잖아요. 단독주택에 비해 아파트는 조금 더 싸고 유지·관리비도 적게 나오니까 경제적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단독주택도 아파트보다 경제성이 더 뛰어날 수 있거든요. 실제로 우리 집도 전체 159㎡(48평) 규모인데 유지·관리비는 99㎡대 아파트 수준밖에 안 돼요. 단독주택이라는 게 감히 꿈꿀 수 없는 게 아니니 도전해 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재테크의 수단으로서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들도 많죠.
지금은 아파트가 우리나라 주택 시장의 주류이자 대세이니까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은 주거 공간은 돈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집보다 지금 현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무조건 아파트가 나쁘고 단독주택이 좋다는 건 아니에요. 우리 가족이 사는 방식이 아파트 생활에 더 맞는다면 아파트가 더 행복한 주거 공간일 수 있죠. 그렇기에 주거 형태를 정할 때는 단순히 부모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게 아니라 자녀들까지 가족이 모두 모여 행복한 집, 좋은 집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한 다음 주거 형태를 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거 형태를 결정할 때 경제적인 부분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맞습니다. 실제로 집을 지을 사람들에게 공간의 의미나 행복한 집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해도 결국 저에게 묻는 건 ‘돈’에 관한 것이죠. 그 금액에 집을 지을 수 있는지, 주방은 별도인지 아닌지, 평당 얼마인지…. 물론 중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거든요. 가지고 있는 자금 규모에 따라 효율적인 공간 설계를 하면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집의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고민해 봐야 하고요.
집의 가격보다 면적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군요.
집이 크면 그만큼 에너지도 많이 소요되고 공사비도 많이 들어요. 요즘 단독주택 수명이 30~50년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잖아요. 결국 아무리 공사비를 많이 들여 봤자 50년 뒤에는 전부 쓰레기가 된다는 얘기예요. 그에 반해 작은 집이라도 잘 지은 집은 100년도 더 갈 수 있거든요. 어떤 방법을 택해 집을 지을 것인지, 또 자신이 필요로 하는 합리적인 면적은 어느 정도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집이 작으면 그만큼 냉난방에 쓰이는 에너지도 많이 절약할 수 있어 지구환경에도 도움이 되죠. 가족이, 지구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 면적을 고민하는 것이 새로운 주거 혁명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주거에 관한 의식 변화 외에도 더 필요한 부분은 없나요.
국가적으로는 단독주택을 좀 더 원활하게 지을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또한 많은 건축가들의 주택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처럼 실험 정신을 지닌 건축가로서 좀 더 좋은 집, 좀 더 행복한 집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계속해 갈 예정입니다.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