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가치 인정해야 한국 저력 살 것” 조영빈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

소프트웨어 강국 코리아 릴레이 인터뷰 8

다쏘시스템(Dassault Systems)은 3D 설계를 비롯한 PLM(Product Lifecycle Management) 소프트웨어의 세계 1위 업체다. PLM(844호 ‘지멘스 PLM 소프트웨어 코리아’ 기사 참조)은 최근 제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프로그램이다. 창업자의 이름에서 유래한 ‘다쏘’는 원래 항공사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다쏘항공은 미라지·라팔 등의 전투기를 만드는 회사다. 비행기 설계에 쓰인 3D 설계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업계의 요구로 1981년 다쏘시스템을 설립했고 이후 다쏘시스템의 제품은 항공기·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으로 확산됐다. 1997년부터 다쏘시스템이 국내 업무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한 조영빈 대표는 2007년부터 다쏘시스템코리아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다쏘시스템 제품이 국내에서 얼마나 사용되고 있습니까.

현대자동차는 1981년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다쏘시스템을 쓰는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 중 다섯 번째 안으로 일찍 도입한 회사입니다. 당시 차량 설계가 가능한 소프트웨어가 없던 시절인데 빨리 쓴 편이죠. 지금은 국내 자동차 메이커 중 한국GM만 빼고 다 우리 것을 쓰고요, 전 세계 항공사의 90%가 우리 제품을 씁니다. 지난해 ‘북미 올해의 차’에 오른 최종 후보 6개 차량이 모두 다쏘시스템의 ‘카티아(CATIA)’ 제품으로 설계된 차들이었습니다.

전자 회사도 많이 씁니까.

LG전자를 비롯한 다수의 정보기술(IT) 업체들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분야에 쓰입니까.

건설 분야에도 쓰입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동대문플라자에 올라가는 독특한 아치형 지붕은 카티아로 설계된 겁니다. 일반 설계 제품으로는 이런 불규칙한 곡선체를 구현하기 힘듭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예를 들면 미리 굴삭기가 움직이는 범위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또 케이블 간의 간섭 체크 같은 것도 가능합니다. 에어버스 380 설계에도 카티아가 쓰였는데, 수많은 전선들이 오가는 터널을 3D로 살펴본 뒤 소재와 형태를 변경해 경량화를 실현했습니다.
(조 대표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간단히 제품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3D 소프트웨어는 제조업의 제품 설계 외에도 주택이나 매장의 인테리어를 가상의 화면으로 미리 볼 수 있고 소비자가 직접 자신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설계로 구현해 생산자에게 전달할 수도 있는 등 굉장히 많은 분야에 응용이 가능해 보였다.)

3D의 응용 분야가 다양하군요.

PLM의 기본 개념은 ‘가상 설계→제작→폐기’의 전체 과정을 관리하는 것인데, 지금은 설계 전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고객이 스스로 원하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이를 웹에 올리는 것이죠. 디자인은 과거에는 설계자만 가능했지만 이제는 소비자가 직접 만들어 판매하거나 기업이 그 디자인을 살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가 디자인 팀원이 되는 것이지요. 이젠 제조업에서도 고객의 요구를 직접 반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겁니다.

시뮬레이션 기능은 뭔가요.

실제로는 비용과 시간의 문제로 하기 힘든 충돌 테스트 같은 실험을 컴퓨터상에서 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BMW에서 우리 제품 ‘시뮬리아’로 충돌 테스트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같은 전자제품에서도 충격 시험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컴퓨터로 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99.9% 같습니다. 예전 같으면 자동차를 개발할 때 100대를 충돌시키지만 요즘은 대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사실 프로그램은 물리학입니다. 실제 충돌과 시뮬레이션 값을 반복 검토하면서 오차를 줄여나가다 보면 결국 실제와 같은 값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매장 인테리어를 가상으로 해 볼 수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까르푸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까르푸의 전 세계 4000개 매장은 분기마다 디스플레이(진열)를 바꾸는 데 1주일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를 먼저 가상의 화면에서 바꿔보면서 결정한 뒤 현장에서는 그대로 물건을 배치하기만 하면 됩니다. 매장에서 매대를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결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P&G는 자신들이 원하는 매장의 위치라든지, 사람들 눈높이에서 어떻게 매대가 보일 것인지를 3D 화면으로 미리 살펴봅니다.

그런 부분은 꽤 효율적으로 보이네요.

이게 사실 친환경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파괴하지 않고 미리 다 해볼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그 많은 차들을 일일이 충돌시킨다고 해 보십시오. 또 인테리어에서도 뜯고 새로 붙이고 하는 것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다쏘시스템이 다보스포럼의 세계 100대 지속 가능성 어워드에서 32위에 선정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조업에서 이렇게 중요하게 쓰이는 소프트웨어를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만들지 않는 것도 이상하군요.

기본적으로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문제입니다. 제조업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제조업체에 가보면 사업주가 돈을 들여 기계를 사서 들여놓으면 ‘든든하다’고 하는데,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면 ‘내 돈 어디 갔어’라고 화냅니다. 구매해서 쓴다고 하더라도 가격을 너무 낮게 쳐 줍니다. 다쏘시스템은 매출의 25%가 연구·개발(R&D)에 쓰입니다. 매출 2조 원대의 회사에서 이 정도면 연구비 액수로 글로벌 톱 3 안에 들지 않을까 싶을 정돕니다. 국내는 소프트웨어 업체의 R&D 투자 비중이 낮은 편이라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군요.

외국 소프트웨어를 쓰면 그나마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국산을 쓰면 ‘꼭 그거 (돈 내고) 써야 해’라며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중소기업·공공기관·학교 등에서 불법 복제품을 쓰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미국 같으면 어림도 없습니다. ‘학생이 그런 (비싼) 걸 사나’ 싶겠지만 학생이라도 불법 복제품을 쓰면 범죄자로 취급하는 문화입니다.

다쏘시스템 제품도 정품을 쓰지 않는 곳이 많습니까.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굉장히 선진국처럼 보이지만 불법 복제율이 국가 위상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 이걸 해결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런 것만 해결되면 한국 소프트웨어의 발전 가능성이 있습니까.

한국 업체들의 아이디어는 뛰어납니다. 싸이월드는 페이스북보다 빨랐고 소리바다도 아이튠즈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사회적 기반이 받쳐주지 못해 세계적으로 크지 못한 겁니다.

약력: 1967년생. 영국 에섹스대 경제학과 졸업. 일본 인터내셔널대 MBA. 경희대 경제학 박사. 97년 다쏘시스템 국내 재무팀 매니저. 2006년 다쏘시스템 중국 PLM 채널 총괄 상무. 2007년 다쏘시스템코리아 지사장. 2010년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이사(현).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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