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이상한 계산법

“남에게 신세 지고 살지 마라.” 아버지는 빚을 지고 살아가는 것에 엄청난 거부반응을 보이신 분이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수치라고 생각했다. 쓸데없이 이자를 내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남에게 돈을 빌리면 아버지는 갚아야 할 날짜보다 가능하면 일찍 돈을 갚으려고 노력했다.

“아버지는 왜 그 돈을 미리 갚으세요. 그러면 손해 보는 일 아닌가요?”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아버지의 이상한 계산 방식에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셈을 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자를 미리 내고도 채무 일자보다 앞서 돈을 갚아버린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남에게 돈을 빌리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다. 남의 돈을 빌리고는 두 다리 뻗고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결과적으로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신용을 올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셨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더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일종의 평판 효과가 생기는 셈이다.

“추운 데 웅크리고 있지 마라.” 겨울날 밖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집 안에서 뒹굴고 있는 내게 아버지는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기회가 포착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춥다고 아랫목에 웅크리고 앉아 있고, 덥다고 그늘 아래 퍼져 있으면 언제 일할 것이냐는 질책이다.

또 다른 의미는 잘나갈 때 기가 살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은 누구든지 하는 일이다. 시키지 않아도 신이 나서 그렇게 한다. 잘 못 나갈 때는 본능적으로 어깨가 축 처지게 마련이다. 사실은 이렇게 상황이 어려울 때일수록 더 어깨를 펴야 할 때다.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는 사실 형편이 좀 어려울 때다. 오히려 잘나갈 때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보해야 한다.

“사람은 결심이 있어야 한다.” 대학생 시절 방학이 돼서 집에 내려오면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한 번 한다고 했으면 끝까지 해야 한다. 뭘 할지 심사숙고한 다음에는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그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미지근하게 일을 진행시키는 아들이 늘 못마땅하시면 꼭 이 말을 하셨다. 내가 철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할 때였다. 아버지는 큰아들이 당신이 하시던 사업을 더욱 크게 해나가기를 원하셨다. 결국 사업보다 학업을 결정한 아들에게 공부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이런 격려와 배려가 있었기에 나는 내가 이만큼이라도 성장했다고 믿는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큰아들이 부족해 보이고, 나약해 보였던 것 같다. 내가 더 잘되기를 늘 바라셨다. 만날 때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보셨다. 항상 겸손하게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안 먹고 안 입고 아껴서 가족들에게 다 남겨주셨다. 조금 손해보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도 하셨다. 예전에는 참 이해하기 힘들었던 아버지의 가르침들이 이제 하나 둘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좀 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걱정을 덜 끼쳐 드렸을 텐데”하는 후회가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밀려온다.

김형철 연세대 송도국제캠퍼스 교육원장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