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같은 벤처 생태계 키워야”

정경원 시만텍코리아 대표


시만텍은 정보 보호 및 관리 솔루션 전문 기업이다. 지난해 포천 선정 미국 500대 기업 중 ‘컴퓨터·소프트웨어’ 부문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오라클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회사다. 포천 선정 500대 기업 100%가 시만텍의 고객사이기도 하다.

현재 시만텍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는 정경원 사장은 외국계 기업에서 오래 몸담았던 경험을 토대로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의 키워드는 ‘패키지화’, ‘인수·개발(A&D)’이라고 조언했다.

시만텍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1982년에 설립된 시만텍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 뷰에 있고 현재 전 세계 50개 이상 국가에 진출해 있으며 직원 수는 1만8500여 명입니다. 2011년(회계연도) 매출은 약 7조 원 규모(62억 달러)입니다. 시만텍코리아는 1997년에 설립돼 약 100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업 분야는 어떤 겁니까.

기업 및 개인 사용자들의 정보 보호 관련 기술과 솔루션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엔드포인트 보안, 사용자 인증, 메시징 보안, 컴플라이언스, 아카이빙, 암호화 및 데이터 유출 방지(DLP: Data Loss Prevention)는 물론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가상화 및 클라우드 분야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이런 보안 시스템들을 다 쓰고 있습니까.

많이 안 쓴다는 게 문젭니다. 일단 암호부터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보안은 어느 한 곳이라도 새는 곳이 있으면 다 뚫립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내부 암호는 6개월에 한 번씩 바꾸길 권장하고 이르면 3개월에 한 번씩 바꿔야 합니다.

변동형 암호는 실제로 많이 쓰입니까.

미국에는 많습니다. 은행에서 쓰는 OTP(One Time Password)도 변동형 암호의 일종입니다. 기업에서 활용하려면 OTP 기기 대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공인인증서가 많이 쓰이다 보니 앱(변동형 암호) 상용화가 어렵습니다.

공인인증서를 쓰는 곳이 한국밖에 없습니까.

외국은 공인인증서를 쓰지 않습니다. SSL(Secured Sockets Layer)이 국제 표준입니다. 개인은 패스워드(암호)와 OTP만 쓰면 됩니다.

공인인증서와 SSL 중 어느 것이 더 낫습니까.

어느 것이 낫다기보다 한국의 보안 산업이 활성화되려면 국제 표준에 따라야 합니다. 공인인증서가 없어도 미국은 사고 없이 잘 쓰고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한국 업체들이 내수에서 아무리 기술력을 쌓아도 해외로 진출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이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막고 있다고 볼 수 있군요.

소프트웨어는 국내시장만 보고 만들면 안 됩니다. 해외를 보고 만들어야지요. 휴대전화·TV·자동차도 모두 세계시장을 보고 만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안 시장은 애초부터 국내 규약과 기준에 맞춰 파는 것을 목표로 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크지만 그 이상 크지 못합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지식재산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드웨어는 장비 가격만큼을 돈 주고 구매하면서 소프트웨어는 예산 내에서 해 달라는 식입니다. 개발비는 ‘매몰비용’이니까 ‘용역비만 받아라’는 태도가 문젭니다. 지금은 식물 종자에도 로열티를 내지 않습니까. 1차산업에서도 지식재산이 중요한데 3차산업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용도 문제지만 ‘패키지’로 구매하기보다 ‘수주 용역형’만 요구하는 태도도 문제입니다. 미국에도 수주 용역형 업체들이 있지만 유명한 기업은 없습니다. 스타 기업은 윈도·MS오피스·포토샵 같은 패키지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육성은 수주 개발형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인도가 소프트웨어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미국으로부터 용역을 받는 식입니다. 인도에서 스타 기업이 나오지 않은 이유입니다. 소프트웨어에서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기업을 키우려면 패키지로 가야 합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까요.

소프트웨어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이 시급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기업 내에서도 ‘을’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대다수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전문가 출신의 고위 임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좋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다반사입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기업의 최고위급 임원으로 중용하고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시키는 풍토가 조성돼야 합니다.

사용자는 소프트웨어를 제값 주고 사야 하고 불법 복제는 범죄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율을 10%만 줄여도 약 2만 개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3조 원의 국내총생산(GDP)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합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시만텍(본사)은 지금까지 40여 개의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모든 솔루션을 직접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잘 개발된 것을 인수하는 것이죠. 일종의 연합군입니다. 이를 인수·개발(A&D: Acquisition & Development)이라고 합니다. 보통 연구·개발(R&D: Research & Development)은 기업 내부에서 이뤄지는 것인데, 당장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 리서치에 쏟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대신 좋은 서비스·제품을 개발한 (벤처)기업을 인수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벤처기업과 인수 기업 모두 이익입니다.

A&D 모델은 벤처기업이 성장하는 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겠습니까.

국내에선 벤처기업이 잘되면 대기업이 어떻게 합니까. 인력을 빼 가거나 벤치마킹해 똑같은 서비스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문화에서는 벤처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A&D가 정착되면 벤처와 큰 기업 사이의 생태계가 형성됩니다. 벤처로 백만장자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실리콘밸리에는 그런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게 없으면 뛰어난 인재라도 대기업에 입사해 월급쟁이로 살겠죠.

갈 길이 멀군요.

한국은 개발 능력이 뛰어납니다. 외부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이 제조업을 키운 것처럼 소프트웨어도 키울 역량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이와 함께 혁신을 장려하고 촉진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에선 ‘벤처 캐피털 커뮤니티(venture capital community)’가 유망한 젊은 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중요합니다. 일례로 미국은 R&D 투자비용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시만텍도 그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약력: 1960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4년 쌍용정보통신. 1995~2008년 한국HP UNIX 마케팅 담당 부장. 시스템 마케팅 총괄 이사, 텔레콤 영업 본부장, IPG 커머셜 프린터 사업 본부장, 커머셜 & SMB 영업 총괄 전무. 2010년 시만텍코리아 대표이사(현).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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