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일본] 위기의 일본 경제 뜯어보기

이젠 변화할 때…‘정치 리더십’이 열쇠

작년 3월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경제는 극심한 전력 불안에도 불구하고 생산 시설 복구에 힘입어 2011년 7~9월에 5.6%(전기 대비 연율 기준, 2차 발표치)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2년 일본 경제는 2% 전후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의 충격과 재정 불안으로 금융 불안 구조를 극복하지 못한 구미 각국과 달리 일본의 엔화나 금리는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은 오히려 엔고를 우려할 정도다. 사상 초유의 대지진 피해를 보고도 각국에 금융을 지원하고 엔고 파워를 이용해 외국 기업을 잇달아 매수·합병하고 있는 일본을 보면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국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저력이나 지진 복구 수요에 힘입은 단기적인 경기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의 앞날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롄 회장 등 경제계 인사들은 최근 일본의 비즈니스 환경 악화를 크게 걱정하는 발언을 남발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단순히 기업가의 엄살로 웃어넘길 수 없을 정도로 일본 기업의 사업 환경 악화가 우려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 전력 부족, 연료 수입으로 요금 인상

우선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후유증으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이 잇달아 중단됨으로써 전력 불안과 함께 전기세 인상이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지난 1월 기준으로 전국 54개 중 51개가 가동을 중단, 2012년 4월까지 나머지 3개의 원자력발전소도 가동을 중단할 것으로 보여 산업계에 대한 충격이 우려되고 있다.

작년 여름에 우려됐던 전력난에 따른 생산 차질은 전국적으로 크게 나타나지 않아 일본 경제의 성장세가 회복됐지만 전력 사용량이 많은 올여름이나 겨울에 생산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작년에 동일본 지역 이외에서는 전력 사정이 양호했지만 올해에는 오사카 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전력 사정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함으로써 화력발전을 확대하기 위해 일본은 작년도에 액화천연가스(LNG) 등의 수입을 크게 늘렸다. 광물성 연료의 2011년 수입 금액은 21조7834억 엔(약 313조 원, 1엔=14.42원 기준)에 달해 2010년 대비로 4조3855억 엔(약 63조 원)이나 늘어났다. 막대한 원료 수입 부담 때문에 일본의 전력 요금은 상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전력 불안과 전력 요금의 인상은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제조업체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작년 이후 첨단 기술을 가지고 세계 시장점유율이 높은 일본의 부품·소재 기업도 일본 내 생산만을 고집했던 자세를 바꾸고 해외 투자, 일본 탈출에 나서고 있다.



2. 엔고와 디플레의 악순환

두 번째, 전력 불안과 함께 일본 기업의 고민은 지속적인 엔고다. 일본 엔화는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에는 구미 금융 불안의 여파로 안정통화로서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세계 경기가 둔화되는 시점에서 엔고 압력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일본 기업으로서는 세계 경기 둔화에 따른 충격이 더욱 확대되는 구조다.

이러한 엔고 압력은 일본의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디플레이션 현상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각국 물가에 비해 일본 물가가 안정을 보여 그만큼 엔화의 실질 구매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엔화가 강세를 보이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 기업으로서는 내수 경기가 위축되고 매출 감소와 판매 가격 하락의 압력을 받는데다 이것이 다시 엔고 압력으로 작용해 수출 매출 부진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고민이 가중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의 끈질긴 디플레이션 압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며 일본 중앙은행에 국채 매입의 획기적 확대 등을 통한 과감한 양적 금융 완화 정책을 요구하는 주장도 당분간 수용될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3. 40% 법인세율, 개혁 지지부진

세 번째, 기업의 높은 조세 부담에 대한 일본 기업의 고민도 크다. 2011년에는 법인세의 실효세율을 40.69%에서 35.64%로 낮추는 개혁안이 추진됐지만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복구비용을 마련해야 하게 돼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40%가 넘는 일본 법인세의 실효세율은 독일의 29.38%, 중국 25%, 싱가포르 17% 등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일본 기업은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법인세의 인하를 계속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일본의 국가 채무는 경상 국내총생산(GDP)의 230%를 넘어 재정 위기에 고전하는 그리스보다 나쁜 상황인 데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재정 사정이 더욱 악화되고 있어 법인세 인하에 어려움이 있다.



4. 기로에 선 정치적 리더십

인구 1억2000만 명이 넘는 일본은 내수시장의 건실한 성장이 일본 기업과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의 구조 변화에 맞게 거시적인 차원에서 개혁이 효과를 보지 못함으로써 만성적으로 내수가 부진을 보인 가운데 일본 사업, 일본 기업이 쇠약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동일본 대지진은 재정 적자 등 일본의 구조적 문제에 일시적인 악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본이 지진 복구 과정에서 동북 지역의 경제 회생을 통해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전기차, 스마트 그리드, 제조업 및 농업의 클라우드 컴퓨팅 연계를 통한 스마트화 등 차세대 산업 육성에 주력하면서 경제 회생의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동안 일본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리더십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장기화되고 있는 디플레이션 현상에 대한 우려감이 공유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대응책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정책 측면에서도 첨단산업이나 문화산업을 부양하기 위한 새로운 지식집약형 공공투자 정책의 개발,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한 복지 지출과 함께 복지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혁신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고조되고 있다. 그렇지만 재정수입이 정체되는 가운데 중요도가 떨어진 기존 분야의 지출을 과감하게 줄이고 새로운 분야의 지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한데,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은 그동안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저성장 경제에 접어들면서 기득권의 재조정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리더십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 인구노령화에 따른 의료 등 사회보장 지출의 급증 속에서 각국에 비해 낮은 일본의 소비세(5%)를 대폭 인상해야 하지만 정부의 효율이나 경제 운영에 대한 믿음이 떨어져 정책에 대한 호응도가 낮기 때문에 정치적 결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일본은 사회적 혼란 없이 동일본 대지진의 복구에 성공하고 또한 원자력발전소의 중단 사태에도 불구하고 2011년에도 연간 1250억 달러를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등 사회적 자본의 우수성이나 경제 기반의 견고함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 부진의 장기화에 따른 중산층의 몰락 현상이나 기존 산업의 해외 탈출에 상응하는 신산업의 육성 부진 등으로 이러한 기반이 약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이 국민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구조 혁신에 매진, 중·장기적인 쇠퇴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jplee@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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