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 연매출 3조 원 돌파 비결은

공격적 M&A…글로벌 시장도 뚫는다

세계 최대의 소비재 기업인 P&G의 매출액은 2010년 기준으로 789억 달러, 우리 돈으로 91조 원에 달한다. 1981년만 해도 P&G의 매출은 114억 달러에 불과했다. 2000년에도 399억 달러로 성장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불과 10년 만에 매출이 2배가량 증가했다.

P&G의 고속 성장 배경을 살펴보면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대표적인 생산 품목이 소비재, 즉 ‘생활용품’이라는 것이다. 흔히 생활용품 산업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정체된 시장이라고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생활용품이야말로 수요가 끊이지 않는 안정적인 품목이기도 하다. 경기가 어렵고 수입이 줄어들 때 고급 가전제품을 사려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비누’나 ‘세제’를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고속 성장의 또 다른 배경은 인수·합병(M&A)이다. 2000년대 이후 P&G의 성장은 ‘뷰티’와 ‘헬스’ 카테고리가 주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1998년 탐브랜즈, 2000년 아이암스, 2002년 클레롤, 20 03년 웰라, 2004년 핫친스 등 관련 기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한 결과다. M&A를 통해 지속 성장의 동력을 찾고 생산 품목 다변화, 핵심 브랜드 강화를 동시에 추진한 것이다.
페이스샵 명동점에 일본 및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 .com20081125....

생활용품 기업, M&A 통해 성장

P&G와 유사한 성공 사례를 국내 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LG생활건강이다. 지난 1월 26일 LG생활건강은 일본 화장품 업체인 ‘긴자 스테파니’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우선 지분의 70%인 91억 엔(약 1319억 원)을 지불하고 나머지 30%에 대한 지분은 3년 이내 이익 증가분을 반영한 금액으로 매입한다는 계획이다.

긴자 스테파니는 1992년 일본에서 설립된 안티에이징 화장품 전문 기업으로 통신 판매를 주로 하고 있다. 2010년 매출액 1437억 원, 영업이익 281억 원을 기록했고 작년에는 매출액 825억 원, 영업이익 141억 원을 기록했다. 1년 사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42.7%, 49.8% 감소했는데, 이는 도쿄 대지진의 영향 때문이다. 현지에선 올해 매출액을 1000억 원, 영업이익은 180억 원으로 예상해 대지진 이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긴자 스테파니는 도쿄 긴자에 10층짜리 사옥을 소유하고 있고 종업원 수는 300여 명이다.

LG생활건강의 이번 M&A는 국내 기업이 해외 화장품 제조·유통업체를 인수한 첫 번째 사례다(향수 제외). 일본 시장은 단순한 해외 진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일본의 화장품 시장 규모는 약 41조 원에 달한다. 한국의 6배다. 생활용품 시장 역시 21조 원으로 7배 수준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2위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 바로 일본이다. 하지만 일본은 로컬 업체가 워낙 견고해 국내 브랜드의 진입 자체가 어려운 시장이었다. 긴자 스테파니가 일본 시장 진출의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LG생활건강의 일본 시장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일본 현지 유통업체인 TJI를 통해 세제와 섬유 유연제 등을 수출해 왔다. 또 작년부터 일본 최대 유통업체인 이온(AEON)사와 전략적 제휴, ‘더페이스샵’ 매장을 400여 개로 늘렸다. 일본 소비자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발효 화장품 ‘숨’은 일본 롯데닷컴을 통해 온라인 판매에 나선 상황이다.

LG생활건강은 지난 4분기 매출액 83 01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0.2%의 고성장이다.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10.8% 늘어난 776억 원을 올렸다. 연간으로 치면 3조4524억 원의 매출액으로 연매출 3조 원을 처음 돌파했다. 영업이익도 4000억 원을 넘어섰다. 화장품·생활용품·음료 등 그룹의 사업 부문 중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고른 성장세를 유지한 결과다.



화장품·생활용품·음료 고른 성장 지속

세제와 비누를 만들던 생활용품 기업이 이처럼 놀라운 실적을 올린 데는 전략적인 M&A 승부수가 통했기 때문이다. ‘일본 화장품 기업 국내 첫 인수’라는 타이틀 외에도 LG생활건강은 2007년부터 굵직한 M&A를 독식하다시피 해왔다. 모두 차석용 부회장 부임 후의 일이다.

차 부회장은 1985년 생활용품 전문 기업인 미국 P&G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99년 P&G 한국총괄사장을 거쳐 2001년 사외이사에 선임되며 LG생활건강과 첫 인연을 맺었다. 3년 후인 2004년 대표이사로 부임한 차 부회장은 지난해 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LG그룹의 올해 임원진 인사에서 유일한 부회장 승진이었다. 2005년 이후 27분기 연속 두 자릿수 이상의 매출액·영업이익 성장을 이뤄낸 공을 인정받은 결과다.

M&A의 시작은 2007년 ‘코카콜라음료’ 지분 90%를 3521억 원에 인수하면서부터다. LG생활건강은 코카콜라 인수 1년 만에 턴어라운드에 성공하며 흑자로 전환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2011년 1월에는 ‘해태음료’의 지분 100%를 단돈 1만 원에 인수했다. 부채 1177억 원을 떠안는 조건이었다. 2009년 10월에 112억 원을 들여 인수한 ‘다이아몬드샘물’까지 합하면 업계 부동의 1위로 불리는 롯데칠성음료와 시장점유율에서 불과 6~7%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음료 부문은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39.6% 성장했다. 이쯤 되면 종합 음료회사로 불러도 무방하다.



1995년 ‘이자녹스’ 출시로 처음 발을 들인 화장품 사업의 성장세도 무섭다. 성장의 중심은 역시 M&A다. 2010년 1월 3889억 원에 지분 100%를 인수한 ‘더페이스샵’이 대표적이다. 더페이스샵은 700여 개에 이르는 독립 매장에서 연매출 2500억 원을 올리던 업계 3위 기업이었다.

올해 1월에는 색조 화장품 전문 업체인 ‘보브’의 화장품 사업부문을 550억 원에 인수했다. 보브는 국내 색조 화장품 시장에서 점유율 3%를 차지하는 업계 3위권 기업이다. 이로써 LG생활건강은 중저가 브랜드에서 최고급 프리미엄 제품군, 여기에 색조 화장품까지 완벽한 화장품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화장품 부문의 성장이 예상되는 또 다른 요인은 판매 채널별로 완벽히 갖춰진 브랜드 구축에 있다. 백화점·방문판매·전문점(일반점·브랜드숍)·할인점·인터넷쇼핑·홈쇼핑 등 모든 판매 채널에 고유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것. 각각의 채널이 성장하는 속도와 규모에 따라 차별적이고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올해 전망도 밝다. 한국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생활용품 마진 개선과 (해태음료 등) 음료사업부의 본격적인 턴어라운드에 힘입어 이익 성장률이 25%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며 “최근 대형 소비재 기업 가운데 드물게 만나는 시장 지배력 강화 스토리”라고 말했다.

올해 역점 사업인 중국 시장 진출 역시 직접 투자 방식을 벗어나 현지 유통업체와 협력하는 모델을 채택할 계획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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