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가난한 집 맏아들’ 外

‘가난한 집 맏아들’
대기업의 도덕적 의무는 어디까지인가

정부의 특혜로 성장한 대기업들의 도덕적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흥미롭다. 국내 대기업들은 온 가족의 희생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됐지만 배우지 못한 동생들을 나 몰라라 하는 가난한 집 맏아들과 닮은꼴이다.

성공한 맏아들이 가족에 대해 갖는 의무는 3가지다. 우선 가족으로서 보편적으로 지켜야 하는 자연적 의무가 있다. 맏이로서 자기 본분을 지키고 가족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고 정당하게 행동하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가족과 약속했을 때 그것을 지켜야 하는 의무다. 이는 자발적 의무다. 셋째로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 많은 돈을 벌면 가난한 부모와 동생들을 돕는 게 당연하다. 그것이 연대 의무다. 하지만 이는 꼭 맏아들이라서 지는 의무는 아니다. 성공한 자녀가 둘째건, 셋째건 연대 의무는 똑같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성공한 맏아들에게만 주어지는 제4의 도덕적 의무다. 자신이 대학에 진학함으로써 암묵적으로 비용을 지불한 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맏아들이 동생들에게 보상해야 하는 액수는 얼마일까. 저자는 이 까다로운 문제를 ‘기회비용’과 ‘경매’라는 경제학 개념을 통해 풀어낸다. 만약 맏아들 대신 둘째나 셋째가 대학에 갔다면 그들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맏아들이 집에서 지원 받은 대학 등록금 이상의 훨씬 많은 돈을 보상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정부의 직간접적인 특혜로 성장한 대기업들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은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켜야 하는 연대 의무 외에 ‘성공한 맏아들의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한다. 물론 도덕적 의무는 어디까지나 도덕적 의무일 뿐이다. 지키지 않아도 현실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 아버지가 맏아들을 대학에 보내며 훗날 성공하면 동생들을 돌본다는 서약서를 받지 않은 것처럼 정부도 대기업들에 혜택을 주면서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의 도덕적 의무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쏟아지는 대기업 규제안들이 그 연장선이다.

유진수 지음┃224쪽┃한국경제신문사┃1만3000원



------------------------------------------------------------------------
이동환의 독서 노트
루이 16세의 탐식이 프랑스 혁명 불렀다

제7대 죄악, 탐식

프랑스 혁명 후 단두대에서 사형당한 루이 16세는 도를 넘은 식탐을 가졌다.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의 풍자 삽화를 보면 루이 16세는 돼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탐식이 국민의 원성을 샀고, 결국 그 이유 때문에 단두대에서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유럽에서 탐식에 대한 역사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먹는 일은 중세의 유럽에서도 금지된 일이었다.

가톨릭의 종교적 교의나 이에 따른 문화적 정서는 탐식이 각종 타락을 일으킨다고 경계했다. 결국 6세기 말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탐식을 일곱 가지 죄인 칠죄종(七罪宗)의 하나로 규정했다.

죄가 중대한 순서로는 첫 번째가 오만이었고 질투·분노·슬픔·인색·탐식 그리고 마지막이 성욕이었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탐식을 “식사 시간 외에 먹거나 식사 시간 이전에 먹는 행위, 생리적으로 필요한 이상으로 너무 많이 먹거나 마시는 행위, 탐욕스럽게 먹는 행위, 사치스러운 음식이나 고급스러운 음식을 탐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중세에 이르러 신학자들은 탐식 자체보다 탐식이 초래하는 심각한 결과를 강조했다. 예컨대 탐식은 인간의 감각을 고조시켜 성욕으로 이끌 수 있다고 보았으며 육류와 향신료가 들어간 소스를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육체와 정신이 흥분된다고 봤다.

중세 기독교에서 이렇게 탐식을 경계했건만 실제로 많은 성직자들은 배불리 먹어 살이 피둥피둥 찐 상태였다. 이 시대에 대부분의 하층 계급은 먹을 것이 없어 기근에 시달렸는데도 말이다. 16세기 초에 시작된 종교개혁에서도 프로테스탄트들은 가톨릭의 음식 문화에 대해 격렬하게 비판을 가했다. 종교 개혁가들은 음식에 대한 욕망으로 말미암아 탐식을 일삼고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타락한 성직자를 고발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간소하고 넘침이 없는 식사를 중요시했고 금식까지 권유할 정도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시대가 흘러 17세기가 되자 프랑스에서는 교양 있는 식도락이라는 문화가 등장한다. 요컨대 미식의 탄생이다. 이러한 미식 문화가 프랑스에서 발달한 이유는 맛있는 음식에 호의적인 가톨릭 국가였기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18세기에 들어서면 미식은 문학작품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이 때문에 몇 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에 의해 우회적으로 언급되던 맛있는 음식을 공공연히 말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프랑스 음식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최고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플로랑 켈리에 지음┃박나리 옮김┃240쪽┃예경┃1만9800원

북 칼럼니스트 eehwan@naver.com
------------------------------------------------------------------------


우리는 그들을 신화라 부른다
조미나 외 지음┃386쪽┃쌤앤파커스┃1만7000원

IGM세계경영연구원을 졸업한 최고경영자(CEO)들이 ‘700인 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대상 기업을 직접 선정하고 취재, 분석했다. 스와로브스키나 산리오 같은 장수 기업에서부터 크록스·러시·EXR 같은 상식 파괴 괴짜 기업까지 국내외를 아우르며 예측 불허의 전략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22개 강소기업의 위기 극복 전략과 성공 비화를 담았다. 지금도 수많은 기업가가 큰 꿈을 품고 창업에 뛰어든다. 하지만 성공은 극소수에게만 주어진다.



정치의 몰락
박성민 지음┃강양구 인터뷰┃332쪽┃민음사┃1만4000원

20년 넘게 수많은 선거를 치른 대표적인 정치 컨설턴트의 대담집이다. 20~30대에 불고 있는 정치 붐, 나꼼수와 안철수 현상 등 기존 정당 체제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최근의 숨 가쁜 변화가 주제다. 저자의 기본적인 시각은‘보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권력의 탄생’이라는 부제에 잘 담겨 있다. 지난 60여 년간 한국을 지배해 왔던 보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오히려 진보에 밀리는 분위기다. 요즘 젊은이들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촌스러운 것은 참지 못한다.



말과 글, 빨을 세워라
김성주 지음┃268쪽┃아름다운날┃1만2000원

고전 속 고사성어를 새로운 감성에 맞게 풀어냈다. 텍스트 안에 갇힌 고전은 더 이상 현대인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스마트 시대에 맞춰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말발’과 ‘글발’을 세울 수 있도록 활용법을 함께 수록했다. 일상생활에서 좀 더 세련되고 좀 더 자신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그동안 우리가 익히 알면서 잘 활용하지 못했던 고전에서 답을 찾아 준다.





나를 세우는 옛 그림
손태호 지음┃332쪽┃아트북스┃1만8000원

조선시대 옛 그림을 소개하는 입문서다. 저자는 30대 중반 세상살이에 지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던 무렵 우연히 간송미술관 전시를 보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때부터 전국 곳곳의 미술관과 고서화점을 돌아다니며 옛 그림의 매력에 빠졌다. 옛 그림은 흐트러지고 삐딱해진 마음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용기와 각오를 다지는 데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 그림 60여 점의 의미와 작품 창작 배경을 소개하고 그 속에서 발견한 가르침을 기록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