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더듬이를 기르자

CEO 에세이


다르게 상상하고 깊게 통찰하게 만드는 인문의 더듬이는 바로 인문학의 모공에서 생장한다.

고대시대, 티그리스 강변에 살고 있던 호기심 많고 총명한 원시인 하나가 어느 날 양고기를 불에 익혀 먹으면 훨씬 맛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사실은 곧 가까운 부족에게 알려져 모두가 불가에 둘러앉아 고기를 불에 익혀 먹는 지혜를 갖게 됐다. 저명한 진화인류학자인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요리의 발견이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진화의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때 지식인이나 전문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지식 정보가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누구든 접근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렇게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가 오히려 인간의 생존 본능을 퇴화시키고 있다는 우려를 씻을 수 없다. 지식에 의해서만 단성생식된 현대 문명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그 어떤 것’을 잃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경제 위기 도래 후 그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학자는 많지만 위기 발생 전 이를 감지하고 예언하는 학자는 드물다. 21세기에 발생한 몇 번의 세계적 경제 위기 때마다 마찬가지였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그의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질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라고 썼다.

그렇다면 지식사회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에게서 하나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노련한 상인은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을 보는 순간 물건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즉시 알아차린다.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하다 보니 생긴 ‘감(感)’일 것이다. 최진석 서강대 교수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감, ‘더듬이’야말로 ‘인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 나가는 사람의 무늬 혹은 결’인 인문(人文)과 상통한다고 했다.

선인들은 인문학의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정약용과 박지원, 노자와 장자, 그리고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우리는 이들에게서 자연을 배우고 인간을 깨닫는다. 지금과 비교하면 지극히 미미한 수준의 지식으로 선인들은 ‘노자사상’과 같은 숨어있는 원리와 불변의 진리를 궁구해 냈다.

아는 것만이 힘인 시대는 지났다. 지식사회를 지나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사회는 인문에 의해 지식이 통괄되는 사회, 상상력과 창의력, 예술적 감수성의 모태인 인문학의 힘이 강화되는 사회, 인문의 더듬이를 가진 사람이 훨씬 더 많아지고 중요해지는 사회, 즉 인지사회(人知社會)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인식과 실천이 필요하다.

교육에서 단순 암기보다 생각의 힘을 기르도록 초점을 바꿔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처럼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스펙 좋은 직원보다 문제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 있는 직원이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둔다는 것을 다 잘 알고 있다.

인문의 더듬이를 많이 생장시켜야 한다. 다르게 상상하고 깊게 통찰하게 만드는 인문의 더듬이는 바로 인문학의 모공에서 생장한다. 다음 단계의 문명을 새롭게 열어 나가기 위한 신인류의 더듬이는 선인들과의 인문적 소통과 자신을 관조하는 성찰로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며 결국 이 ‘인문의 더듬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답고 행복해질 것이다.

문재우 손해보험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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