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보수 유지’ 결정했지만

여의도 생생 토크


한나라당이 당분간 대한민국의 ‘보수당’으로 남게 됐다. 물론 정강 정책에 한해서다. 사정은 이렇다. 몰락하던 한나라당 지도부를 접수한 비상대책위원들이 1월 3일 정강 정책, 총선 공약 분과위원회를 처음으로 열고 정강 정책을 바꾸기로 논의를 진행했다. 지금의 한나라당의 정강 정책은 2006년 1월 9일에 개정된 것이니 개정했다면 6년 만이 될뻔했다.

이날 한나라당 비대위원들은 정강 정책에서 오른쪽으로 기운 듯한 느낌이 드는 문구나 단어를 빼고 시대의 요구에 맞춰 ‘공정 경쟁’이나 ‘재벌 개혁’,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 호보’ 등을 표현하는 문구를 집어넣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면서 2월 9일께로 예정된 상임전국위원회 개최 전에 정강 정책을 수정해 의결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논의는 3일 뒤인 1월 6일 정책쇄신분과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이 회의에선 정강 정책을 개정하기로 결정했다. ‘보수’라는 단어를 빼고 ‘포퓰리즘에 맛서’나 ‘선진화’ 등의 문구도 넣기로 사실상 결정했다.

당 안팎에서 논쟁이 일기 시작했다. “당의 정체성을 벗어던지는 것(당내 친이계 의원들)”에서부터 “언제 제대로 된 보수를 한 적이 있느냐(보수 단체)”, “지금의 정강 정책이라도 지켜라(야당)”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사태가 이처럼 커진 데에는 이번 정권 들어 보인 정부와 한나라당의 행동에서 기인한다는 데 공감이 크다. 보수 정당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 개인의 자유 등으로 대변되는 보수적 가치에 힘쓰기보다 근대적 물가 관리, 공무원 증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검열 등 보수의 가치와 반대로 흐르면서 국민들이 보수를 바라보는 시각에 염증을 느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한나라당 정강 정책을 뜯어보면 보수란 단어는 정강 정책의 첫 문장, ‘새로운 한나라당은 지난 6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주도해 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는 한편’에 딱 한 번 나온다. ‘한나라당은 큰 시장, 작은 정부의 기조에 입각한 활기찬 선진경제를 지향한다’는 문장에서 ‘큰 시장, 작은 정부’를 다른 문구로 대체하는 방안도 검토했었다.
한나라당은 27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들을 인선한후 여의도 당사에서 첫 회의를 가졌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비대위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1227..

김종인 위원 “시기와 상황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이슈를 주도한 건 김종인 비대위원이다. 과거 4개의 정권에서 청와대 경제수석, 보건부 장관, 4번의 국회의원을 지내며 합리적 정책통이란 평가를 받는 김 비대위원은 논란이 인 뒤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러시아에서 보수는 공산주의를 지킨다는 뜻이었다. 보수란 단어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지금과 같이 탈이념 사회에서 이를 정강에 넣어 규정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은 1월 12일 정리됐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당이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를 시대 변화에 맞게 다듬는 것은 필요하지만 정책 쇄신 작업이 진행 중인 과정에서 보수 관련 논쟁이 계속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오늘 이 문제를 정리했으면 한다”고 했다.

김종인 위원은 “결정했으면 따라야 할 것”이라고 수긍했다. 하지만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투로 얘기해 논란은 수면 아래로 잠시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내 고위 당직자는 “보수란 말은 단지 한 단어가 아니라 한나라당의 전통적·적극적 지지 기반”이라고 했다.



김재후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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