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담합에 가담한 업체가 2개밖에 없는데 두 업체 모두 자진신고감면제도(liniency)의 혜택을 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요.”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참여한 업체의 수와 상관없이 자진 신고를 먼저 하는 순서대로 2순위까지는 무조건 과징금을 감면해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월 12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446억47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세탁기, 평판 TV, 노트북 PC의 소비자가격을 인상·유지하기로 담합한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니언시 제도로 LG전자는 과장금 188억3300만 원의 100%를, 삼성전자는 과징금 258억1400만 원 중 50%를 감면받았다. 이 때문에 담합 가담 업체들이 모두 과징금을 감면 또는 면제받아 리니언시 제도의 맹점이 또다시 드러났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리니언시는 사전적 의미로는 ‘관대한 처분’이라는 뜻이다. 담합 혐의가 있는 기업 중 먼저 자백하는 기업에는 죄를 묻지 않거나 줄여주겠다는 조건으로 담합한 그룹 내부의 고발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공정위는 1순위로 자진 신고하면 100%, 2순위로 신고하면 50% 수준의 과징금을 면제해 준다. 이번에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이 규정에 따라 과징금을 감면·면제 받은 것이다.
공정위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가 감면 혜택을 받는 것은 국민 정서상도 맞지 않고 법 정의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1, 2순위 자진 신고자까지만 혜택을 준다는 것 외에도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반박하고 있다. 리니언시 제도의 취지는 과징금 부과보다 담합 당사자들 간의 신뢰를 깨뜨리는 데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에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두 회사는 담합을 반복해 하고 있다. 양사는 에어컨 업체 캐리어와 함께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광주지방교육청 등에 에어컨과 TV를 납품하면서 가격을 담합, 200억 원가량의 과징금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공정위도 이 같은 반복 담합의 문제점을 의식해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 행위 자진 신고자 등에 대한 시정 조치 등 감면제도 운영 고시’를 개정해 지난 1월 3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담합 등 부당한 공동 행위를 한 후 자진 신고를 통해 과징금 감면 혜택을 받을 경우 공정위의 시정 조치를 받은 날부터 5년 안에 또 담합하면 자진 신고해도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위반 행위가 고시 시행 전에 일어났기 때문에 소급 적용 받지는 않는다.
공정위는 또 리니언시가 아니면 담합을 적발하기가 힘들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도 적발된 담합의 90%가 리니언시 제도에 의한 것이라는 것. 게다가 공정위는 압수수색권도 없기 때문에 기업 조사에서도 제약이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업계에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압수 수색할 수 있는 시간과 품목 등이 정해져 있으며 법원의 허락도 받아야 하는 사안이다. 반면 공정위는 압수수색권이 없지만 그들이 조사하겠다고 통보했을 때 기업으로서는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
이에 대해 다른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리니언시의 혜택 수준이 카르텔 적발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요인인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공정위 스스로도 반복 담합에 대한 칼 같은 제재와 조사 기법, 권한 강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