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헤지 펀드에 눈 돌리는 강남 부자들

대안 투자 ‘굿’…비중 확대 나서

지난해 12월 23일 한국형 헤지 펀드가 야심차게 출발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2011년 전 세계 헤지 펀드 시장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어려운 한 해였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일부 개인 고액 자산가 사이에서 헤지 펀드의 투자를 진행하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수익률을 거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투자의 귀재들’은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전 한 발 앞서 발을 담그는 법. 이미 발 빠른 강남의 부자들은 한국형 헤지 펀드에 주목, 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헤지 펀드 전문가들은 소수 고액 자산가의 투자와 함께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뛰어들고 이후 재간접 헤지 펀드 등에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난 1월 3일 강남구 삼성동의 모 은행 프라이빗 뱅킹(PB)센터. 약 40억 원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A 씨는 연초를 맞아 올해 재정 계획도 점검하고 담당 PB와 신년 인사도 나눌 겸 이곳을 찾았다. 이날 담당 PB와의 주요 상담 주제는 지난해 말 출범한 한국형 헤지 펀드. A 씨는 포트폴리오의 일부를 헤지 펀드로 운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 다만 언제 어떤 상품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지 가늠하고 있다. PB를 통해 A 씨는 기존 헤지 펀드와 한국형 헤지 펀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제3의 투자처로 적절한지에 대해 정보를 구했다.

A 씨뿐만 아니라 강남의 고액 자산가들은 지난해부터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자 안정적인 자산 관리처를 찾았고 대안 투자로 헤지 펀드를 주목했다. 특히 2010년 자문형 랩 등 공격적인 투자 상품을 통해 자산을 늘렸던 이들이 지난해부터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절대 수익률을 추구하는 헤지 펀드에 관심을 쏟았다. 한 PB센터 센터장에 따르면 지난해 초 ‘코스피지수가 2000 이상 계속 갈 것인가’란 의구심을 가진 개인 투자자들이 증시가 꺾일 것에 대비해 보완책으로 헤지 펀드에 가입했다고 귀띔했다.

정진균 삼성증권 AI 팀장은 “지난해 재간접 형태의 헤지 펀드 상품들이 다수 출시됐고 3억~5억 원 정도를 투자하려는 자산가들이 많이 몰렸다”고 밝혔다.


한국형 헤지 펀드는 90% 이상 롱숏 전략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라 지난해 12월 23일 금융 당국은 9개 자산 운용사가 만든 한국형 헤지 펀드 12개를 인가했다. 한국형 헤지 펀드의 특징은 여러 가지 규제와 보호 장치로 투자자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형 헤지 펀드 가입은 연·기금과 금융회사 등 적격 투자자를 포함해 5억 원 이상을 투자하는 개인에 한해 허용된다.

한국형 헤지 펀드는 헤지 펀드의 펀드매니저가 다른 펀드나 일임 재산을 함께 운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투자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차단하고 있다. 성과 보수를 받는 헤지 펀드와 다른 펀드를 함께 운용하면 발생할 수 있는 이해 상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운용하는 헤지 펀드에 펀드매니저가 자신의 돈을 투자할 수도 없다. 해외 헤지 펀드와 다른 점이다.

헤지 펀드의 주요 전략은 투자 대상에 따라 ‘상대 가치 전략’, ‘이벤트 드리븐’, ‘주식 롱숏’, ‘매크로·선물트레이딩’ 등 다양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형 헤지 펀드는 90% 이상 국내 주식형 롱숏 전략을 구사할 전망이다. 한국형 헤지 펀드는 아직 시행 초기인 만큼 다양한 전략 구사보다 국내 펀드매니저들이 경험이 많고 전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국내 증시를 투자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 외 일부가 홍콩·대만·일본·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증시 시장에 투자하는 헤지 펀드로 구성돼 있다.

한국형 헤지 펀드는 주로 국내 상장 주식에 투자되기 때문에 유동성이 높아 환매 주기가 일반 헤지 펀드에 비해 자유롭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해외 헤지 펀드가 부동산과 원자재 실물 투자 등 현금화가 어려운 자산을 막론하고 투자하는 것에 비해, 한국형 헤지 펀드는 유동성이 높은 상장 주식을 주요 투자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환매 주기가 잦더라도 운용상 제약이 적기 때문이다. 동양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헤지 펀드 1호는 매일 ‘설정 및 입금’이 가능해 환매 제한이 아예 없다.


고액 투자자들 아직 ‘정중동’

강남의 고액 투자자들은 한국형 헤지 펀드와 같은 신상품에 대해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편이지만, 아직 한국형 헤지 펀드 출시 이후 봇물 터지듯 투자가 몰리고 있지는 않다. 정원기 하나은행 강남PB센터 지점장은 “한 금융 상품이 활성화되려면 고액 자산가 사이에서 입소문이 중요하다”며 “주위에서 구체적인 수익률을 올린 사례를 보면서 지금 가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낄 정도가 돼야 하는데 지난해 재간접 헤지 펀드의 성과가 그리 두드러지지 않아 아직 시장이 열리지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형 헤지 펀드 가입은 우선 기관투자가와 연·기금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며 개인투자자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으로 전망된다. 관계자들은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에 위험 성향을 갖고 있는 개인 고액 자산가의 투자가 시작돼 점차 투자 계층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개인투자자들은 기존 금융 상품에 투자했던 자금 중 일부를 헤지 펀드로 이전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헤지 펀드에 대한 실수요는 재간접 헤지 펀드가 될 수 있다고 전망된다. 정진균 팀장은 “헤지 펀드 계좌가 다 차지 않으면 재간접 펀드로 내놓게 되는데 이때 고액 자본가가 아닌 일반 개인투자자들은 1억 원 정도의 자금으로 들어올 수 있다”며 “지난해 6000억 원의 재간접 펀드의 투자가 있었는데 대부분 고액 자본가가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전했다.

이미 지난해 재간접 헤지 펀드를 경험했거나 한국형 헤지 펀드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고액 자산가들은 언제든지 한국형 헤지 펀드의 수익률이 검증된다면 바로 뛰어들 기세다. 정진균 팀장은 “개인투자자들이 헤지 펀드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시점은 이르면 올해 2분기가 될 수 있다. 1분기에는 극히 제한적인 수의 개인 투자가 들어올 것이고 만일 이들이 어느 정도의 수익률을 보이면 2분기에 입소문을 타고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기 지점장은 “우선 한국형 헤지 펀드의 트랙 레코드가 나와 봐야 시장 활성화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일본과 홍콩의 개인투자자는 헤지 펀드를 위시한 대안 상품의 비중이 포트폴리오의 5~15% 차지하고 있다”며 “헤지 펀드가 국내에서 정착하는 데 5~1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형 헤지 펀드가 국내시장에서 활성화된다면 다음 레벨은 투자 대상과 기법을 다양화하며 해외 헤지 펀드와 경쟁해 외자를 끌어오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인터뷰
정진균 삼성증권 AI 팀장
삼성증권 대체투자 (AI)팀의 정진균 팀장은 헤지 펀드와 관련해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하나로 꼽힌다. 골드만삭스, 취리히 캐피털마켓, 도이치 자산운용, ING자산 운용 등 글로벌 금융사에서 헤지 펀드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하고 현재 삼성증권에서 헤지 펀드와 관련한 전반적인 전략을 책임지고 있다.



“펀드 운용자의 과거 수익률 따져봐야”

지난해 말 한국형 헤지 펀드가 도입됐는데 어떤 의미인가.

국내 금융 산업을 양성하자는 취지다. 국내 자본시장 자체가 외자의 침입이 쉽다. 자본이 쉽게 들어왔다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이럴 때 국내시장은 타격이 크다. 자본시장의 건강 상태를 증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제약을 풀어 새로운 금융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국내 운용사의 헤지 펀드 전문 인력이 아직 운용 경험 부족하고 트랙 레코드(수익률 실적)가 딱히 없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국내 헤지 펀드 운용 인력의 트랙 레코드가 없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 여러 헤지 펀드 매니저들은 상당 기간 동안 운용 전략을 관리해 왔고 롱숏 트랙 레코드가 나쁘지 않다. 사모 펀드로 10~20%의 수익률을 거둔 이도 있다. 트랙 레코드에 대한 염려라면 실제 검증된 인력이 꽤 있으니 헤지 펀드에 들어와도 괜찮다고 본다. 한국형 헤지 펀드가 시작되고 개인적으로 찾아낸 결론이 이것이다.

헤지 펀드의 투자 매력은 무엇인가.

대부분 포트폴리오 구성은 주식과 채권이 중심인데 서로 연동돼 있어 하나가 오르면 나머지 수익률은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비교적 연관 관계가 적은 대안 투자가 요구된다. 주식의 분산 투자를 위해 포트폴리오의 60%는 주식, 30%는 채권, 나머지 10%를 헤지 펀드와 같은 대안 상품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올해 헤지 펀드와 관련한 전망은 어떤가.

초기지만 생각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갈 곳을 못 찾는 시중 자금이 많다. 예금 금리도 낮고 부동산의 수익률도 낮기 때문이다. 채권시장도 마찬가지다. 헤지 펀드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고객들이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헤지 펀드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시점은 올해 2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분기에는 극히 제한적인 수의 투자가 들어올 것이고 만일 이들이 어느 정도의 수익률을 보이면 2분기에 입소문을 타고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다.

헤지 펀드 상품을 고를 때 주의할 점은.

헤지 펀드의 성격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 중소형주·대형주·퀀트 등 투자 대상에 따라 전략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지 펀드 운용자의 능력을 가장 중점적으로 보면 된다. 과거의 펀드 운용으로 수익률을 얼마나 낳았는지 그리고 내놓은 헤지 펀드 상품의 영역이 예전 수익을 거뒀던 펀드와 비슷한지 등을 평가해야 한다. 전문 인력이라고 하더라도 생소한 투자 대상과 전략일 때는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취재=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사진=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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