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구조적 문제 해결에 힘쓸 것”

이상직 이스타항공 회장


1970년대 초 전북 김제 원평. ‘두두두두’ 소리와 함께 비행기 한 대가 하늘 위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소년은 그날 처음으로 진짜 비행기를 본 후 하루에도 몇 번씩 언덕에 올라가 비행기가 지나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 후 파일럿을 꿈꿨던 소년은 항공기 한 대 없이 항공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이스타항공 이상직(49)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2007년 김포공항 근처의 방화동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한 이스타항공은 현재 10여 개국 64개 도시의 하늘을 날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저비용 항공사 최초로 일본의 관문인 도쿄를 연결하는 인천~나리타 정기 노선을 취항하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스타항공은 저비용 항공사 중 막내로 시장에 진입했어요. 당시만 해도 저비용 항공사가 ‘싸구려 항공사’로 역홍보되고 있었어요. 우리는 지난 3년간 그걸 불식하기 위해 노력했고 8% 정도였던 저비용 항공사의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렸어요. 지금은 국내선 이용 승객 두 명 중 한 명이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항공사 설립 후 이 회장은 남과 다른 길을 개척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짜릿한 가격으로 추억을 파는 국민 항공사’라는 회사의 슬로건에는 이 회장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행을 가면 설레잖아요. 단순히 사람만 실어 나르는 건 누구나 하는 것이라 우린 우리만의 ‘온리 원’ 전략을 썼죠. 비행기 천장에 하늘을 그려 넣고 측면은 1호 스카이호부터 6호 페어리파크호에 이르기까지 각 항공기별 콘셉트를 달리해 환상적이고 재밌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어요. 기내에서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가위바위보 등 추억의 게임도 즐기고 그런 모습을 사진에 담아 e메일로도 보내주니 반응이 굉장했죠.”

이 회장의 파격은 ‘상생’을 강조하는 가치관에도 반영됐다. 동대문 패션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MK(메이드 인 코리아)패션산업발전협회와 함께 이스타항공 승무원 유니폼을 제작한 일은 두고두고 회자가 됐다.

사실 이 회장의 삶 자체가 어쩌면 도전의 연속이었다. 대학 졸업 후 현대그룹에 입사한 그는 현대증권에서 펀드매니저를 할 당시 ‘텐 배거의 사나이’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다. 10년의 샐러리맨 생활 동안 기업의 흥망을 공부한 그는 서른아홉 나이에 경영인이 돼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로서 느끼는 성장의 한계는 벽으로 다가왔다.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와 제도적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생존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스타항공을 설립한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대형 항공사들과 경쟁하며 성장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얼마 전 2012년 전북 전주에서 총선 출마를 선언한 데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지금 국회에는 중소기업인 출신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습니다. 중소기업을 모르는 사람들이 수많은 중소기업의 발전을 논해봐야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일 수밖에 없어요. 대기업이 사상 최대 이익을 내도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의 이익은 물가상승률을 밑도는 게 현실입니다. 계약서에 ‘협력업체의 물가상승률을 보전한다’는 조항 하나만 넣어도 생존할 수 있는데 그조차 안 되고 있죠.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갈 겁니다.”



1963년생. 89년 동국대 경영학과 졸업. 2005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석사. 89년 현대증권 펀드매니저. 2001년 케이아이씨 대표이사. 2006년 케이아이씨그룹 총괄회장. 2007년 이스타항공 회장(현). ‘10배 성장 전략, 텐배거’, ‘촌놈, 하늘을 날다’ 등의 저서가 있음.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