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육아 위해 정규직 포기 ‘속출’… 자녀 양육 적극적인 ‘이쿠맨’의 등장

‘살아갈 힘’이 재조명 중이다. 유력 카드는 가족이다. 가족과 오붓하게 새해 연휴를 보내려는 수요 증가다. 이 와중에 잊힌 아빠의 역할이 부쩍 강조된다. 자녀 양육에 적극적인 신종(?) 아빠의 출현이다. ‘이쿠맨’의 등장이다. 이쿠맨은 육아 참가에 솔선·적극적인 아빠를 뜻한다.

‘이쿠(育)+맨(Man)’이다. 설문 조사(네트에이지어)를 보면 44.4%의 일본 남성이 자신을 이쿠맨이라고 여긴다. 원래 아빠는 일하는 사람일 뿐이다. 양육·교육은 엄마의 영역이었다. ‘남성 전업, 여성 가사’의 고용 모델이다. 실제 일본 남성의 주당 근무시간은 60시간 이상이다. 반면 가사·육아 시간은 평일 18분에 그친다. 미국(82분), 프랑스(47분), 한국(41분)보다 낮다(렌고, 2009). 육아 휴가는 언감생심이다. 소득 감소, 평가 하락, 동료 민폐 등 걸림돌 때문이다. 육아 휴가 취득은 남성(1.56%)이 여성(89.7%)보다 현저히 낮다(2007년).


44% 남성이 자신을 ‘이쿠맨’이라고 여겨

다만 지진 이후 가족 관계가 중시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가정적인 남자가 상위권 신랑의 조건으로 거론되면서 젊은 남자 직장인의 이쿠맨 변신 의지가 늘었다. 적지 않은 수의 2030세대 아빠가 자칭 이쿠맨을 선언한다. 몇몇은 육아를 위해 정규직을 스스로 포기하기까지 한다. 경제적 부담보다 가족의 행복을 중시하는 가치 발현이다.

저출산을 막기 위해 정부도 적극 나섰다. 2010년 후생성은 ‘이쿠맨 프로젝트’를 발족했다. “일시적인 붐이 아닌 항구적인 트렌드로 정착시킬” 방침이다. 지자체와 비영리 민간단체(NPO)를 중심으로 ‘이쿠맨 스쿨’을 주재하는 곳도 늘었다. 기업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도 있다. 남성의 육아 지원을 인재 확보뿐만 아니라 생산·창조성을 높이는 경영전략으로 채택했다.


인식 전환은 그 속도가 빠르다. 이쿠맨 대상 전문 잡지까지 나왔다. ‘FQ재팬’이다. 2011년 가을로 창간 5주년을 맞은 계간 잡지다. 이쿠맨과의 인터뷰와 라이프스타일, 육아 기초, 일·가정 양립 조화(WLB) 등을 주요 테마로 커버한다. 창간 5주년 커버스토리는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육아’다. 이쿠맨을 응원하는 프로젝트는 일상적이다. 분유(우유) 업체인 나가모리유업은 일명 ‘나가모리유업 이쿠맨 프로젝트’를 2010년 11월부터 가동해 화제다. ‘엔젤 110번 파파 강좌’로 이쿠맨을 위한 다양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쿠맨을 타깃으로 한 상품·서비스가 틈새시장으로 떠올랐다. 일부는 히트 상품에까지 올랐다. 관련 서적과 육아 강좌는 하루가 멀게 눈길을 끌어당긴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이쿠맨 패션에 어울리는 유모차가 특히 인기 절정이다. 군복 계열의 컬러가 반영된 경량 설계가 특징으로 안전성과 패션성을 두루 갖춰 입소문이 났다.

또 아기 전용 손톱깎이(가위)도 나왔는데, 아빠가 사용하기 쉽도록 손가락 넣는 곳을 크게 만들어 히트 상품이 됐다. 2006년 판매 이후 매년 2만 개나 팔려나가고 있다. 가방과 베이비 캐리어가 합쳐진 형태의 이쿠맨 전용 제품도 화제다. 대용량 가방과 베이비 캐리어를 조합해 필요할 때 단품으로 바꿔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다.

남성의 육아 참가는 여행 업계의 신규 사업에도 힌트를 제공한다. 인기 조짐인 ‘부자 여행’이 그렇다. 여행 업계는 만성적인 시장 축소로 고전 중이다. 다만 조부모의 비용 부담이 전제된 ‘3세대 여행’과 성인이 된 딸과 엄마가 떠나는 ‘모녀 여행’이 그나마 매출을 지지해 줬다.

그런데 최근엔 이쿠맨의 등장과 맞물린 ‘부자 여행’이 증가세다. 유경험자의 참가 의욕이 높아 고무적이다. JTB에 따르면 응답자의 23%가 자녀·아빠의 동반 여행 경험이 있는데 이 중 75%의 아빠가 또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 재미있는 것은 여행 이유로 아빠들은 자녀의 성장 기회를 꼽은 반면 많은 엄마들은 아빠의 성장(?) 계기를 위해 부자 여행을 권유한다는 점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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