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나에게 드리운 아버지의 그림자

정미정 이든네이처 대표, 전 KBS 아나운서


아버지. 오랜만에 불러보고 떠올리는 이름이다. 아버지는 친정집 장식장에, 도쿄 유학 시절 잠옷을 입고 혹은 멋진 신사복에 삐딱하게 서서 책을 옆에 끼고 동숭동 서울대 문리대 앞에서 폼을 잡고 오래된 사진 액자 속에 계신다.

부모의 역할이 ‘훈육(discipline)’과 ‘보살핌(care)’이라면 아버지의 영역은 분명 훈육이다. 지금은 아버지가 아이들을 훈육하기보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모성성에 기운 보살핌이 주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 그 사회에서의 아버지는 가족의 존재 근거이자 집안의 질서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커다란 그늘이며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시대를 넘어 지금 이 시대는 어머니의 시대가 됐다. 아버지는 있지만 부성, 혹은 아버지의 자리와 권위는 없다. 그 자리에 ‘자녀’가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늘하고 그러나 때론 따뜻하게 존재의 무거움과 윗목과 아랫목을 가르치던 아버지. 나는 아버지에게서 어린 시절 두려움을 배웠고 자라면서는 아버지로부터 세상의 두려움을 이기는 법도 배웠다.

딸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대단했다. 할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내셔서 그런지 당신의 자식 사랑은 끔찍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퇴근길에 누런 봉지에 바나나를 다발째 사 가지고 와 자고 있는 아이들 머리맡에 놓고 가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낭만적이고 외로움과 문학을 사랑한 아버지는 현실적인 어머니에겐 불만스러웠겠지만 우리 딸들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알지도 못하는 제목의 영문 서적과 타임지를 끼고 다니던 나의 지적 허영심은 그런 아버지의 영향일 것이다. 아버지의 서재엔 다양한 원서와 고교 시절 윤리 시간에 배운 철학자들의 이름이 가득했고 나는 틈만 나면 그곳에 숨어 제목을 읽거나 그림을 보거나 공상에 빠지곤 했다. 시집 올 때 아버지의 책을 몰래 몇 권 빼온 건,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 시절 아버지들에게선 보기 드문 패셔니스타였던 아버지. 유학 생활을 해서일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검정 선글라스와 노란색 미제 셔츠를 입고 뱃머리에서(아버지는 배 사업을 하셨다) 담배를 물고 폼 잡은 그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나중에 보니 그 사진은 말보로를 물고 있는 제임스딘을 닮은 것도 같았다. 나는 그래서 폼 잡는 걸 참 좋아한다.

아들을 기다리다 다섯 번째 자식에 이르러 드디어 아들을 얻었는데도 여전히 아버지는 딸들에게 공정하고 관대했던 것 같다.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의지는 그런 공정한 풍토에서 자란 때문이 아닐까.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 딸을 자랑스러워하던 아버지는 끝내 소원이시던 고향 목포에서 ‘목포가요제’ 사회를 맡은 딸의 모습을 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제는 기업의 대표로 또다시 도전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딸의 모습을 아버진 멀리서 지켜보실 것이다. 의지가 나를 끌고 가도 때로 지치고 힘들어지면 지난날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가족의 동아줄 같은 단단한 연대와 후원이 내 등을 밀고 갈 것이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