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빠른 소셜 검색으로 승부”

임현수 위인터랙티브 대표


“컴퓨터와 인터넷은 삶을 포기할 뻔했던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다시 태어난 만큼 이제는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임현수(31) 위인터랙티브 대표는 1급 지체·언어장애를 가진 중증 장애인이지만 직원 11명을 거느린 벤처기업의 어엿한 최고경영자(CEO)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 사람 사연이 보통 많은 게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가 성장하면서 겪은 어려움과 이를 극복한 불굴의 의지를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장애를 뛰어넘어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그를 상암동 위인터랙티브 사무실에서 만났다.



생후 6개월 만에 찾아온 장애…인터넷서 꿈을 찾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뇌성마비에 걸리면서 그는 중증 장애인이 됐다. 몸은 불편해도 머리가 남달랐던 그에게 특수학교 수업은 도저히 맞지 않았다. 결국 그의 고집으로 일반 학교로 다시 옮겼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의 장애가 문제가 됐다. “정말 철저하게 고립됐습니다. 어찌 보면 그냥 얌전히 왕따만 당하는 것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였죠. 정말 너무 힘들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삶을 포기하는 것마저 저에겐 쉽지 않았습니다.”

힘든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3이 됐을 때 그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1995년 당시 국내에 막 도입된 인터넷을 접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서 임 대표는 일반 사람과 똑같았다. 삶의 의욕을 찾으면서 학교 성적도 급격하게 올랐다.

“처음에는 책을 보고 베이직으로 간단한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만 제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이때부터 대학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밤늦게까지 공부했죠.”

독학으로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터득한 그는 인터넷 세상에서 펄펄 날아다녔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홈페이지 제작 방법을 알려주는 웹사이트를 열기에 이르렀다. “당시 개인이 만든 사이트인데 하루 5만여 명이 접속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어요. 사이트가 유명해지다 보니 라이코스가 관련 홈페이지 제작 관련 콘텐츠를 공급해 달라고 해서 졸지에 사업자가 됐죠.”

임현수라는 이름이 인터넷 업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고등학생이었지만 홈페이지 제작에서 보여준 성과는 인터넷 업체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2000년엔 청와대와 제2건국위원회가 선정하는 신지식인으로도 뽑혔다. 막연하게 컴퓨터가 좋아 몰두했던 그가 창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2001년 성균관대에 입학해 컴퓨터공학과 경영학을 복수전공한 그는 졸업을 앞두고 취직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우선 인터넷 분야의 비즈니스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2005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입사해 인터넷에 대한 실무를 배웠다.

“사장님은 경진대회의 제왕이에요.”

임 대표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위인터랙티브 직원이 지나치듯 불쑥 던지고 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까지 각종 경진대회와 공모전 등에서 상을 받았다. 얼추 잡아 각종 컴퓨터 경진대회와 벤처 창업 경진대회에서 20여 차례 수상했고 정보통신부 장관상도 지금까지 네 번이나 받았다. 그의 사무실 벽 한쪽에는 그가 받은 경진대회 상장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2008년에는 창업 경진대회에 출전해 모바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개발해 대상을 받았다.



상금 5000만 원으로 창업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데 그때 벌써 지금의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를 아이템으로 대회에 출전했어요. 사람들이 깜짝 놀랐죠.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것으로 창업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여간 아이디어 하나는 참 많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재갑 이사도 한마디 거든다. “대학 때부터 10여 년간 계속 지켜봤는데 정말 신기할 정도입니다. 어디 가서 상도 잘 받고, 재미있는 생각도 많이 해요.”

창업 대회 대상으로 받은 상금 5000만 원을 갖고 임 대표는 2008년 위인터랙티브를 창업했다. 지금 와서 ‘모바일 메신저를 창업 아이템으로 할 걸’하고 얘기하지만 당시는 사실 시장 상황이 그에 적합하지 않았다. 어쨌든 김 이사와 함께 창업했지만 한동안 창업 아이템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검색 기술이나 소셜 네트워크를 연결한 무엇을 계속 고민했지만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는 것과 이를 구체적으로 비즈니스화한다는 것은 확실히 조금 다른 문제였다.

“그동안 시장의 변화 등으로 인해 개발만 해놓고 오픈하지도 못한 서비스가 두 개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실패의 과정 속에서 자신감을 상실해 좌절에 빠지기도 했죠. 다행히 그때마다 구성원들이 응원해 줬고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를 극복해 ‘1000만 명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만들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올 들어 위인터랙티브는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현재 임 대표는 SNS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검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SNS의 명성과 평판이 기본이 되기 때문에 검색에서 중요한 문서 자체의 신뢰도뿐만 아니라 문서 작성자의 신뢰도 역시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소셜 검색 서비스의 이름은 ‘퀵플’이다. 응답이 빠르다는 뜻이다. 늦어도 2012년 초에는 출시될 예정이다. 우선 웹 서비스로 내놓고 바로 이어 모바일 서비스로도 출시할 계획이다. 모바일로 만들면 게임 등을 접목해 다양한 재미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지체 장애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활발하게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요즘 취업 등의 문제로 힘겨워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심정에 십분 공감한다”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식산업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존 산업에 대한 일자리는 줄었지만 새로운 산업도 많이 생겨나고 있고 여기서 파생된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만 목을 매고 있을 것이 아니라 좀 더 큰 시야로 세상을 보면 세상에는 할 일도 많고 기회도 많습니다. ‘청년들이여 꿈을 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임 대표는 실제로 청년들의 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그는 “몸은 불편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세상에는 장애가 없다는 생각에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 왔다”며 “초기 창업자들을 위한 벤처캐피털을 만들고 단지 돈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임원기 한국경제 IT모바일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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