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낸 후 반전…행복 퍼포먼스 중”

여행 작가 겸 ‘유쾌한 황당’ 카페 주인장 박상준


서울 종로구 부암동 주민센터 앞. 부암동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다 아는 ‘노란집’에 2010년 4월 새 주인장이 들어섰다. ‘박씨’라고 불리는 주인장은 카페 이름을 ‘유쾌한 황당’으로 바꿨다. ‘노란집’의 정체성을 살려 누를 ‘황(黃)’에 집 ‘당(堂)’자를 붙였지만 ‘황당무계’할 때의 그 ‘황당’의 의미도 포함돼 있다. 오픈 후 박 씨는 ‘뉴 오픈’을 알리는 안내문을 카페 입구에 붙였다. 여긴 아무리 작아도 카페다(3평이다), 주인장은 박씨다, 박씨는 스님이 아니다(삭발머리다) 등등. ‘유쾌한 황당’과 ‘박씨’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그때부터 이미 시작됐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로부터 몇 년 전. 영화 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 잡지 기자로 ‘월급 받는’ 직장인이었던 박 씨는 잡지 폐간과 함께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 계열사였던 모 스포츠 신문으로 발령이 났지만 박 씨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대책도 없이 사표를 던졌다. 얼마 후 책 작업 의뢰가 들어왔다. 2008년 출간된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100’이 박 씨 이름으로 나왔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박 씨는 자신이 여행 작가로 살게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일’로서 서울 구석구석을 다니는 동안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낯설게 만나 인연으로 엮이다

박 씨를 ‘신상 털기’하면 다음과 같다. 이름 박상준. 올해 나이 마흔. 현재 싱글(‘여친’은 있다)이고 시골 출신이다. 자칭 게으른 사람이지만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데는 부지런하다. 방랑기가 더러 있고 퍼포먼스를 꾸미는 데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이름으로 된 책 하나 내고 싶고 카페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웬만한 사람들이 다 갖고 있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이뤘다.

그것도 우연히 자연스럽게. 인생에 두 번의 터닝 포인트를 맞은 후 그의 인생은 날이 갈수록 재미있어지고 있다. 책을 집필하며 부암동에 매료됐고 그 후 부암동에 자리 잡았으니 모든 게 순리적인 것만 같았다. ‘유쾌한 황당’의 주인이 된 건 (적어도 지금까지는) 인생 최대의 반전이었다. 그 반전의 순간도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노란집’ 단골손님이었는데 어느 날 주인이 카페를 인수하지 않겠느냐고 묻더라고요. 엄두가 나지 않았죠. 결국 카페는 다른 주인에게 넘어갔어요. 그런데 얼마 후 갔더니 바뀐 주인이 또 인수할 생각이 없냐고 묻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아, 이 카페는 내 거다.”

인테리어도, 달랑 하나뿐인 기다란 테이블도 예전 그대로였지만 ‘노란집’은 ‘유쾌한 황당’으로 거듭난 후 명물이 됐다. 그곳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낯설게 만나 인연으로 묶이고 주인장이 엮어 내는 각종 퍼포먼스로 웃음과 감동이 넘쳐나는 마법 같은 공간이 됐다.

지금은 카페의 마스코트가 돼버린 란이와의 만남은 ‘인복(人福)’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카페를 찾아온, 당시 한국종합예술학교 입시생이었던 란이는 매일같이 찾아왔다. 때론 주인장과 말벗하고 때론 혼자 조용히 있다가 가던 란이와는 그렇게 인생 상담을 하는 친구가 됐다.

또 다른 단골손님인 스물아홉 달님이는 그가 출장을 가면 대신 카페를 봐주기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눠준다. 재미있는 건 ‘유쾌한 황당’에서 우연히 만난 스물아홉 여자들과 어느새 친구가 돼 밖에서도 따로 만나는 사이가 됐더라는 것. 그런 일이 가능한 건 주인장 박 씨의 다양한 이벤트 덕분이다.

“공간이 워낙 작다 보니 손님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잘 들어오지 않는데, 가끔 호기심 있는 사람들은 들어와요. 그러다 보면 코앞에 앉은 낯선 손님도 주인장도 모두 말벗이 되죠. 그렇게 친해지기도 하고 여기서 가끔 파티를 여는데 그때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죠. 카페 이름과 동일한 온라인 카페에서 파티 공지를 하면 멤버가 꾸려져요. 2010년 가을에는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유명산으로 1박2일 엠티(MT)도 갔어요.”


미니 카페에서 콘서트 여는 재밌는 ‘황당무계’

지금까지 총 4회가 열린 콘서트는 그의 오랜 로망의 실현이었다. 숨소리까지도 들린다고 하여 정해진 이름은 숨결 콘서트. 주로 인디 뮤지션 1인의 콘서트로 진행되는데 세 번째 무대는 3인조 재즈 콘서트가 열리기도 했고 얼마 전 ‘니 아메리카노 내리나따!(내려놨다). 돌아와라!’라는 부제로 오래된 단골 부대를 다시 불러 모은 송년회에는 ‘노래 좀 하는’ 단골 두 명이 게스트로 서기도 했다. 콘서트 때는 보통 10~15명 정도가 모이는데 최대 22명까지 들어왔던 적도 있다.

늘 이렇게 ‘왁자지껄’한 퍼포먼스만 있는 건 아니다. 카페 오픈 초기에는 ‘부암동 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손님들과 함께 부암동 여기저기를 걷는 동안 그는 가이드가 됐다. 2011년 상반기에는 책 집필을 위해 장기 출장을 떠나게 되면서 ‘무인 카페’로 운영하기도 했다. 손님이 알아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찻값을 내고 가거나 다른 데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온 뒤 약간의 ‘자릿값’을 내는 식이었다. ‘그게 가능해?’라는 일들이 여기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카페 밖에서 만나는 ‘황당무계’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지만 이 공간 안에서는 재밌는 ‘황당무계’가 펼쳐지죠.”

수많은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테이블 회전은 많아야 하루에 세 번. 커피 값이 4000~5000원 선이니 하루 수입도 뻔하다. 파리 날리는 날도 많아 글을 써서 받은 수입으로 월세를 채워야 할 때도 있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하루 종일 손님이 없을 때도 있다.

“카페를 연 후 쫀쫀해진 건 있어요. 친구들이 와서 커피를 마신 뒤 그냥 가기도 하고 손님들 중에도 너무 편안했던 나머지 그냥 가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웃음). 원고 몇 개 더 쓰면 되는 수준이고 내 삶을 흔들 정도는 아닌데 쫀쫀해지더라고요(웃음). 아직은 혼자 지내니까 괜찮죠.”

그에게 행복한지 물었다. 약간의 침묵 끝에 그가 내놓은 대답은 이랬다. (행복하다) 51대 (행복하지 않다) 49의 비율 정도로만 행복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행복하다는 것. 확실한 건 그 행복이 조금씩 누적되고 있으며 그는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손님이 없는 카페를 하루 종일 지키며 창밖에 보이는 사소한 풍경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행복을 만드는 그의 비법이라고나 할까. 이쯤에서 그의 다음 퍼포먼스가 궁금해졌다. 놀랍게도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요. 기타도 칠 줄 모르지만 강박관념 없이 언제든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김제동 씨를 좋아하는데 그분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거기에 꿈까지 갖게 하더군요. 저는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게 정말 좋아요.”

확실한 계획 하나는 있다. 내년 상반기쯤 제주 여행 책을 낼 예정이라는 것. 이미 ‘구석구석 제주 올레’도 내놨고 ‘엄마, 우리 여행가자’라는 에세이에서도 제주를 담아냈지만 이번엔 제주 여행의 ‘완결판’ 쯤을 낼 작정이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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