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대세’ 합리적·효과적 소비 미니 열풍 부른다

‘최소한주의’를 뜻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국어사전에서는 ‘되도록 소수의 단순한 요소로 최대 효과를 이루려는 사고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시작은 예술 분야에서 비롯됐지만 지금은 사회 전반에 걸쳐 미니멀리즘이 대세다.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기본에 충실한 것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의 하나로 볼 수 있는 미니(mini) 열풍은 규모의 경제에서 ‘최소한’을 지향하며 산업 전반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좀처럼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 상황도 미니 열풍을 부채질했고, 급격히 증가한 2인 이하 가구의 증가도 실용적 소비와 직결된 미니 열풍에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미니’라고 해서 반드시 ‘저렴한 소비’는 결코 아니다. ‘작은 것이 곧 기술’인 IT 제품 등이 그 예다. IT 업계를 시작으로 유통업계, 주택 시장, 창업 트렌드로까지 번진 ‘미니 열풍’은 올해 더 확산될 분위기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허은우 씨는 강원도에 세컨드 하우스 개념의 미니 별장을 구입할 계획이다. 방이 2개 딸린 실평수 66㎡(건축 총면적 33㎡) 규모의 미니 별장을 분양받는데 드는 비용은 1억 원 선. 세컨드 하우스를 구입하는 비용 치고는 적지만 현재 살고 있는 99㎡(30평)대 아파트 한 채가 거의 전 재산인 허 씨에게는 사실 큰 부담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근처에 사는 여동생과 공동으로 분양받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제적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별장을 비워두는 일이 줄어들어 좋고 어쩌다 함께 별장을 이용하게 되더라도 각각 네 식구라 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는 규모라는 생각에서다. 유지·보수 등 관리비용도 2분의 1씩 부담하니 경제적이다. 또한 33㎡ 안팎의 전원주택은 수도권(또는 광역시) 이외 지역에 지으면 1가구 2주택 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미니 별장에 대한 수요가 증가 추세다. 미니 전원주택은 대지 면적 330㎡에 건축 총면적 33㎡ 안팎, 전용면적 50~66㎡의 복층 형태로, 지난해부터 20가구 미만의 단지형 미니 별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불기 시작한 소형 전원주택 바람이 지난해부터 급격히 늘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올해부터 전국 대부분의 초·중·고에서 주5일 수업제를 시작하는 데다 친환경 웰빙 라이프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와 같은 붐이 확대될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 강원도 평창에 미니 별장 단지 2개를 분양한 김현기 하니팜스 대표는 “‘물건이 나오자마자 나갔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며 “50㎡(15평형)를 가장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 공급한 50~66㎡ 미니 별장은 대지를 포함해 1억~1억1000만 원 선이다. 김 대표는 “대지 규모를 줄이면 1억 원 미만으로도 가능하다”며 “시중에 7000만~8000만 원 등 너무 싼값에 분양 중인 미니 별장은 지리적 여건이 좋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택 시장에 불어온 ‘미니’ 바람

경제 불황 등의 원인으로 ‘합리적 소비’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면서 산업 전반에 ‘미니 열풍’이 불고 있다. 미니 별장이 세컨드 하우스에 대한 니즈와 가격의 접점이라면 주택 시장의 또 다른 미니 열풍인 도시형 생활주택 붐은 1~2인 가구의 증가에 그 배경이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0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11월 기준 2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24.3%(420만5000가구), 1인 가구는 23.9%(414만2000가구)로 2인 이하 가구가 전체의 48.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가 없는 1세대 가구의 증가와 늦은 결혼 및 혼인의 감소, 이혼 및 혼자 사는 노인의 증가에 따른 결과다. 대부분 소형 평수가 주를 이루는 도시형 생활주택은 거기에 풀 옵션까지 갖추고 있어 가격 면에서도 합리성을 추구한다.

인구구조의 변화에 맞춰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한 유통가에도 미니 열풍이 확산 중이다. 이마트는 일반 주류의 3분의 1 분량인 75ml 주류 20여 종을 선보이는 등 식품을 비롯해 가전과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미니 상품을 크게 늘리고 있다. 이마트 측은 “미니 상품을 2010년에 100여 종을 출시한데 이어 지난해는 190여 종으로 2배가량 늘렸다”며 “용량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는 변화를 통해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품목은 ‘990 야채’로 기존 포장에서 3분의 1 정도 중량을 줄인 당근·양파·마늘·대파·고추 등 필수 야채 10여 가지를 990원에 판매 중이다. 2인 이하 가구가 주 구매 대상인 ‘990 야채’는 전체 야채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풀무원식품도 최근 두부 한 모를 4등분해 4컵으로 분리 포장한 ‘신선한 네모’를 출시하는 등 새로운 미니 상품을 내놓았다. 2004년 ‘투 컵 두부’를 출시한 바 있는 풀무원은 측은 “1인 가구의 증가와 ‘저칼로리 소식’이라는 소비 트렌드에 맞춰 작은 뚝배기 1회 요리에 가장 적당한 크기인 85g을 한 컵에 담은 국내 포장두부 중 가장 작은 크기의 두부”라고 설명했다. 풀무원 측은 미니 상품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 제품이 올 한 해 연간 30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창업 트렌드도 ‘미니 숍’으로 흐르고 있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창업은 이미 자리를 잡았다지만, 최근 들어 테이블 회전수가 곧 ‘매출’과 직결되는 카페나 식당까지도 33~50㎡ 이하의 초소형으로 오픈하는 일이 많다. MK창업의 이병길 팀장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초기 투자 금액이 적고 관리 지출 비용이 적기 때문에 투자 대비 수익률이 높아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는 소규모 창업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경력 창업자보다 초보 창업자가 많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미니 숍’을 선호한다는 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올해는 베이비부머의 본격 은퇴와 함께 수많은 생계형 창업자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점포 규모를 확 줄인 ‘미니 숍’들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 팀장은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볼 때 퇴직자들이 큰 수익을 원하기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비 패턴의 변화도 소규모 창업 트렌드를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점점 까다로워지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는 대형 점포에서 일반화된 맛을 선보이기보다 독특한 아이템과 취향별 서비스로 마니아층을 공략하는 창업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현재의 소비 패턴은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지향한다”며 “큰 평수, 비싼 권리금이 붙어 있는 자리보다 작은 규모라도 나만의 특별한 아이템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창업의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시 중학동 GS칼텍스 직영점. 200 제곱미터(60여평)의 크기에 3대의 주유기가 설치돼 있다. 6명의 직원이 24시간 영업할 계획이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

리스크 줄이는 초소형 점포 창업 트렌드

심지어 서울 시내 한복판에는 초소형 주유소도 등장했다. GS칼텍스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GS칼텍스 경복궁주유소가 그것이다. 옛 한국일보 사옥 터 트윈트리타워 1층에 개소한 이 주유소는 주유기가 옥내에 있는 옥내 주유소로 평균 면적이 204㎡(62평)로 서울 시내 주유소 평균 면적의 5분의 1에 불과한 초미니 규모다.

기술의 진화를 보여주는 ‘미니’도 있다. 미니 열풍의 시작이랄 수 있는 정보기술(IT) 업계는 최근 일명 ‘테크파탈(Tech-fatale: 테크놀로지+팜므파탈의 합성어)’이라고 불리는 여성들을 위한 미니 사이즈 제품들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IT 업계의 파워 유저로 크게 부상하고 있는 여성 소비자들이 휴대하기 편하고 스타일까지 갖춘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초소형·초경량·초슬림 디자인에 똑똑한 기능까지 갖추고 있는 IT 기기를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펜(PEN) 시리즈를 선보이며 이미 휴대하기 편한 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DSLR)를 선보인 올림푸스한국은 지난해 9월 초소형 하이브리드 카메라 펜 미니(PEN Mini)를 선보였다. 가로 109.5 mm, 세로 63.7mm, 높이 34.0mm의 초소형 디자인에 무게도 215g으로 가벼우며 배터리와 기본 렌즈를 장착하더라도 총 무게가 400g에 지나지 않아 현존하는 렌즈 교환식 카메라 중 가장 가볍다. 올림푸스한국 측은 “핸드백이나 주머니에 가볍게 넣고 다니는 패션 액세서리와 다름없지만 쉬운 조작으로 전문가급의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스마트폰 전략을 ‘미니’로 내세운 소니에릭슨은 지난해 10월 여성을 위한 스마트폰을 콘셉트로 한 ‘엑스페리아 레이’의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엑스페리아 레이는 9.4mm 초슬림에 100g의 초경량, 한손에 쥘 수 있는 편안한 그립감을 내세우면서도 소니의 기술력을 담아낸 강력한 성능까지 갖춰 여심 잡기에 나섰다.

기아자동차가 지난해 11월 29일 선보인 신개념 미니 CUV(Cross Utility Vehicle) 레이(Ray)도 미니 열풍에 동참했다. 출시 한 달 만에 1만 대 가까이 판매되며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레이는 특히 여성 계약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아자동차 관계자는 “그동안 출시됐던 다른 차종과 비교하더라도 레이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상당히 빠른 편”이라면서 “여성 소비자 비율이 36%에 달해 다른 차종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높다”고 설명했다.
<YONHAP PHOTO-0923> Cosmo Power President Shoji Tanaka speaks as he stands next to the company's personal flotation device named "Noah", which could survive both an earthquake and the tsunami that might follow, at a port in Hiratsuka, south of Tokyo October 3, 2011. It's not quite a yellow submarine, since it's destined for travel on top of the water, not under it. But the round yellow pod, christened "Noah" for the maker of the ark, could mean the difference between life and death in the case of another killer earthquake and tsunami like the one that hit Japan seven months ago, said its inventor, Tanaka. Picture taken October 3, 2011. REUTERS/Oh Hyun (JAPAN - Tags: DISASTER BUSINESS SOCIETY TPX IMAGES OF THE DAY)/2011-10-11 14:06:39/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미니 열풍은 우리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또 다른’ 미니가 한창 인기다. 지난해 엄청난 지진과 쓰나미로 재앙을 겪었던 일본에선 최근 ‘미니 방주’가 화제다. 다나카 쇼지가 개발한 미니 방주는 공처럼 생긴 노란색 캡슐로 어른 4명이 탈 수 있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다. 강화 유리섬유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방주 꼭대기에는 숨구멍이 뚫려 있다. 미니 방주의 가격은 470만 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엄청난 재난을 겪은 일본에서는 판매 열기가 뜨겁다.


취재=박진영 bluepjy@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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