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쇼핑가 ‘큰손’으로 떠오른 브라질

헤알화 가치 급상승…연 16억 달러 ‘펑펑’


“모든 것이 브라질에 비해 너무 싸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브라질 법원 사무관인 블라디미르 루시오 마르틴은 지난해 11월 가족들과 함께 뉴욕 여행을 다녀왔다. 모터사이클광인 그는 쇼에이 헬멧을 587달러에 샀다. 브라질 판매 가격의 4분의 1이다. 크래프트 파르메산 치즈도 브라질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싼값에 구매했다. 마르틴 가족은 항공 수하물 무게 제한선인 70파운드짜리 가방 6개를 가득 채워 브라질로 돌아왔다.

브라질 경제성장과 함께 헤알화 가치가 크게 오르자 브라질인들이 미국 쇼핑가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브라질인들은 지난해 연말 쇼핑 시즌에 뉴욕 쇼핑가를 휩쓸었다. 미국 유통업체들의 실적 성장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뉴욕을 방문한 브라질인은 70만 명이다. 2009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는 영국인이나 캐나다인보다는 적은 규모다. 그러나 브라질인들이 쇼핑에 지출한 금액은 영국인이나 캐나다인이 쓴 돈을 넘어선다고 뉴욕시는 전했다. 지난해 브라질 관광객들이 뉴욕에서 쓴 돈은 총 16억3000만 달러다. 영국(14억2000만 달러), 캐나다(12억7000만 달러), 이탈리아(11억 달러)를 모두 능가한다.



지난해 뉴욕 방문 브라질인 70만 명

뉴욕관광청은 브라질인들의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해 달라고 의회에 로비하고 있다. 브라질 쇼핑객을 더 늘리기 위해서다. 프레드 딕슨 뉴욕관광청 부청장은 “최근 소매 업체들은 브라질 고객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질인들은 뉴욕뿐만 아니라 플로리다 쇼핑가에서도 주요 고객이다. 지난해 상반기 동안 플로리다에서 10억 달러를 지출한 캐나다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돈을 썼다. 플로리다의 유명 쇼핑몰에서는 브라질 레스토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브라질 시사 주간지 베자(Veja)는 최신호 구독자에게 84페이지짜리 뉴욕·마이애미 쇼핑 가이드를 무료로 뿌리기도 했다.

헤알화 가치는 지난해 달러 대비 14% 올랐다. 2009년 초에 비해서는 25% 상승했다. 헤알화 강세와 함께 높은 세금과 인플레이션 때문에 브라질에서 미국산 제품 가격은 두 배가량 비싸다. 브라질인들이 미국에서 애플 아이패드, 폴로 셔츠 등을 절반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정 금액 이상 쇼핑하면 항공료와 호텔비용 이상을 아낄 수 있다.

브라질의 해외 소비는 2011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0년에 비해 60% 이상 늘었다. 이 같은 현상은 브라질과 미국의 대조적인 경제 상황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2008년 금융 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 경제는 성장이 부진한 상태다. 최근 회복 조짐이 보이고 있지만 실업률이 여전히 높고 주택 시장 침체도 계속되고 있다. 반면 브라질 경제는 최근 10년간 중국 등의 원자재 수요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빈부 격차가 해소되고 중산층도 늘었다.

그러나 브라질의 해외 쇼핑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최근 브라질 경제성장세가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분기 0.8%, 2분기 0.7%, 3분기 0%를 기록했다. 2010년에 비해서는 1분기 4.2%, 2분기 3.3%, 3분기 2.1%로 나타났다.

헤알화 가치도 지난해 9월 이후 약세다. 브라질 정부가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헤알화 강세를 억제하는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지나친 해외 소비를 막기 위해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이용할 때 부과되는 금융거래 세율도 기존 2.38%에서 6.38%로 인상했다.

전설리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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