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김정은 시대 개막…정책 보수화 예고

김정일 사후 북한 어디로 가나? - 1 -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2008년 여름 뇌혈관 계통 질환으로 쓰러진 후 2009년부터 회복세를 보였으나 질병의 특성상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고 재발하면 다시는 일어서기 힘들다는 것이 의학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게다가 김정일은 건강이 회복된 이후 흡연을 재개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됐다. 나이와 건강에도 불구하고 현지 지도와 중국 및 러시아로의 장기 여행을 강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일 사망의 원인은 북한이 발표한 대로 심근경색에 의한 돌연사나 자연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 관심이 가장 집중되는 부분은 과연 향후 북한 체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될지 여부다. 향후 약 1~2개월 동안은 모든 정치 일정이 올스톱되고 북한 전역이 애도 기간에 돌입할 것이므로 특별한 체제 불안정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이후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김정일은 1974년부터 20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으면서 권력 기반을 다졌다. 그래서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도 큰 동요 없이 체제를 이끌 수 있었다. 그러나 후계자 김정은은 나이도 30세 미만으로 어리고 국정 경험도 일천하다. 과연 이런 김정은이 북한 체제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YONHAP PHOTO-1354> Kim Jong-un (C), son of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not pictured) visits Mokran Video Company in Pyongyang in this undated picture released by the North's official KCNA news agency September 11, 2011. KCNA did not state precisely when the picture was taken. North Korean heir apparent Kim Jong-un's slicked-back, high-sided haircut is a fashion hit in Pyongyang where young men are apparently queueing up for a similar cut. Kim, believed to be in his late 20s and known as the "Young General," is packaged to look like his late grandfather, the secretive state's founder, Kim Il-sung. The chubby youngest son of the current leader, Kim Jong-il, slicks his hair back at the top, and has it trimmed to the scalp to about an inch above the ears. Picture released September 11, 2011. To match story KOREA-NORTH/HAIRCUT REUTERS/KCNA/Files (NORTH KOREA - Tags: POLITICS PROFILE SOCIETY) THIS IMAGE HAS BEEN SUPPLIED BY A THIRD PARTY. IT IS DISTRIBUTED, EXACTLY AS RECEIVED BY REUTERS, AS A SERVICE TO CLIENTS. NO THIRD PARTY SALES. NOT FOR USE BY REUTERS THIRD PARTY DISTRIBUTORS/2011-12-14 14:38:12/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김정일, ‘시스템에 의한 통치’ 체제 구축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로서는 북한 체제에 별다른 동요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선 북한 체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체제라는 점이다. 북한의 정치체제인 수령 체제는 최고지도자 1인의 카리스마와 권위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당을 중심으로 전사회적으로 꽉 짜인 유기체적 시스템에 의해 지탱된다. 수령의 교체와 무관하게 이 시스템만 작동하면 정치체제는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황장엽 씨는 “북한에는 김정일 같은 사람이 100명도 더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짜놓은 사람이 김정일이다.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그간 김일성의 카리스마와 권위에 의해 운영되는 정치체제를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체제로 바꿔 놓았던 것이다. 김정일이 1974년부터 20년 동안 한 일은 단순히 자기 권력 기반만 쌓은 것만 아니라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즉 김정일이 20년, 30년에 걸쳐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김정은은 후계자가 된 지 불과 몇 년밖에 안 됐고 경험도 일천하지만 새로운 지도자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은 이미 2010년 9월 시점에서 권력 재편을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것은 2009년 1월이 아니라 2006년 말에서 2007년 1월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5년간 모든 권력을 김정은에게로 이전하는 작업이 급속도로 진행됐고 이미 2010년 9월 당대표자회 이전에 당과 군부, 공안 등 핵심 권력 기관은 이미 김정은 사람들로 채워졌다고 봐야 한다.
<YONHAP PHOTO-0380> North Korean soldiers make a call of condolence for deceased leader Kim Jong-il in Pyongyang December 21, 2011 in this picture released by the North's official KCNA news agency early December 22, 2011. REUTERS/KCNA (NORTH KOREA - Tags: POLITICS OBITUARY) THIS IMAGE HAS BEEN SUPPLIED BY A THIRD PARTY. IT IS DISTRIBUTED, EXACTLY AS RECEIVED BY REUTERS, AS A SERVICE TO CLIENTS. NO THIRD PARTY SALES. NOT FOR USE BY REUTERS THIRD PARTY DISTRIBUTORS/2011-12-22 08:52:07/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당대표자회는 이런 권력 재편이 완료됐다는 것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행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은 2010년을 전후해 당조직지도부 부장, 국가보위부 부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당 인사, 군 인사, 군령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친위 쿠데타나 군부 쿠데타와 같은 김정은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은 이미 북한에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더라도 철저한 감시 통제 하에서 행동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표출되면서 최근 중동 사태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최근 일부 북한 주민들이 휴대전화나 한국 드라마 등을 통해 외부 세계를 알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 전체 주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또한 설사 많은 주민들이 체제에 불만을 갖고 있더라도 들고일어서려면 그들을 조직화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는 실정이다. 과거 동유럽이나 최근 중동을 보더라도 조직화하는 주체, 대안 세력이 없으면 대규모 시위는 발생하기 어렵다. 게다가 북한의 안정화를 최우선시하면서 김정은 체제를 공식 지지하고 나선 중국의 변수를 감안하면 당분간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인다.

물론 중·장기적으로 보면 북한 체제에 변화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앞으로 일정 기간 진행될 ‘유훈통치’ 동안 김정은이 충분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김정은을 형식적 최고지도자로 하는 집단 지도 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 후견 그룹들 사이에서 권력 암투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북한은 상당한 혼란을 겪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권력 분파들이 권력 자원(군)과 주민들을 동원하면서 동유럽 사태나 중동 사태와 같은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유훈통치 기간 김정은이 충분한 리더십을 발휘하면 권력 질서가 집단지도체제가 아닌 유일지도체제, 김정일 시대에 비해서는 다소 느슨해지겠지만 어쨌든 김정은 유일지도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때에도 정책면에서는 김정은의 경험이나 식견이 약하기 때문에 후견 그룹의 입김이 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어 당 문제에서는 장성택 행정부장과 최룡해 비서, 군대 문제에서는 리용호 총참모장과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경제문제에서는 최영림 총리, 외교문제에서는 강석주 부총리 등의 역할이 커질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핵문제나 개혁·개방 문제에서 과거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것이고 이런저런 논의 과정에서 과거보다 유연한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재개…핵 포기 가능성은 낮아

북한의 대내외 정책 역시 관심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우선 유훈통치 기간에는 큰 틀에서 김정일의 대내외 정책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과거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정책 대응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김일성은 1994년 7월 사망 직전에 대외적으로는 핵동결을 통한 북미 관계 개선 및 남북 정상회담, 대내적으로는 ‘혁명적 경제 전략(농업·경공업·무역 제일주의)’을 유훈으로 남겼다.

이에 따라 김정일은 수령 유훈의 철저한 관철을 모토로 내걸고 김일성 사망 1개월 이후에 북미 고위급 회담을 재개하고 그로부터 2개월 후 제네바 합의에 서명했다. 당시 한국 내에서 조문 파동이 없었다면 북미 관계 개선 움직임에 맞춰 예정됐던 남북 정상회담이 역시 보다 이른 시일에 개최됐을 가능성이 있다. 경제정책 역시 마찬가지인데, 김정일은 유훈통치 기간에 ‘혁명적 경제 전략’을 고수하다가 자신이 총비서에 취임한 1997년 하반기부터 ‘혁명적 경제정책’이라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내놓았던 것이다.

김정은 역시 마찬가지 경로를 걸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애도 기간이 끝나면 예정됐던 제3차 북미 회담이 재개될 전망이다. 성 김 주한 미국대사에 따르면 김정일 사망 직전에 북미 간에는 식량 지원과 우라늄 농축 잠정 중단을 맞교환하는 거래가 사실상 타결됐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양국은 3차 북미 회담에서 협상을 새로 진행하기보다 기 합의 사항을 공식화하고 이를 통해 조기에 6자회담을 재개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핵 보유국의 일원으로 국제사회에 진입하는 것이야말로 김정일이 남긴 최대의 유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 역시 김정일 사망 직전의 상황에서 재가동될 전망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북한에 조의를 표하면서 북한을 가급적 자극하지 않고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물론 아직 남북 간에는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북미 회담과 6자회담이 재개되면 남북 관계 개선의 필요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다만 당분간 남북 정상회담은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처럼 김정은은 유훈 통치 기간에는 김정일의 정책을 답습하겠지만 그 틀 내에서 다소 정책적 보수화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우선 김정은은 권위를 세우기 위해 철부지의 유약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대내외 관중들에게 보다 강한 이미지를 선보이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따라서 북미 관계나 남북 관계에서 대치 국면이 발생하면 보다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대내 경제정책 역시 김정일의 선군 경제 노선을 보수적으로 재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선군 경제 노선은 군수산업을 비롯한 전략 산업과 여타 경공업을 비롯한 비전략 산업을 구획화하고 전자에 대해서는 계획을 강화하되 후자에 대해서는 시장 메커니즘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정책이다. 1997년 하반기 김정일 정권 출범 직후부터 준비돼 2000년대 초반에 확정된 이 경제 노선이 김정일의 경제적 유훈이 될 것이다. 2002년 7·1 경제 관리 개선 조치나 2003년 3월 시장 합법화 조치 역시 선군 경제 노선의 틀 내에서 진행된 것이다. 또한 2006년 이후 시장 억압 등 보수화 조치 역시 선군 경제 노선의 폐기가 아니라 그것의 재해석에 기초하고 있다.


People walk past a propaganda banner which reads "2012 strong and prosperous nation" in Pyongyang, North Korea, on Wednesday, July 6, 2011. North Korean authorities have set 2012, 100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North Korean founder Kim Il Sung, as a deadline for attaining the status of "a strong and prosperous nation." (AP Photo/Kyodo News) JAPAN OUT, MANDATORY CREDIT, NO LICENSING IN CHINA, FRANCE, HONG KONG, JAPAN AND SOUTH KOREA

선군 경제 노선 유지…시장 억압에 무게

따라서 김정은은 선군 경제 노선을 유지하되 대내 안정 차원에서 시장 억압 쪽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는 시장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주민 생활의 원천인 시장을 폐지하면 주민들의 불만이 급속히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시장에서 쌀값은 kg당 3000원에 육박하고 있는데, 만약 시장 단속이 강화되면 식량 시장이 암시장화하면서 쌀값이 더욱 높은 수준으로 치솟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도표 참조). 북한 주민의 대부분이 시장에서 식량을 구입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 폐지는 곧 주민들의 대규모 생계형 저항을 조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훈통치 이후 김정은 정권이 안정화된다면 북한은 현재의 경제난을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 핵문제나 개혁·개방 문제에서 다소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제한적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완전한 비핵화나 본격적 개혁·개방은 체제 안보와 정권 안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나 본격적 개혁·개방에 나서는 것은 김정은 정권이 안정화되는 것보다 오히려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돼 권력 상층에서 북한의 미래를 두고 다양한 정책 갈등과 권력 갈등이 발생할 때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수호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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