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시장 공략 위해 사업 다각화
국내 주요 화장품 업체들이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올해 화장품·생활용품 업계의 양대 산맥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다수의 중견 화장품 기업과 해외 브랜드의 M&A를 진행했다.아모레퍼시픽은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의 제조업체 ‘코스비전’과 프랑스 향수 브랜드 ‘아닉구탈’을 인수했고 LG생활건강은 브랜드숍 ‘더페이스샵’에 이어 색조 화장품 전문 기업 ‘보브화장품’을 품에 안았다. 두 기업은 2012년에는 인수한 업체를 중심으로 그동안 진출이 미진했던 분야와 해외 공략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또한 내년에는 화장품 업계의 M&A도 더욱 활발해져 업계 경쟁 구도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추가 M&A 적극 검토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2건의 M&A를 진행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10월 생산 효율성을 개선하고 계열사 제품의 안정적인 공급과 품질 강화를 위해 에튀드하우스·이니스프리 등의 화장품을 제조해 온 OEM 업체 코스비전의 지분을 100% 취득하고 6억 원을 투자해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또한 그에 앞서 8월에는 프랑스 명품 향수 브랜드 ‘아닉구탈’의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해외 브랜드를 처음으로 품에 안았다. 아모레퍼시픽의 아닉구탈이란 해외 브랜드를 인수한 데 대해 업계에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번 M&A가 아모레퍼시픽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펼칠 M&A 행보의 시동을 건 것으로 보고 있다.
신정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이 향후에도 꾸준히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뷰티 관련 업체의 M&A를 통해 해외 브랜드를 강화할 예정”이라며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신흥 시장 외에도 M&A를 통한 선진 시장 진출을 통해 전체 해외 사업 역량 강화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아모레퍼시픽 측도 향후 다른 제품군의 인수 기회가 있다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은 지난 5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업을 확대하려면 아모레의 핵심 역량과 인접한 분야로 넓혀야 한다”며 “M&A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아닉구탈의 인수를 계기로 기존에 갖고 있던 향수 브랜드 ‘롤리타렘피카’와 함께 향수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럭셔리 브랜드로 입지를 높이고 아닉구탈이 해외에 잘 알려진 프랑스 브랜드인 점을 십분 활용해 향수 사업 부문의 해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다.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안에 M&A 마무리 작업과 인력 구성을 마치고 2012년에는 국내와 아시아 시장에서 사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또한 아모레퍼시픽은 색조 화장품 중심으로 유럽의 다른 매물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 이어 2012년에는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 등 아세안 지역 진출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으로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각 국가별 시장조사 및 전략 수립을 완료했다. 아세안 지역의 화장품 소비는 중국·일본·한국 등과 달리 색조 제품과 향수의 소비 비중이 높다. 따라서 아모레퍼시픽은 색조 화장품 전문 계열사인 에튀드하우스의 아시아 시장 공략을 효율화하기 위해 다음 M&A는 색조 화장품 전문 유럽 브랜드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에 눌려 화장품 시장에서 만년 2등에만 머물렀던 LG생활건강도 적극적인 M&A를 통해 추가 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M&A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공격적인 M&A를 그동안 진행해 왔다. 2007년 코카콜라, 2009년 더페이스샵, 2010년 해태음료 등 굵직한 M&A에 이어 올해에는 보브화장품을 인수했다. 시장점유율 3%인 보브화장품은 에튀드하우스와 맥에 이어 국내 색조 화장품 업계 3위 업체다. 보브화장품 인수는 그동안 LG생활건강이 스킨케어 사업에 치중해 비교적 미흡했던 색조 화장품 사업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신호탄이다.
LG생활건강은 2010년 더페이스샵을 3400억 원에 인수하면서 브랜드숍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더페이스샵을 더욱 공격적으로 운영해 단시간 내 정상 궤도에 올려놓고 사세를 확장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수 전 국내 720개 매장에서 현재 950개까지 늘렸으며 해외에서는 260개 매장이 350개로 늘어났다. 또한 일본 현지 유통 파트너인 이온(AEON)그룹과 계약을 통해 3년 안에 일본에서만 1200개의 매장을 확장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LG생활건강은 페이스샵과 보브화장품 인수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우선 이 브랜드들을 통합 관리하게 되면 OEM 생산에서 협상력 및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LG생활건강은 이번 인수를 계기로 기존 화장품 사업에 흩어져 있던 색조 제품들을 통합하고 외부 색조 전문 아티스트의 노하우 및 브랜드 도입을 통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향후 역량이 강화된 색조 사업부는 LG생활건강과 더페이스샵에 색조 제품을 제공하고 색조 중심 브랜드숍을 개발해 해외 진출을 확대할 수 있다.
또한 보브화장품은 2010년 실적이 매출 447억 원, 영업이익 44억 원, 영업이익률 10%인 견실한 기업이다. 이번 인수를 통해 LG생활건강의 영업이익 기여도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기업 독식 우려도 제기돼
한편 담배와 인삼 관련 사업을 하는 KT&G도 화장품 사업에 진출한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KT&G는 지난 9월 ‘꽃을 든 남자’로 유명한 소망화장품 지분 60%를 인수하면서 화장품 사업에 진출했다. KT&G에 예속된 소망화장품은 계열사 조정에 나서 지분 100%를 갖고 있는 로제화장품을 지난 11월 통합했다.
2012년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는 올해에 비해 9.1% 성장해 9조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 화장품의 인기로 외국 관광객들이 국내에서 대규모로 구매하면서 화장품 내수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국내 화장품 업체의 중국·동남아시아·동유럽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매출에서의 수출 비중도 커지고 있다. 또한 남성 화장품 시장도 커지고 있어 성장성과 수익성 면에서 화장품 시장은 ‘황금 알의 낳는 거위’로 변모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2011년 화장품 시장 리뷰 및 2012년 전망 발표’에 따르면 “국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M&A와 유통망 확보, 글로벌 시장 진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내년에도 신규 업체의 시장 진입과 M&A를 통해 시장 규모가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련의 화장품 업계의 M&A가 대부분 중견기업을 대기업이 인수하는 형태여서 특화 중소기업이 사라져가고 대기업이 독식하는 구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화장품 유통망을 점령한다면 중소기업의 제품들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박종대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화장품 시장 성장에 따른 수혜를 대기업들이 독식하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