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지난 10월 19일 오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국제금융 담당 공무원들의 휴대전화가 일제히 꺼졌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뒤 청와대의 발표가 나왔다. 한국과 일본이 7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방한 중인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통화 스와프 규모를 현재 13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고 공동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700억 달러 중 300억 달러는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를, 나머지 400억 달러는 한국 원화와 일본 보유 달러를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또 기존 130억 달러 중 100억 달러는 원·달러, 30억 달러는 원·엔화로 각각 교환하는 조건이었다.
안전 자산인 달러 자금 포함된 것이 특징
한일 통화 스와프 확대는 한국 정부가 지난 9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일 재무장관 회담 때 먼저 제안했다. 유럽 재정 위기와 세계경제 둔화로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친 데 따른 방어책이었다. 일본도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역내 금융시장 안정, 한일 정상회담 등을 고려해 통화 스와프 확대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 4일 재정부와 한은 관계자들이 일본 재무부를 방문해 실무 협의를 진행했고 이 자리에서 700억 달러라는 금액에 합의했다. 이어 지난주에 일본 측에서 급하게 방한해 세부 점검 사항들을 협의했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도 10월 14일부터 이틀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아즈미 준 일본 재무장관과 같은 내용을 협의했다.
이번 통화 스와프 확대엔 달러 자금 교환이 포함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이 인출할 때 일본에 700억 달러 상당의 원화를 주고 일본으로부터 300억 달러 상당의 엔화와 400억 달러의 미국 달러화를 받을 수 있다.
700억 달러라는 큰 규모도 예상 밖이었다. 언론에선 300억 달러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일각에선 이같이 한일 스와프 규모가 확대된 것엔 정치적인 이유가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이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 등 정치적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경제 분야로 우회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
물론 일본이 한일 통화 스와프로만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노다 총리는 정상회담에 앞서 이 대통령에게 일제강점기에 수탈한 정묘어제 2책과 조선왕조의궤 중 대례의궤 1책, 왕세자가례도감의궤 2책을 인도했다.
한일 통화 스와프의 규모가 확대된 것은 일본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아시아에서 자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두 정상은 2006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한일 FTA 교섭을 조속히 재개하기 위한 실무 협력을 강화하고 정상 간 ‘셔틀 외교’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한일 통화 스와프에 대한 시장의 반응에는 낙관과 비관이 섞여 있다. 낙관론자들은 통화 스와프가 심리적인 호재이기 때문에 환율 급등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외국계 금융사를 중심으로 한 비관도 만만치 않다.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마이너스 통장’을 열어놓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통화 스와프가 확충된 만큼 한국이 외환시장 개입을 위해 외화보유액을 추가로 쌓는 게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