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강자 브라질의 힘…브라질분석계획센터(CEBRAP)

민주화·경제발전의 밑거름

브라질에서는 아직까지 싱크탱크 개념이 낯설다. 하지만 브라질의 군부 정치(1964~1985)가 막을 내리고 민주정치가 뿌리 내리면서 비정부 기관이나 연구소들이 활발하게 지식 활동의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브라질의 싱크탱크는 대부분 연방정부·시정부·국립대 등으로부터 재정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 싱크탱크와 차이가 있다. 즉, 정부기관과의 연계성이 크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 국내 이슈뿐만 아니라 남미, 더 나아가 세계적 문제에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브라질 싱크탱크의 활동 영역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브라질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남반구에서 가장 큰 도시인 상파울루. 이 도시의 경제·금융 중심지인 파울리스타 거리에서 남쪽으로 약 30분 가면 한적하고 조용한 부촌이 나온다. 야자수가 심어진 큰 주택들 사이에 브라질 발전의 초석이 돼 온 브라질분석계획센터(CEBRAP)가 들어서 있다.

CEBRAP 건물은 의외로 주변에 있는 주택과 다르지 않았고 심지어 특별한 사인도 붙어 있지 않았다. 내부에 들어서니 넓은 부지에 파티오(안뜰)와 건물 몇 동이 있었지만, 몇몇 연구원만이 작은 방에서 토론하고 각자 일을 할 뿐이었다. 대통령까지 배출한 브라질의 대표 싱크탱크 치고는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CEBRAP는 브라질의 암울한 군부 통치 시절인 1969년에 설립됐다. 군부 정부의 스파이가 학생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학교에 잠입하기도 했고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교수와 학생들은 억압받았다. 대학에서 쫓겨난 지식인들은 대부분 해외로 나갔지만 몇몇 교수들은 해외로 도망갈 것이 아니라 이런 때일수록 브라질의 발전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뭉쳤다. 22명의 지식인이 모여 이 같은 취지로 설립한 싱크탱크가 바로 CEBRAP다.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22명 중에는 페르난도 카르도소 전 브라질 대통령도 있다.

암울한 군부 통치 시절, 지식인이 나서다

CEBRAP는 지난 40여 년간 브라질의 현실과 관련한 각종 연구를 집행하면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군부 통치 시절 동안 정권을 비판하며 독립적인 연구를 통해 법과 민주주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그리고 이후 군부 통치가 막을 내리고 브라질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브라질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와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해 왔다. 인구총조사를 비롯해 경제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빈부 격차, 도시 발달, 노동문제, 환경문제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는 아직까지도 CEBRAP의 주요 연구 이슈다.

역대 주요 연구 실적을 살펴보면 ‘브라질 경제: 이원론 합리성에 대한 비판(1972)’, ‘브라질 정치 모델과 과제(1972)’, ‘상파울루, 성장과 빈곤(1976)’, ‘사회운동과 사람들(1982)’, ‘상파울루, 생활과 노동(1989)’ 등이 있다.

CEBRAP는 한 분야를 특화해 연구하지 않고 한 이슈에 대해 사회 전반적인 다양한 영역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의료·복지·교육 등의 서비스에 대해 역사·철학·정치·환경·인구 등 각 분야의 연구자가 관련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제공하고 CEBRAP에서는 이를 취합해 정책 결정자들이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방안을 제시한다. 정부의 각 기관은 CEBRAP의 종합적인 정보를 근거로 정책을 구체화하는 메커니즘이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연구는 대도시에 대한 것이다. 상파울루의 각 지역별 인구구성뿐만 아니라 소득수준·학력·종교·정치적 성향까지 방대한 양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의 복지, 지원 서비스가 적절히 잘 작용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별로 필요한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 서비스를 제안한다.


세계 도시 비교 연구에 선도적 역할

CEBRAP는 수석연구원에서부터 연구보조원까지 약 132명의 연구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대학교수로 프로젝트에 따라 CEBRAP에 모여 토론하고 다시 흩어져 대학에서 각자 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에 건물에는 딱히 연구원들이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132명의 연구진은 분야별로 어떤 연구를 수행할지 그 중요성을 결정하고 연구 결과를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최종 결정권은 센터장을 포함한 6명의 위원회가 갖고 있다. CEBRAP 소속의 연구원이 되려면 박사급 학력과 한 연구를 2년 이상 코디네이터한 경력을 갖춰야 한다.

CEBRAP의 한 해 예산은 450만~550만 헤알(29억~36억 원) 규모다. 이 중 연구기금이 약 45%를 차지한다. 연구기금은 대부분 브라질의 시·주·연방정부로부터 받거나 영국의회, 유네스코 등 국제연구기금단체로부터 받는다. 포드재단 등 민간 기업, 유럽의 대학 등도 후원하고 있다. 유럽의 학교·정부·재단 등으로부터 지원을 상당히 받고 있는데 이는 남반구 지원 정책 덕분이다.

이 기금을 통해 남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등 남반구의 여러 국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실제 지원 사업을 할 수 있다. 파울라 몬테로 센터장은 “CEBRAP는 브라질의 민주화를 이끈 경험이 있어 다른 나라의 민주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컨설팅 사업을 통한 수입이 재정의 44%를 차지하고 있으며, 브라질 공무원 트레이닝, 포스트닥터(post-doctor) 프로그램 등 교육 사업을 통해서도 재정을 확보하고 있다.

CEBRAP는 브라질 국내 이슈에서 넘어 남남문제(남반구의 개발도상국 간의 경제적 격차 및 그에 수반되는 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연구 기관과도 함께 공조하며 CEBRAP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몬테로 센터장은 “우리의 연구 노하우와 경험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파울루(브라질)=글·사진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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